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언대용신탁을 한 재산은 유류분이 아니라는 취지의 판결이 나오자 신탁업계는 일제히 환영하고 있다. 판결이 확정되면 그동안 유언신탁 활성화를 가로막아온 불확실성이 해소된다. 본인 의지에 따라 원하는 사람에게 재산을 상속할 길이 열리는 것이다. 1인 가구가 급증하는 가운데 유언대용신탁이 상속 갈등을 피할 대안으로 떠오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유언신탁 걸림돌 없어져 활성화 기대…상속 갈등도 줄어들 것"
최근 몇 년 새 유언대용신탁 이용 고객은 꾸준히 늘고 있다. 종합부동산세 부담이 커지면서 자녀에게 유언대용신탁을 통해 부동산 등을 미리 증여하는 사례도 증가했다는 설명이다. 가장 큰 걸림돌은 유류분 문제였다. 당사자가 유언신탁을 했더라도 사망 후 고인의 가족 등이 유류분을 주장하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법적 다툼으로 비화되는 일도 많았다. 서정원 국민은행 신탁운용부장은 “고객이 유언대용신탁을 의뢰할 때마다 유류분 문제로 인한 갈등 가능성을 사전에 항상 안내해왔다”며 “불확실성이 사라지면 유언신탁 관련 상품이 훨씬 더 각광받게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유언대용신탁이 활성화되면 사회적으로도 긍정적 효과가 크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신탁은 유언장보다 상속 갈등의 여지가 적다. 유언장은 집행기관에서 ‘최종 유언장’인지를 확인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추후에 다른 가족과의 협의 또는 동의를 거쳐야 하는 사례가 많았다는 설명이다. 금전·부동산·주식·전세보증금 등 신탁할 수 있는 자산이 다양한 것도 신탁의 장점이다.

사회적 변화를 고려할 때 유언대용신탁 수요는 더욱 늘어날 것이라는 전망이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1인 가구와 비혼, 딩크족(자녀 없이 사는 부부) 등 새로운 형태의 가구가 늘면서 상속 대상이 불분명한 사례와 이로 인한 갈등이 급증하고 있다”며 “유류분 문제가 정리되면 가깝지 않은 가족 또는 친척 대신 원하는 기부단체나 타인에게 원하는 대로 상속할 수 있는 시대가 열리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장애인과 미성년자 자녀 등 의사 결정이 미숙한 가족에 대한 상속 재산을 특정 기간 신탁하는 것도 활성화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아직 넘어야 할 규제도 많다. 신탁은 다수의 고객을 상대로 광고·홍보를 할 수 없다. 상품에 가입하려면 반드시 금융회사를 직접 찾아가야 한다. 금융사가 다수의 신탁재산을 묶어 펀드식으로 운용하는 ‘합동운용’과 신탁 부동산 등을 임대차관리 회사 등에 위탁하는 ‘재신탁’도 금지돼 있다. 부동산 등기법상 등기를 할 때 상속지정인을 제출해야 해 비밀 보장이 어렵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정소람 기자 r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