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원전 이용 줄어든 여파
2년 연속 주주배당도 못해

전기요금 인상 불가피
한전, 상반기 요금 개편안 마련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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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대 공기업인 한국전력이 11년 만에 최악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가장 저렴한 발전원인 원자력 발전 이용률이 저조했던 데다 경기 침체 등으로 전력 수요마저 줄어든 탓이다.

한전은 작년에 연결재무제표 기준으로 1조3566억원의 영업적자를 냈다고 28일 공시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제 유가가 배럴당 최고 150달러까지 치솟았던 2008년(-2조7981억원) 후 가장 저조한 실적이다. 매출은 전년 대비 2.5% 감소한 59조928억원을 기록했다. 2년 연속 주주배당도 하지 않는다.

한전은 탈원전 정책 시행 이전인 2016년만 해도 영업이익이 12조16억원에 달했던 초우량 기업이었다. 2016년 79.7%였던 원전 이용률은 작년 70.6%로 낮아졌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한전이 원전 이용률만 예년 수준을 보였다면 2년 연속 적자는 피할 수 있었다”고 지적했다.

비상경영 중인 한전은 올 하반기부터 전기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한전이 전기요금을 1% 올리면 국민 부담은 약 5000억원 늘어난다. 김병인 한전 재무처장은 “지속 가능한 전기요금 체계를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원전 1% 줄일 때마다 1900억 수익↓
한전, 3년새 '부실 덩어리' 추락


초우량 공기업이었던 한국전력이 ‘약골’로 추락하는 데는 채 3년이 걸리지 않았다. 한전의 작년 말 연결재무제표 기준 부채는 총 128조8000억원. 역대 최대 규모다. 2016년 143.4%였던 부채비율은 작년 186.8%로 치솟았다.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함께 신규 채용 대거 확대, 한전공대 설립 등 정부 시책을 따르다 적자 수렁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경주 월성원자력발전소 1호기.

유가 낮은데도 적자폭 확대

한전은 2018년 6년 만에 영업 손실(-2080억원)을 냈다. 당시 한전은 “국제 유가 등 연료비 상승이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유가가 떨어진 작년 적자폭은 1년 전보다 6.5배 늘었다. 김병인 한전 재무처장은 “연료비 부문에선 오히려 1조8000억원의 비용절감 효과를 봤다”며 “냉난방 수요 감소로 전기 판매수익이 전년 대비 9000억원 줄어든 게 결정적인 요인”이라고 말했다.

작년 전력 수요가 예상보다 줄어든 게 실적 악화의 원인이었다는 얘기다. 작년 전력 판매량은 총 5억2049만㎿h로,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경기 침체 탓이 크다. 전체 수요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용 전력 수요는 1.3% 위축됐다. 전력 수요가 줄어든 건 20년 만에 처음이다.

정책 변화로 온실가스 배출권 비용이 2018년 530억원에서 작년 7095억원으로 급증한 것도 부담으로 작용했다. 방사성폐기물 관리 등 원전 관련 비용은 전년 대비 1874억원 늘었다. 신규채용 확대 및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에 따른 인건비 부담도 4976억원 증가했다. 2017년 2만1615명이던 한전 정규직이 작년 말 2만2925명으로, 2년 만에 1310명 늘어난 여파다.
-1조3566억…한전, 11년 만에 최악 적자

“원전 더 돌렸다면 흑자 가능”

발전업계에선 원전 이용률이 ‘정상’ 상태였다면 한전이 최악의 적자를 피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전력통계에 따르면 한전이 작년 구입한 원자력 전력 단가는 ㎾h당 58.50원이었다. 원전의 대체 발전원으로 꼽히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 단가(119.13원)의 절반에 불과했다.

작년 원전 이용률은 역대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 2016년 이전 80~90%에 달하던 원전 이용률은 2017년 71.2%, 2018년 65.9%, 작년 70.6%를 기록했다. 작년 이용률은 한국수력원자력의 연간 목표치(77.4%)에도 크게 못 미치는 수치다. 한전 내부적으로는 원전 이용률이 1%포인트 상승할 때마다 1900억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총 98기의 원전을 가동 중인 미국의 원전 이용률은 작년 기준 93.5%였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작년에 원전 이용률이 80%만 됐어도 한전은 1조1200억원의 전력 구입비를 아낄 수 있었다”고 계산했다. 김병인 처장도 “올해 원전 이용률이 오르면 실적 개선엔 긍정적인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세금 투입하거나 요금 올리거나

한전이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는 두 개뿐이다. 정부에 세금 지원을 요청하거나 전기요금을 인상하는 것이다. 대규모 적자를 냈던 2008년에는 정부가 추가경정예산 6680억원을 긴급 투입했다. 하지만 예산을 쓰기엔 명분이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국가적 위기를 겪은 2008년과 달리 작년에는 탈원전 등에 따른 정책 비용 외엔 특별한 변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발전업계는 한전이 하반기에 전기요금을 3~5% 올릴 것으로 보고 있다. 한전은 조만간 요금 개편안을 마련해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에 제출할 계획이다. 한전 관계자는 “전기요금은 공익성과 수익성을 같이 봐야 하는 만큼 정부와 협의해 인상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선 한전이 비용을 아끼려고 중국산 설비·자재 사용을 확대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에너지흥사단 원자력국민연대 등 시민단체들은 최근 성명서에서 “한전이 조만간 국제입찰에 부칠 완도~제주 구간 해저케이블 건설사업에 중국 업체 참여 가능 여부를 묻는 유권해석을 기획재정부에 의뢰했다”며 “탈원전 정책으로 막대한 적자를 안게 된 한전이 꼼수를 동원해 비용 절감에 나서는 상황을 묵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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