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이사회가 외부 인사인 사외이사에게 의장직을 맡겼다. 1969년 삼성전자가 설립된 지 51년 만에 처음이다. 이사회의 독립성과 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삼성전자는 21일 이사회를 열고 사임한 이상훈 이사회 의장의 후임으로 박재완 사외이사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는 “2018년 3월 이사회 의장과 대표이사를 분리한 데 이어 사외이사를 이사회 의장으로 선임했다”며 “이사회 중심의 책임경영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본지 2월 21일자 A1면 참조

박 신임 의장은 이사회에 상정할 안건을 결정하고 이사회를 소집해 회의를 진행하게 된다. 이사들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도 한다.
삼성 51년 만의 변화 외부인사가 이사회 의장 맡았다
투명성 강화 기반 마련

박 의장은 이명박 정부 때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내고 현재는 성균관대 행정학과 교수직과 한반도선진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2016년 3월부터 삼성전자 사외이사로 활동해 사외이사 6인 중 가장 선임이다. 지난해 12월 이 전 의장이 삼성전자서비스 노조 와해 의혹으로 구속되면서 가장 먼저 선임된 박재완 사외이사가 의장직을 대행해왔다.

최근 재계에서는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하는 추세다. 경영을 담당하는 대표이사가 경영진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이사회 의장을 겸직할 경우 이사회의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주 신뢰를 중시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대표이사와 이사회를 분리 운영하는 이유다.

SK그룹은 지난해 3월 최태원 SK 회장이 지주회사인 SK(주) 이사회 의장에서 물러나면서 외부인사인 염재호 전 고려대 총장에게 의장직을 맡겼다. 삼성전자는 일찌감치 대표이사와 이사회 의장을 분리했지만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CFO) 출신으로 사내이사였던 이 전 의장이 의장직을 수행했다.

업계에서는 삼성이 투명 경영을 강화하는 제도적 기반을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이사회 이외에도 삼성전자 등 7개 삼성 주요 계열사는 지난 1월 준법경영을 감시하는 외부 독립 기구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를 설립한 바 있다. 위원장은 김지형 전 대법관이 맡아 외부 감시 기능을 강화했다.

주총, 처음으로 회사 밖 개최

삼성전자 이사회는 또 사내이사 후보로 한종희 사장과 최윤호 사장을 추천하기로 결의했다. 영상디스플레이(VD)사업부장인 한 사장은 세트 사업 부문의 선임 사업부장으로 주요 핵심 보직을 두루 거쳤다. 이사회와 사업부 간 가교 역할을 수행하면서 회사의 사업 역량과 이사회의 위상 강화에 기여할 것으로 회사 측은 기대했다.

올해 경영지원실장(CFO)에 선임된 최 사장은 재무 분야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사업부의 경영 활동을 지원하고 견제할 것으로 전망된다. 사업 부문 간 주요 의사결정을 조율하는 역할도 맡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 사장과 최 사장은 다음달 18일 열리는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로 선임될 예정이다.

삼성전자 이사회는 현재 이 전 의장의 사퇴로 사내이사는 김기남 대표이사 부회장과 김현석 대표이사 사장, 고동진 대표이사 사장 등 3명이다. 주총에서 한 사장과 최 사장이 신규 선임되면 사내이사는 5명으로 늘어난다. 사외이사는 이번 주총에서 신규로 선임하지 않을 예정으로 기존의 6인 체제가 유지된다. 이재용 부회장은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 재판 등에 따라 지난해 10월 사내이사 임기를 연장하지 않고 물러나 부회장직만 맡고 있다.

한편 다음달 18일 열리는 주주총회는 오전 9시 경기 수원시 수원컨벤션센터 3층 컨벤션홀에서 열린다. 삼성전자가 주총을 회사 관련 건물이 아닌, 외부에서 여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액면분할 이후 소액주주가 많이 늘어나면서 기존의 서울 서초사옥은 이들을 모두 수용하기에 물리적인 한계가 있어 더 큰 장소로 옮기는 것이라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