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체계별 '코로나 대응' 분석

'보편적 의료' 4개국 확진·사망자
韓·美·獨 등 민간과 의료지출 분담
12개국보다 두 세배 더 많아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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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이탈리아 등 보편적 의료제도(NHS·국민보건서비스)를 택한 국가들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전파 속도와 사망률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의료비 전액을 국가가 부담하겠다며 막대한 예산을 쏟아부었지만 고질적인 의료의 질 하락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평가다. 영국 등을 모범으로 삼아 보장률(의료비 지출 총액 중 건강보험이 부담하는 비중) 높이기에 나서고 있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伊·英 '무상 의료'의 민낯…의료보험 채택국보다 사망률 3배 높았다

의료 시스템이 사망률 차이로

박은철 연세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지난 22일 코로나19 확진자 1000명 이상 발생 국가를 대상으로 의료 시스템에 따른 확진자 수와 사망률을 집계했다. 중국 이란 등 의료 시스템이 상이한 국가를 제외하고 영국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이 보편적 의료제도, 한국 미국 독일 등 12개국이 공공 의료보험제도(NHI)를 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편적 의료제도를 두고 있는 국가들의 코로나19 사망률은 4.89%로 의료보험 채택 국가(1.54%)의 3배 이상으로 나타났다. 인구 10만 명당 확진자 수도 보편적 의료 국가가 45.6명으로 23.4명인 의료보험 국가 평균 대비 2배에 달했다.

박 교수는 코로나19에 대한 감염병 대응 능력을 결정짓는 급성·중증 질환 진료에서도 보편적 의료 국가들의 역량이 크게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뇌졸중 환자의 발병 30일 이내 사망률은 보편적 의료 국가가 25.3%, 의료보험 국가는 19.6%를 나타냈다. 폐암 5년 생존율은 의료보험 국가가 24.9%인 데 비해 보편적 의료 국가는 19.8%로 낮았다.

이 같은 차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의료보험 체제에서는 민간과 공공이 의료 지출 부담을 나눠 지는 반면, 보편적 의료 체제는 정부가 예산으로 모든 의료비를 부담한다”며 “국가 재정 상황에 따라 의료 예산 지출이 들쭉날쭉한 보편적 의료 체제에서 의료 인프라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탈리아의 의료비 지출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지속적으로 감소했다. 환자 1000명당 병상 수도 3.18개로 독일(8개), 프랑스(6개) 등 인접 국가에 비해 적다.

“문재인 케어, 기조 바꿔야”

보건복지 분야에 이탈리아보다 28% 많은 돈을 쓰는 영국도 코로나19 사망률이 4.64%를 기록하고 있다. 보편적 의료 자체에 구조적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보편적 의료를 채택한 국가들은 환자의 진료대기 시간이 긴 것으로 유명하다”며 “이런 특징이 감염병 대처에 더 취약했을 것”이라고 했다.

한국은 의료보험 체제를 채택하고 있지만 영국 등 보편적 의료 국가를 모델로 보고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 정책을 펴고 있다. 문재인 케어 설계자인 김용익 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은 지난해 7월 한 강연에서 “영국에서는 보편적 의료 시스템 덕분에 환자들이 의사를 천사로 본다”며 “한국 건강보험의 설계상 문제를 문재인 케어가 해결할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케어 실행을 위해 정부는 2018년 5조원을 쏟아부었지만 건강보험 보장률은 62.7%에서 63.8%로 1.1%포인트 올라가는 데 그쳤다. 정부는 5년간 41조원을 투입해 2022년까지 보장률을 70%까지 끌어올리겠다는 목표다. 한 민간 보험 연구소 관계자는 “모든 의료 서비스를 국가가 해주겠다는 것은 취지는 좋지만 공공이 꼭 해줘야 할 부분을 놓친다는 사실을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알 수 있다”며 “한국 정부도 문재인 케어의 속도를 조절해야 한다”고 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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