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4월 말까지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의 추가 증설을 착공하지 못하면 월성 2~4호기 원전은 내년 말부터 정상 가동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사진은 월성 맥스터.  /한경DB
오는 4월 말까지 경북 경주시 월성 원전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의 추가 증설을 착공하지 못하면 월성 2~4호기 원전은 내년 말부터 정상 가동이 어려워질 전망이다. 사진은 월성 맥스터. /한경DB
경북 경주시 월성원전의 핵폐기물 시설을 증설하는 안건이 4년 만에 원자력안전위원회를 어렵게 통과했지만 ‘공론화’라는 또 다른 관문을 만나 공사 일정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최악의 경우 월성 2~4호기가 내년 말 멈춰 설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정정화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 재검토위원장(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은 지난 23일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핵폐기물 저장 중장기 정책 수립과 지역 의견 수렴을 위한 일정 및 방식을 아직 논의 중”이라며 “절차상 4월까지는 월성원전 맥스터 증설 여부를 결론 낼 수 없다”고 말했다. 재검토위는 여론 수렴 등 공론화를 통해 증설 여부를 최종 결정한다.

한국수력원자력에 따르면 작년 말 기준 맥스터를 비롯한 월성원전 사용후 핵연료 보관시설의 포화율은 94.2%다. 이 시설이 꽉 차면 원전을 멈춰 세워야 한다.

2016년 한수원은 원안위에 맥스터 증설을 신청했고 지난 10일 원안위는 표결 끝에 이를 의결했다. 2021년 11월이면 월성원전 맥스터가 완전 포화 상태에 도달하고, 증설을 위한 공사 기간은 최소 19개월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된다. 올 4월 전까지 맥스터 착공에 들어가야 월성 2~4호기 가동 중단 사태를 막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공론화 암초' 만난 맥스터
월성原電 스톱 땐 추가 발전비용 수조원


월성 원자력발전소 2~4호기 운명이 ‘공론화’에 달린 건 작년 5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과거 정부에서 수립했던 고준위방사성폐기물 관리 기본계획을 백지화했기 때문이다. 국민 여론을 수렴해 사용후핵연료를 어디에, 어떤 방식으로 보관할지 등 정부 정책을 다시 짜기로 했다. 하지만 전문가 검토그룹(총 33명) 중 3분의 1(11명)이 “무엇을 공론화할지조차 모르는 탁상공론”이라며 지난 10일 ‘보이콧’을 선언하며 공론화 과정이 파행을 맞고 있다.
[단독] 월성 원전 3기 내년 말 가동중단 위기
“4월까지 공론화 결론 못 내”

정정화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강원대 공공행정학과 교수)은 한국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사용후핵연료 중장기 정책이라는 큰 틀이 마련되지 않은 채 세부 내용인 월성 임시저장시설(맥스터) 증설 여부를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공론화를 통해 중장기 정책을 수립한 뒤 지역 의견 수렴을 토대로 증설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며 “아직 공론화 백서 등도 준비하지 못한 단계여서 올 4월까지 결론을 내는 건 불가능하다”고 덧붙였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월성 2~4호기를 중단 없이 운전하려면 최소한 올 4월까지는 맥스터 착공에 들어가야 한다고 설명한다. 작년 말 기준 저장시설 포화율이 94.2%로, 내년 11월이면 꽉 차기 때문이다. 맥스터 증설 공사기간은 약 19개월이다.

중수로형인 월성 2~4호기는 천연 우라늄을 연료로 쓰기 때문에 경수로형에 비해 훨씬 많은 사용후핵연료를 발생시키는 구조다. 핵폐기물을 처리할 방법이 없으면 원전을 세워야 한다. 정 위원장은 “2017년 신고리 5, 6호기 건설 공론화 때와 비슷하게 국민참여형 여론조사를 하는 안을 검토 중이지만 확정된 건 아니다”고 했다. 원전업계에선 내년 11월 맥스터 준공이 어려워질지 모른다고 우려한다. 공론화를 서두르더라도 경북 경주시 축조신고서 승인 등 추가 행정 절차를 밟아야 한다.

재검토위-산업부 ‘핑퐁 게임’

내년 말 1기에 70만㎾급인 월성 원전 3개가 동시에 가동 중단될 위기지만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재검토위는 서로에 책임을 떠넘기고 있다. 정 위원장은 “월성 2~4호기의 중단 우려는 정부(산업부)가 판단할 몫”이라며 “재검토위 판단 범위를 벗어나는 일”이라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공론화가 법적 의무사항은 아니지만 국정과제로 결정된 만큼 의견 수렴 전에 맥스터 증설을 착공하는 건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다만 “월성 2~4호기가 멈춰서는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재검토위가 포화율 등을 점검하면서 일정을 조율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달 10일 맥스터 증설을 위한 원자력안전위원회 승인을 약 4년 만에 받아낸 한수원은 공론화란 또 다른 벽에 막혀 속을 태우고 있다. 건설 부지와 자재 등을 모두 확보해 놓고서도 착공 신고서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월성 2~4호기가 내년 말 멈춰서면 국가 전력망에 커다란 차질이 불가피하다. 대구·경북 전체 전력 소비량의 약 22%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는 “맥스터 포화로 월성 원전이 일제히 멈춰서면 정부가 국정 과제인 탈원전을 손쉽게 달성하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액화천연가스(LNG) 등으로 월성 2~4호기 발전량을 메꾸려면 매년 수조원을 추가 지불해야 한다”며 “국민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전기요금 부담해야 한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경주 인근 주민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경주 감포·양남·양북면 주민으로 구성된 동경주대책위원회는 지난 20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사용후핵연료 저장시설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다가 문재인 정부 들어 백지화하고 전면 재검토하는 등 정책 일관성이 결여됐다”며 “원전 정책이 오락가락하는 사이 지역 경제가 피폐해지고 주민 간 갈등까지 심해졌다”고 호소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