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전사업 노·사·전문가 협의체
"자회사로 편입하라"

전례 없이 1년여 만에 결론
'최대주주' 자유총연맹에 공문
한전산업 보유 지분 매각 요청
지분 팔려던 '2대주주' 한전엔
추가매입 요구로 재정부담 안겨
한전산업개발이 2003년 민영화된 지 17년 만에 공공기관으로 회귀하게 됐다. 26일 서울 서소문동 한전산업 본사로 방문객이 들어가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한전산업개발이 2003년 민영화된 지 17년 만에 공공기관으로 회귀하게 됐다. 26일 서울 서소문동 한전산업 본사로 방문객이 들어가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003년 어렵게 민영화한 한전산업개발이 17년 만에 다시 공공기관 전환 절차를 밟게 됐다. 민간기업이 공기업으로 되돌아가는 국내 첫 사례다. 서비스 및 경영 효율을 높이기 위해 공기업 지분을 적극 매각해온 역대 정부와 상반된 조치란 점에서 논란이 예상된다.

노조 손 들어준 공영화

26일 정부와 업계에 따르면 한국중부발전 등 발전 5개사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고용 문제를 논의해온 ‘발전사업 노·사·전문가협의체’는 최근 한국전력에 공문을 보내 “한전에서 민영화된 한전산업개발을 다시 자회사로 편입하는 방안을 검토해달라”고 요청했다. 한전산업 대주주인 한국자유총연맹(지분율 31%)에는 지분 매각을 권고했다.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공기업이 기업 지분을 50% 이상 소유하거나, 30% 이상 보유한 채 실질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면 기획재정부가 공공기관으로 지정할 수 있다.

노·사·전 협의체는 발전 5사 및 비정규직 근로자 대표, 전문가 등 15명으로 구성됐으며,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여당도 논의에 참여하고 있다. 한전산업 관계자는 “고용 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있는 협의체가 공공기관 전환에 최종 합의했다”며 “정부도 수용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단독] 한전산업 17년 만에 공기업化…'적자' 한전, 재정부담 '혹' 붙일 판

발전설비 운전·정비업체인 한전산업이 공공기관 전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2018년 12월 충남 태안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던 김용균 씨가 숨진 사고가 계기가 됐다. 노·사·전 협의체는 재발 방지 차원에서 지난 1년여간 ‘한전산업 처리’ 문제를 논의해왔다. 발전소 비정규직이 가장 많이 소속된 기업이 한전산업이기 때문이다. ‘발전산업 고용안정 태스크포스’(당정TF)에 참여하고 있는 민주당 관계자는 “협의체가 1년여 논의 끝에 결론을 낸 만큼 그대로 추진하는 절차만 남았다”며 “지금으로선 비정규직 처우 향상이 당정의 최우선 고려 사항”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등 노조 주장을 그대로 수용한 결과라는 해석이다. 노조는 정년 보장 등 조합원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한전산업의 공영화를 주장해왔다.

수의계약 논란 불거질 수도

발전업계에선 한전산업의 공기업화에 대해 우려하는 시각이 적지 않다. 우선 공공기관으로 바뀌는 한전산업이 같은 공기업인 중부·서부발전 등의 설비 운전·정비 입찰에 참여할 수 있을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발전업계 관계자는 “발전 공기업과 한전산업 모두 한전 자회사로 바뀔 경우 계열사 간 계약은 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지금 상태 그대로 한전산업이 한전 자회사로 편입되면 새로운 시장을 뚫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발전 공기업들은 2006년 “수의계약을 최소화하라”는 감사원 지적을 받은 뒤 발전설비 운전·정비 업무를 경쟁입찰 방식으로 대폭 바꿨다. 현재 한전산업의 발전소 운전·정비 시장 점유율은 77% 정도다.

이에 대해 한전산업 측은 “공공기관 전환 후 일감을 뺏기면 정상적인 고용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 차원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 중인 것으로 안다”며 “다른 민간업체들을 흡수 통합하고 발전소 계약을 최장 6년으로 장기화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상장기업인 한전산업 투자자 사이에서 공기업 전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현 정부 들어 공기업 주가가 대부분 큰 폭으로 하락했기 때문이다.

‘적자 한전’ 재정 부담 가중

지난 2년간 적자를 기록한 한전은 또 다른 부담을 지게 됐다. 지금 보유 중인 한전산업 잔여 지분을 매각해 유동성을 확보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졸지에 지분을 더 늘려 최대주주로 올라서야 할 판이다. 한전은 작년까지만 해도 한전산업 지분 전량을 ‘매각 가능 물량’으로 분류해 공시했다. 한전은 2018년 1조1745억원의 순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작년엔 더 큰 폭의 적자를 냈을 것으로 추산된다.

한전산업이 공공기관으로 바뀌면 기업 경쟁력이 약해질 게 뻔하다는 지적도 있다. 공기업화하면 인건비 등 경직성 경비가 크게 늘어날 가능성이 있어서다. 발전설비 운전·정비 부문에서 거대 공기업이 탄생하면서 서비스 경쟁이 사라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과 교수는 “멀쩡한 민간업체를 공기업으로 바꾸는 건 지속 가능성 및 재정 부담 측면에서 바람직하지 않다”며 “발전서비스 부문의 경쟁력 향상을 목표로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추진했던 민영화 노력이 어떤 이유로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인지 설명이 필요하다”고 했다.

조재길/임도원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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