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전관 세무사'에 대한 집중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세무사 업계가 뒤숭숭하다. 김현준 국세청장이 작년 6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세청이 '전관 세무사'에 대한 집중 세무조사에 착수하자 세무사 업계가 뒤숭숭하다. 김현준 국세청장이 작년 6월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답변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무사 업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국세청이 ‘가족’으로 알고 있던 세무사들을 정조준하고 있기 때문이죠. 일부 세무사들이 세법 지식과 인맥 관리를 통해 지능적인 세금 탈루에 나서거나, 편법을 일삼는 기업·개인에 조력을 제공하고 있다는 게 국세청의 인식입니다.

국세청이 지난 18일 예고 없이 발표한 ‘편법·지능적 탈세 혐의자 138명 집중 조사’ 대상자엔 고위 공직자로 퇴직한 뒤 막대한 수입을 올리면서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은 세무사가 여러 명 포함됐습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우리 기준으로 고위 공직자는 사무관급(5급) 이상이고, 이번에 세무조사를 받게 된 세무사는 10명 남짓”이라고 확인했습니다.

국세청은 “페이퍼컴퍼니를 설립한 뒤 허위 세금계산서를 집중 발행하는 방법으로 경비를 부풀려 수십 억원의 세금을 포탈한 전문직도 최근 적발했다”고 설명했습니다. 탈세 혐의자 본인 뿐만 아니라 가족 등 관계자의 재산 형성 과정까지 들여다본 뒤 포탈 세금을 추징하는 한편 검찰 고발도 적극 진행한다는 게 국세청의 방침입니다. 국세청 관계자는 “전관예우를 바라는 국세청 출신 세무사에 대해선 앞으로도 중단없이 조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국세청은 이미 서울 강남권의 세무법인 두 곳에 요원들을 보내 비정기 세무조사에 착수한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두 곳 모두 국세청 고위 간부 출신들이 설립한 곳입니다. 한 곳은 몇 년 전까지 본청 조사국장을 지냈던 인물이, 다른 한 곳은 서울청 조사4국장을 지낸 뒤 대전청장까지 올랐던 인물이 각각 설립했지요.

본청 조사국은 기획조사 업무 계획을 짜는 최고 요직입니다. 서울청 조사4국 역시 과거 ‘특별 세무조사’로 불렸던 비정기 세무조사를 담당하는 핵심으로 꼽힙니다. 전국 2만여명에 달하는 세무 공무원들 사이에서 가장 힘이 센 ‘저승사자’ 조직의 수장들이었던 셈입니다.

‘전관특혜 세무사’를 겨냥한 국세청 세무조사는 여러번 예고됐습니다. 작년 7월 취임한 김현준 청장은 인사청문회에서 “전관예우 방지를 위한 내부 관리를 더욱 철저히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작년 10월 국정감사 때는 “전관특혜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을 다하겠다”고 했고, 올해 국세 행정계획에 ‘전관예우를 이용해 부를 축적하고 세금을 내지 않는 전문직에 대한 집중 세무조사’를 포함했습니다. 국세청 출신 세무사들에 대한 집중 조사엔, 김 청장의 의지가 상당부분 반영됐다는 뜻입니다.

국세청이 ‘전관 특혜’를 타깃으로 삼은 것은 일부 세무사들의 행태가 도를 넘었다는 판단 때문입니다. 국세청 직원들은 다른 공무원과 달리 이미 상당한 혜택을 받고 있습니다. 2001년 이전에 입사한 직원 중 사무관급 이상으로 5년 넘게 근무한 경력만 있으면 퇴직 후 세무사 자격을 자동으로 받을 수 있기 때문이죠. 비정기 세무조사를 받게 된 기업이나 자산가들이 허둥지둥 ‘전관 세무사’를 많이 찾으면서, 국세청 출신 세무사들의 몸값이 많이 뛰었습니다.

전문지식과 인맥으로 무장한 전관 세무사들이 기업들을 부추겨 과거 납부했던 세금을 돌려 받도록 경정청구(과오납 세금을 돌려달라는 요청) 소송을 유도하거나, 자신들이 벌어들인 소득을 편법으로 꽁꽁 숨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지적도 끊이지 않았습니다. 국세청은 최근 급증한 과세 불복 소송이 국세청 출신 세무사들과 무관치 않은 것으로 보고 있지요. 실제로 김앤장 등 대형 로펌엔 국세청 고위직 출신이 적지 않습니다.

전관 세무사들은 과거에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습니다. 2018년엔 한 건에 1억원 넘는 ‘세무대리 수수료’를 받은 국세청 출신 세무사가 징역형을 선고 받았지요. 비자금 조성 의혹을 받던 철강·건설업자에게서 세금 감면 및 세무조사 무마 청탁을 받았다는 게 판결의 요지였습니다. 세무대리 수수료로 억대를 받는 건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일탈 행위를 일삼는 ‘선배’들을 겨냥해 칼을 뽑아 든 국세청. 칼 끝이 무뎌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