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재택감옥?…우는 애들 돌보랴, 늘어지는 업무에 '끙끙' [김과장 & 이대리]
영화 투자·배급사에 다니는 최모씨는 요즘 속이 타들어가는 심정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최씨가 준비해온 신작 영화의 개봉이 미뤄졌기 때문이다. 영화관을 찾는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면서 영화업계는 최악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는 전언이다.

그의 마음이 갑갑한 건 이 때문만이 아니다. 회사 방침에 따라 재택근무를 하고 있는데 도무지 업무 효율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최씨는 “사내에서 회의했으면 1~2시간 내 끝낼 일을 몇 시간 동안이나 질질 끌었다”며 “메신저로 회의를 하다 보니 답이 늦고 의견 전달도 명확히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코로나19가 김과장 이대리의 직장 생활 방식을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 경영난에 빠진 기업들은 대규모 휴직에 들어갔고, 코로나19 확진자 발생으로 공장이나 사업장을 폐쇄하는 기업이 잇따르고 있다. 아예 직원들에게 재택근무를 하게 하는 기업도 늘어나고 있다.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때도 볼 수 없던 풍경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겪고 있는 김과장 이대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린 재택근무 안 하나요”

서울의 한 제조업체에서 근무하는 김 과장은 지난주부터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 김 과장이 다니는 회사 건물에서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탓이다. 다행히 이 회사는 클라우드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집에서도 사무실과 같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고 한다.

김 과장은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재택근무는 처음”이라며 “하루 3시간 출퇴근 시간을 아낄 수 있어 좋다”고 했다. 이어 “반바지를 입고 일해도 아무도 뭐라 하지 않고, 내 마음대로 점심 메뉴를 고를 수 있어 편하다”고 덧붙였다.

반면 재택근무가 달갑지 않은 사람도 있다. 자산운용사에 다니는 이 대리는 회사로 출근하는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이 대리는 “아이들이 시도 때도 없이 놀아달라고 해 집중이 되지 않는다”며 “회사에서처럼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눈치를 봐야 해 불편하다”고 볼멘소리를 했다. 그는 “일할 때는 집보다 회사에 있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 귀띔했다.

아직 재택근무를 시행하지 않은 회사의 직원들은 불안감을 호소한다. 정보기술(IT) 기업에 다니는 김모씨는 요즘 텅 빈 지하철을 타고 출근한다. 코로나19 확진자가 인근 식당을 다녀간 것으로 확인되면서 주변 기업들이 재택근무를 시행하거나 출근 시간을 1시간가량(오전 9시→오전 10시) 늦췄기 때문이다. 김씨는 “마치 좀비 영화처럼 점심시간에도 길거리에 다니는 사람이 없다”며 “다들 불안해하는데 왜 우리 회사는 재택근무를 안 하는지 의아스럽다”고 했다.

나 때문에 직장 폐쇄될까 ‘전전긍긍’

코로나19 때문에 일거리를 잃은 직장인이 적지 않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에 다니는 이 과장은 한 달간 휴직에 들어갔다. 회사가 모든 직원을 대상으로 휴직을 시행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LCC들은 코로나19로 하늘길이 막힌 데다 여행객까지 급감하면서 직격탄을 맞았다.

이 과장은 기존 임금의 70%를 받는 유급 휴직으로 처리됐다. 지인들은 ‘뜻밖의 휴식을 취하게 됐다고 생각하라’고 조언하지만 이 과장의 마음은 무겁기만 하다. 그는 “동료들 사이에 정말 회사가 망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이참에 이직 준비를 하겠다는 직원들도 있다”고 전했다.

유통업계에 종사하는 김 주임은 팀 전체가 회사 교육실에 격리돼 근무하고 있다. 한 팀원의 가족이 코로나19 의심 증상을 보인 데 따른 조치다. 팀원들은 서로 멀리 떨어져 앉아 회사가 새로 지급한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고 있다. 김 주임은 “회사에 출근하자마자 교육실로 바로 격리됐다”며 “가족이 의심 증상을 보인 팀원은 자신 때문에 직장이 폐쇄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직장인들의 점심시간 모습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광고회사 최 대리 팀은 각자 도시락을 싸서 다닌다. 코로나19를 예방하기 위해 식당에 가지 않기로 했다. 최 대리는 “팀원 대부분이 어린아이를 둔 엄마들이어서 당분간 도시락으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며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는 일이 귀찮긴 하지만 감염 걱정 없이 안심하고 먹을 수 있어 좋다”고 강조했다.

서울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박 과장은 팀장만 생각하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회사에서 당분간 회식을 자제하라고 한 지 1주일이 채 되지 않은 시점에 팀장이 ‘번개 회식’을 제안했기 때문이다. 팀원들은 모두 표정이 굳었지만 팀장은 아랑곳하지 않는 눈치였다. 박 과장은 “온 나라가 코로나19 때문에 난리통인데 이 와중에 회식이라니 황당하다”며 “만에 하나 팀원 중에 확진자가 나오면 어떻게 뒷감당하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고 혀를 찼다.

코로나19 확진자와 접촉한 행세를 하며 휴가를 가려는 비양심적인 직장인도 일부 있다. 확진자가 방문한 식당이나 영화관 영수증을 구해 회사에 제출하고, 접촉자 행세를 하며 휴가나 공가를 쓰려는 것이다. 인터넷 SNS에는 “확진자가 방문한 가게에서 물건을 구입한 영수증을 산다”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박상용 기자 yourpenci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