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시장에서 금융감독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 사태 등 대형 금융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는데도, 금융회사만 탓할 뿐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금융시장에서 금융감독원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생결합펀드(DLF)와 라임 사태 등 대형 금융 스캔들이 잇따라 터지고 있는데도, 금융회사만 탓할 뿐 관리감독 소홀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금융회사엔 폭압적 제재, 감독 부실 책임은 모르쇠.” “문제점이 뭔지 모르니 자료 요구만 방대해진다.”

금융권의 현직 대관(對官)업무 담당자들이 털어놓은 금융감독원의 모습이다. 파생결합펀드(DLF), 키코, 라임 사태 등 대형 금융 스캔들이 잇달아 터지면서 금감원의 이런 문제점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경제신문은 이달 초부터 1주일간 은행·증권·보험·카드·핀테크(금융기술) 등 금융권 전 업종의 대관팀에 “금감원을 평가해달라”고 요청했다. 51개 금융회사·협회에서 76명이 조사에 응했다.

"금감원, 현장 모르고 不通…예방보다 뒷북제재에 몰두"
금감원 관련 업무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80.3%가 “그렇다”고 답했다. 어려웠던 경험(복수응답)으로는 △행정편의주의적 규정 해석(63.9%) △무리한 자료 제출 요구(60.7%) △업계 주장·해명을 듣지 않음(55.7%) 등이 주를 이뤘다. 대관 담당인 A씨는 “예방에 무게를 둬야 하는데 사건이 터진 뒤 제재에만 몰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감원의 사전 예방·감독이 “부적절했다”는 평가는 DLF 82.9%, 라임 78.9%, 키코 81.3%에 달했다. B씨는 “세 상품은 모두 금융당국의 허락을 받고 판매됐다”며 “금감원은 별다른 사과 없이 오히려 자신의 조직과 권한을 키우는 계기로 활용했다”고 꼬집었다.
'금융스캔들' 터지면 마구잡이 제재
금융위·금감원 엇박자도 일쑤


“업계에서 흔히 ‘금융감독원에 칼잡이가 없다’고들 말합니다.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가 환자가 어디 아픈지 모르니 일단 다 열고 본다는 거죠.”

한 금융회사의 대관팀장은 금감원이 ‘부실한 사전감독, 과도한 사후제재’라는 과오를 반복하는 원인을 이렇게 짚었다. 2~3년마다 담당자가 싹 바뀌니 현장을 모르는 게 당연하고, 경중을 따지지 않은 채 온갖 자료를 요구하고, 입장이 오락가락한다는 것이다. 또 다른 대관 담당자는 “금감원은 인사철마다 업무 공백이 심한데 올해도 여지없이 반복됐다”며 “2월 인사발령을 전후로 1~3월에는 업무 협의가 거의 정지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금감원, 현장 모르고 不通…예방보다 뒷북제재에 몰두"
‘자료요구 폭탄’에 금융회사 마비

한국경제신문은 금융권 현직 대관 담당자 76명에게 금감원의 역량을 평가해 달라고 요청했다. 가장 박한 점수를 받은 항목은 ‘신속성’이었다. 부정적 평가가 68.0%(부족 49.3%, 매우 부족 18.7%)에 달했다. 현장감각(65.8%), 소통능력(65.3%), 일관성(61.8%) 등도 부정적 응답(부족+매우 부족)이 압도적이었다.

대관팀 A씨는 “불필요한 자료 요청이 현업에 상당한 부담이 된다”며 “검사 전에 미리 사안을 면밀히 검토해 필요한 자료만 요청하면 좋겠다”고 했다. 검사 과정에서 “편하게 가자며 ‘문제점을 알아서 보고해 달라’는 직원이 있다”거나 “회사 전산망 전체를 보여달라는 말도 안 되는 요구를 받았다”는 대관맨도 있었다.

응답자 중 22명은 “금융위원회와 금감원의 말이 달라 혼란스러운 적이 있었다”고 했다. 인허가와 제재 권한을 쥐고 있는 양쪽이 엇박자를 내면 중간에 낀 금융회사가 난감하다는 호소다. 대관팀 A씨는 “금융위와 금감원의 미스매치가 시장의 혼란을 부추긴다”며 “금감원이 금융위 산하기관인데 최종 의견은 일치돼야 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금융감독원이 소비자보호원 같다”

긍정적 평가가 많았던 항목은 ‘소비자 보호’로 86.9%(우수 65.8%, 매우 우수 21.1%)를 기록했다. 다만 “문제가 터지고 나서 보호한다” “블랙 컨슈머까지 보호한다” 같은 ‘뼈있는 말’을 덧붙인 사람이 많았다. ‘금융은 튼튼하게(시장 안정), 소비자는 행복하게(소비자 보호)’를 공식 비전으로 내세운 금감원이 후자에만 매몰되고 있다는 것이다.

대관팀 B씨는 “국내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금감원의 본래 역할에 충실하면 소비자 보호는 자연스레 달성되는 것”이라며 “소비자보호원의 시각으로 금융회사를 바라보는 것은 문제”라고 꼬집었다. 청렴성(78.9%)과 전문성(76.3%) 등도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다만 ‘갑(甲)의 DNA’는 여전히 남아 있다는 게 다수 의견이었다. C씨는 “개개인은 다 스마트한 사람인데 조직 대 조직으로 일하면 느리고 소통이 안 된다”고 했다.

“금융회사엔 엄격, 스스로엔 관대”

금감원이 개선해야 할 점으로 ‘내로남불’을 지적하는 사람이 많았다. 파생결합펀드(DLF), 키코, 라임 사태 등 최근 금융 스캔들에서 금감원의 사후 검사·제재가 ‘부적절했다’는 응답은 DLF 64.0%, 라임 58.1% 키코 63.5%에 달했다.

D 대관팀장은 “감독 실패에 대한 자성 없이 금융회사를 고압적으로 검사하고 압박해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공공기관이 아닌 금감원에 제재 권한을 준 것은 그만큼 책임도 지라는 의미”라며 “감독 결과에 잘못이 있었다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증권업계에서는 “‘코스닥 벤처 펀드’와 ‘성장금융 펀드’는 금융당국의 홍보성 정책으로 소비자 피해가 급증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대관 담당자들은 “금감원이 ‘예방적 감사’를 강조해 왔지만 실제로는 감사 실적을 채우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 관계자는 “검사에서 새로운 내용을 적발하면 다른 금융회사에 전파해 바로잡아야 정상인데, 오히려 꽁꽁 숨겼다가 다른 곳 검사 때 써먹기도 한다”고 했다.

금감원이 ‘그림자 규제’를 여전히 남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많았다. 업계 관계자는 “법령 등에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은 사항에 대해 구두나 이메일로 지시한 뒤 ‘개선하지 않으면 감사 대상에 넣겠다’고 말한다”고 털어놨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