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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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오늘도 건강하지? 면역력이 중요하단다. 피곤하면 그냥 쉬어.” “이번주에 동생 결혼식은 그대로 진행하니?” “어깨 아픈 건 어때? 이따 필라테스 수업 들으면서 좀 풀어.”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는 출근하면 매일 사무실을 돌아다니면서 직원들에게 먼저 인사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스킨십을 자제하고 있지만, 평소엔 손을 잡고 어깨를 토닥이는 등 엄마나 언니처럼 친밀하게 대하곤 한다.

이 대표는 직원들 자리를 찾아가 결재 서류에 사인도 한다. 수평적 기업문화, 친근한 리더십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은 ‘어떤 순간이라도 사람을 대상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피부에 자극을 주지 않는 천연화장품 회사를 차린 것도, 무료로 점심 및 필라테스 수업을 직원들에게 제공하는 것도 모두 ‘사람’을 중시하는 그의 원칙에서 나왔다. 10년 근무한 사람에게 1개월 안식휴가를 주는 규정도 일찌감치 만들었다.

최고급 성분 고집해 제품 개발

‘착한 성분으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화장품 회사’를 설립하기 위해 그는 금강기획, 제일기획 등 광고업계 최고의 회사를 박차고 나왔다. 아이소이 창업 이전엔 여성커뮤니티 마이클럽을 세워 ‘선영아 사랑해’라는 유명 광고 카피를 탄생시켰다. 수직적이고 남성 중심적인 대기업 문화에 반기를 들고 수평적 기업, 여성이 일하기 좋은 회사를 직접 차린 것이다.

처음부터 순탄했던 건 아니다. 광고회사를 나올 때부터 화장품 사업을 꿈꿨지만 좋은 원료를 수입하는 난관부터 해결해야 했다. 원료값이 비싸 다들 꺼리던 1등급 불가리안 로즈 오일을 들여오기 위해 10여 년간 전 세계를 다녔다. 그는 1L짜리 한 병에 수천만원에 달하는 고가의 불가리안 로즈 오일 원료를 선택했다. 11개 화장품을 처음 세상에 내놨다. 신생 브랜드로서 인지도는 낮았지만 여드름이 자주 나거나 피부가 민감한 여성들 사이에서 조금씩 입소문이 퍼졌다. ‘잡티세럼’ ‘응급스팟’ ‘탄력크림’ ‘귀신앰플’ 등 제품마다 애칭이 붙기 시작했다.

2013년엔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가수 아이유를 모델로 발탁했다. 아이소이의 ‘잡티세럼’인 ‘불가리안 로즈 블레미쉬케어 세럼Ⅱ’는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7년 연속 헬스&뷰티(H&B)스토어 올리브영에서 ‘세럼 판매 1위’를 차지했다. 세럼은 ‘기초화장품의 꽃’으로 불리는 핵심 제품이다. 쟁쟁한 경쟁자인 국내 대기업과 유명 글로벌 브랜드를 모두 제친 것이다.

사람, 관계를 중시하는 기업문화

‘수평적 기업문화를 강조하는 화장품 회사’라는 소문이 나면서 여성들의 입사가 늘었고, 지금은 여직원 비율이 80%에 달한다. 아이소이에는 직원보다 임원, 임원보다 대표가 더 많이 일하는 조직 문화가 형성돼 있다. 이 대표는 “의사결정의 우선순위는 첫째가 고객, 둘째가 직원, 셋째가 임원”이라며 “주말에 급하게 신입사원 면접을 볼 때도 직원들은 쉬고 대표랑 임원이 출근했었다”고 말했다.

서울 군자동의 아이소이 사옥 내 구내식당에는 ‘아시아 넘버원 천연화장품 회사를 위한 우리의 자세’라는 포스터가 붙어 있다. 여기엔 의사결정의 우선순위와 함께 ‘단기수익을 위하기보다 관계를 생각한다’ ‘직원 한 사람 한 사람은 우리 회사의 CEO, 움직이는 광고판이다’ ‘돈이 아니라 사람을 위해, 우리의 비전을 생각하며 일한다’ 등이 적혀 있다. 이윤을 내야 하는 회사가 돈보다 사람, 수익보다 관계를 중시한다고 내세우는 게 눈길을 끈다.

‘따뜻한 카리스마’로 이끌어

아이소이 제품의 상당수는 이 대표의 경험을 토대로 개발됐다. 제일기획을 나온 뒤 여성 커뮤니티 마이클럽을 창업했을 때 이 대표의 피부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트러블이 생기고 피부막이 벗겨질 정도로 약했다. 스테로이드 성분이 들어간 크림을 대학생 때 1년간 사용해 피부가 손상된 탓이었다. 해외 유명 천연화장품을 찾아 바르기 시작했고, ‘피부가 천연이니 화장품도 천연 제품을 발라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러시아 네덜란드 덴마크 독일 등 천연화장품으로 유명한 회사는 다 찾아다녔다. ‘아시아 넘버원 천연화장품 회사’를 세우겠다는 목표도 이때부터 마음에 품었다.

수평적 기업문화도 소위 ‘꼰대’ 상사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한 경험을 거울삼았다. 지금이야 직원이 임원에게 이견을 제시하는 게 아무렇지 않지만 1980~1990년대 광고기획사에선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승진에서 누락되는 등 불이익을 당했던 그는 ‘누구나 꼰대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따뜻한 카리스마를 가진 사장이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지금도 그는 모든 직원의 의견을 귀기울여 들어준다.

‘착한 화장품’으로 해외사업 확대

아이소이의 주 소비층은 코로나19 이후에도 온라인으로 꾸준히 제품을 구입하고 있다. 물론 회사 매출에도 조금은 타격이 있었다. 이 대표는 코로나19 사태를 그냥 두고 볼 수 없었다고 했다. 이달 초 급하게 핸드클리너 제조에 들어갔다. 일반 에탄올이 아닌, 식물발효알코올과 천연추출물을 넣었다. 소독 효과가 확실하면서 사용한 뒤에도 손을 촉촉하게 유지해주는 소독제다. 다른 제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고, 2만 개는 대구지역 의료진과 자원봉사자들에게 기부했다.

이 대표는 “판매용이 아닌 증정용이어서 가성비를 따지는 게 무의미했다”며 “재료비가 비싸도 피부에 좋은 천연성분으로만 제조했다”고 말했다. 7만 개를 생산했지만 부족하면 추가로 더 제조할 계획도 세웠다. “구입하고 싶다”는 소비자 요청이 올 정도로 품질이 좋다는 소문이 퍼졌다. 이 대표는 50년, 100년 뒤에도 아이소이의 제품이 ‘제대로 만든 천연화장품’으로 인정받는 걸 꿈꾼다. 오래 지속 가능한 회사를 위해 ‘착한 돈 많이 벌어 남 주는 회사’를 모토로 정했다. ‘나쁜 돈 100억원보다 착한 돈 10억원이 낫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이소이는 올해 해외사업을 더 확대한다. 2016년 일부 점포에 들어간 미국 홀푸드마켓에서 소비자 반응이 좋아 올해는 56개 점포에 더 입점하기로 했다. 독일 오스트리아 스위스에도 진출하기로 최근 계약을 맺었다.

■ 이진민 아이소이 대표

△1963년 서울 출생
△1986년 이화여대 국문과 졸업
△1986년 금강기획
△1994년 제일기획 최연소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1999년 여성커뮤니티 마이클럽 창립 및 ‘선영아 사랑해’ 캠페인
△2001년 자연인 컨설팅 대표
△2008년~ 아이소이 대표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