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정권 유불리 따라 달라지는 靑 답변 속도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 개설된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은 ‘국민이 묻고 정부가 답한다’는 취지로 호평받았다. 불통(不通) 이미지가 강했던 전 정권과 비교되며 현 정부가 소통에 힘쓸 것이란 기대가 많았다.

최근 국민청원 게시판을 가장 뜨겁게 달군 것은 ‘중국인 입국금지 요청’이었다. 지난달 23일 시작된 이 청원은 이달 22일 끝났는데 총 76만1833명이 참여했다. 국민청원은 한 달간 참여(동의) 인원이 20만 명을 넘은 질문에 소관 부처의 장이나 청와대 고위 관계자가 동영상 답변을 남겨야 한다.

중국인 입국금지 청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을 막기 위해 중국 전역을 입국금지 대상 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지난 4일 우한이 있는 후베이성만 입국금지 대상 지역으로 지정한 뒤 이를 유지하고 있다. 해당 청원은 지난달 26일 이미 20만 명 이상이 동의해 답변 기준을 충족했다. 하지만 한 달이 다 되도록 정부에서 어느 누구도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정부와 청와대는 몇몇 청원에 대해 참여 인원이 20만 명이 되는 순간 즉각 답변을 했다. ‘고(故) 장자연 사건’의 증인이라 주장했던 윤지오 씨가 작년 3월 30일 ‘안녕하세요. 증인 윤지오입니다’라는 제목으로 올린 청원이 대표적이다. 윤씨가 “경찰의 신변보호를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직접 쓴 글로 참여 인원 20만 명이 된 당일에 답변이 달렸다. 당시는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윤씨가 과거 정권과 보수언론의 잘못을 증언할 공익제보자라고 추켜세우던 때다.

해당 청원은 하루 만인 3월 31일 20만 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고 같은 날 원경환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은 “경찰이 미진한 부분이 있었다”며 사과 형식의 답변을 올렸다. 캐나다에 체류 중인 윤씨는 사기 등의 혐의로 작년 11월 인터폴에 적색수배됐다. 원 전 청장은 민주당 예비후보로 총선 출마를 준비 중이다.

윤씨가 직접 청원 게시판에 글을 쓰기 전인 작년 3월 8일과 12일에 각각 올라온 ‘윤지오 씨 신변보호’와 ‘장자연 사건 재수사’ 청원은 같은 달 18일에 답변이 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 등에게 “오랜 세월 동안 진실이 밝혀지지 않았거나 심지어 은폐된 사건이 있다”며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는 동영상이었다.

코로나19로 인한 국민적 위협이 장자연 사건의 철저한 수사나 윤씨의 신변보호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중국인 전면 입국금지를 시행하지 않는 이유에 관한 청와대나 정부 관계자의 성실한 답변을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