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년병장 늘리는 국책은행 '임금피크제'…5년간 명퇴자 '제로'[이슈+]
국책은행 '명예퇴직' 문제를 놓고 노사정(勞使政)이 머리를 맞댄다. 국책은행 노동조합의 주도로 이뤄진 이번 만남은 지난해 11월 이후 두 번째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IBK기업은행·KDB산업은행·한국수출입은행 등 3개 국책은행과 기획재정부 및 금융위원회는 이날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 주재로 간담회를 연다. 서울 중구 달개비에서 오찬을 겸해 2시간 가량 만난다.

이날 회의에는 윤종원 기업은행장,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방문규 수출입은행장 등 국책은행 대표와 각 은행 노조위원장이 참석한다. 정부에서는 임기근 기재부 공공정책국장, 김태현 금융위 사무처장이 나온다.

이들이 만나는 건 지난해 11월 이후 두 번째다. 당초 1월 중순께 모일 예정이었지만 기업은행 노사 갈등이 장기화되면서 이달 중순으로 연기됐다. 이들은 국책은행 명예퇴직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두 달에 한번 꼴로 만난다는 계획이다.

국책은행은 고임금 및 고연차 직원들의 명예퇴직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퇴직금 제한을 풀어달라는 입장이다. 당장 내년부터 전체 직원의 10% 가량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는 만큼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위해 명예퇴직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우나 가고 탁구 치고"…잉여 인력 늘리는 임금피크제

임금피크제는 일정 연령이 되면 정년을 보장하는 대신 임금을 삭감하는 제도다. 기존 55세 정년이 2016년 60세로 연장되면서 늘어나는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모든 공공기관에 도입됐다. 56세가 된 직원은 60세까지 삭감된 임금으로 근무하는 식이다.

임금피크제 대상 직원들은 대부분 현업에서 빠져 감사 및 관리직에 투입된다. 책임과 권한이 사라지기 때문에 사실상 잉여인력이 되는 실정이다. 아침에 출근해 사우나 갔다가 오후에 탁구치고 퇴근한다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말년병장 늘리는 국책은행 '임금피크제'…5년간 명퇴자 '제로'[이슈+]
정원 통제를 받는 국책은행의 경우 임금피크제 인원 확대는 일할 인원의 축소로 연결된다. 다수의 신규 인력을 매년 뽑는 시중은행과 달리 국책은행은 전체 정원 통제를 받기 때문에 일손이 부족해도 인력을 마음대로 뽑을 수도 없다. 사실상 남은 인력이 그들의 업무를 메워야 한다. 노조조차 명퇴 활성화를 주장하는 배경이다.

문제는 현재 국책은행의 명예퇴직 제도가 실효성이 없다는 점이다. 정부는 1998년 현재의 공공기관 명예퇴직금 산정 규정을 만들었다. 또 임금피크제 대상만이 명예퇴직을 신청할 수 있다. 가령 정년이 4년 남은 연봉 1억원의 56세 직원이 명예퇴직을 신청하면 총 9000만원을 퇴직금으로 받게 된다. 현행 명예퇴직금은 연봉의 45%에 정년의 절반을 곱하게 돼 있다.

반면 이들이 임금피크제에 들어가 근무하면 남은 정년 4년간 총 2억원을 임금으로 받는다. 연봉의 200%를 남은 정년에 나눠받기 때문이다. 명예퇴직금이 임금피크제 기간 받을 수 있는 돈보다 적은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최근 5년간 국책은행 명예퇴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

◆ 수억 퇴직금 줘야하나

국책은행 노사는 실효성 없는 명예퇴직 규정을 완화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간담회 한 참석자는 "4년간 놀면서 근무하면 2억원을 받는데 누가 9000만원 받고 퇴직하려고 하겠느냐"며 "명예퇴직금 산정 규정을 현실성 있게 바꿔야 한다"고 했다.

기재부는 난색을 표하고 있다. 모든 공공기관에 일괄되게 적용되는 퇴직금 산정 규정을 국책은행에만 다르게 적용할 경우 형평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어서다. 특히 국민 세금으로 개인당 수억원을 퇴직금으로 지급한다는 사실이 알려질 경우 비판 여론이 거셀 수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임금의 120%를 퇴직금으로 지급했다가 감사원 지적을 받은 것도 나쁜 기억으로 남아 있다.

금융위는 공식적인 입장은 내놓지 않고 있다. 다만 효율적인 인력 운용을 위해 명예퇴직이 필요하다는 데는 공감하고 있다.

노사정 간담회를 통해 대안들이 나오고 있기는 하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첫 번째 간담회를 통해 명예퇴직이 인건비를 줄이고 신규 채용을 늘리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데 모두가 공감했다"면서 "기재부의 입장도 이해가 되는 만큼 퇴직금 소폭 인상, 인력 증원, 임금피크제 축소 등 타협점이 만들어 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윤진우/채선희 한경닷컴 기자 jiinw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