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파리 진출한 '던스트'…비결은?
“외부에서 인재를 영입하겠다. 결재라인 없이 움직이는 프로젝트팀을 구성하게 해달라.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해달라.”

대기업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요청이었다. 보고 없이 모든 의사결정을 하고 옷을 만들어 팔겠다니. 누가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른 채 신규 브랜드에 투자하라는 얘기였다.

2018년 여름 오규식 LF 사장(현 부회장)은 트렌드 조사 업무를 맡고 있던 유재혁 연구개발(R&D)실 과장에게 이 일을 맡겼다. 1974년 반도패션으로 시작한 LF가 스트리트패션 브랜드 사업을 고민하던 시기였다. 기존 다른 브랜드 팀과 다르게 움직이는 조직이 필요했다. 오 사장은 마침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에 관심이 많고 오랜 기간 트렌드를 조사해온 직원에게 팀장을 맡기는 모험을 했다.

자율과 무간섭이 성공 비결

1년 만에 파리 진출한 '던스트'…비결은?
유 팀장은 ‘자율성’을 약속받고 일을 시작했다. 건축, 사진, 패션 등 다양한 분야를 전공한 20대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찾아 다이렉트메시지(DM)를 보냈다. 네 명이 영입됐다. 브랜드명, 디자인, 기획, 생산, 판매도 LF 임원과 사장의 결재 없이 이뤄졌다. 오 사장은 “나는 그저 투자자이니 브랜드 대표가 마음대로 운영하라”며 유 팀장에게 힘을 실어줬다.

그렇게 나온 브랜드가 던스트다. 고대 유럽어로 ‘무형의’ ‘형체가 없는’이라는 뜻이다. 유 팀장은 “이름에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 자체가 옛날 방식이라서 던스트로 정했다”고 했다. 브랜드 콘셉트는 ‘밀레니얼 감성 캐주얼’로 잡았다.

시장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난해 2월 처음으로 30가지 옷을 내놨는데 무신사, 29CM 등은 화보를 보자마자 당장 입점하자고 요청했다. 유 팀장이 인스타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밀레니얼세대들과 호흡을 맞춰 내놓은 옷에 20대는 열광했다. 가격이 비싸지 않고 지금 트렌드에 딱 맞는 스타일, 너무 튀지 않는 디자인, 그런데 뭔가 미세하게 다른 색감 등이 1020 소비자를 사로잡았다.

무엇보다 빠른 의사결정이 주효했다. 기성복은 신제품 주기가 길어 지금 당장 입을 트렌디한 옷을 내놓기 쉽지 않다. 던스트는 두 달에 한 번 신제품을 출시했다. 형광색을 많이 쓰고 커다랗게 영문을 넣는 등 튀는 스타일을 지향하는 기존 스트리트패션 브랜드와 던스트는 달랐다. 무난한 디자인을 기본으로 디테일에 변화를 줬다. BTS, 현아, 슈퍼M, 엑소, 위너, 마마무 등이 돈 주고 사서 입는 브랜드로 소문이 퍼지기도 했다.

해외 바이어가 먼저 구입 요청

1년 만에 파리 진출한 '던스트'…비결은?
던스트는 LF가 운영하는 모든 브랜드를 통틀어 지난해 가장 장사를 잘한 브랜드에 주는 올해의 브랜드상을 받았다. LF에서 목표를 20%나 초과 달성한 건 던스트가 유일했다. 아직 매출 규모가 크진 않지만 온라인 전용 브랜드로는 상당한 이익을 내고 있는 데다, 차세대 소비자인 밀레니얼세대를 겨냥해 성공적으로 시장에 안착한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보통 신생 캐주얼 브랜드는 첫해 매출 5억원을 넘기기 어렵다. 던스트는 지난해 수십억원의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봄과 가을에 열리는 서울패션위크에서는 해외 바이어들이 던스트를 먼저 찾았다. “옷을 보고 싶다” “대량 구매가 가능하냐”는 등의 문의를 했다. W컨셉은 미국 온라인몰에서 던스트를 팔겠다고 했고, 일본 중국 대만에서 온 바이어들도 옷을 사가기 시작했다. 보통 바이어들은 옷 한 종류에 2~3장씩 샘플로 사가는데, 중국 바이어들은 1000장씩 구매하기도 했다. 던스트는 중국 티몰글로벌이 단독 브랜드관을 열어줄 정도로 ‘핫한’ 브랜드가 됐다.

파리 핵심 상권에도 진출

1년 만에 파리 진출한 '던스트'…비결은?
던스트의 가장 큰 성과는 ‘패션의 본고장’ 프랑스 파리 진출이다. 지난해 가을 열린 서울패션위크에서 던스트 옷을 보고 간 파리 로미오쇼룸 바이어로부터 올초 연락이 왔다. 로미오쇼룸은 마레지구에 있는 파리 최대 규모 편집숍으로 인기 브랜드들만 입점하는 곳이다.

바빠진 던스트 팀은 1년 만에 다섯 명에서 열 명으로 팀원을 늘렸다. 이들은 연간 여섯 번의 컬렉션을 위해 두 달 안에 신제품 기획을 끝내고 모든 팀원이 샘플을 입어본 뒤 수정을 거친다. 월별, 주별로 트렌드를 분석하고 ‘나는 무슨 옷을 입고 싶은가’ ‘요즘 스무 살은 어떤 스타일을 선호하나’ 등을 끊임없이 고민한다. 마치 개인 사업처럼 적극적으로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건 모두 자율성 덕분이다.

유 팀장은 “밀레니얼세대들이 지금 당장 입고 싶은 옷을 내놓는 것, 대중과 소통하는 브랜드로 던스트를 키우는 게 목표”라고 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