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위 10%가 '소득세 79%' 내는 나라
전체 근로자의 4.3%에 불과한 연봉 1억원 초과 고소득자 80만 명이 전체 근로소득세의 절반 이상을 부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근로소득자 열 명 중 네 명은 세금을 한 푼도 내지 않는다. 고소득층과 대기업을 타깃으로 한 ‘부자 증세’가 2012년 이후 8년째 이어지면서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이란 조세정책의 기본원칙이 훼손되고 ‘세금 불공평’만 키운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12일 국세청에 따르면 2018년 기준 전체 근로소득자(1857만 명)의 4.3%에 해당하는 연봉 1억원 초과 소득자 80만1839명이 전체 근로소득세(38조3078억원)의 55.4%(21조2066억원)를 냈다. 이들의 소득이 전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8.1%였다.

한국 고소득층의 세 부담이 다른 선진국보다 크다는 사실은 다른 통계에서도 확인된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통합소득(근로소득과 종합소득 등을 합한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6.8%였다. 하지만 이들은 전체 소득세의 78.5%를 냈다. 비슷한 시기 미국(70.6%) 영국(59.8%) 캐나다(53.8%) 등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한국의 면세자 비율은 지난해 38.9%로 영국(1% 안팎) 미국(30.7%) 호주(15.8%) 캐나다(17.8%) 등에 비해 훨씬 높다.

정부가 2012년 이후 소득세 최고 세율 인상(35%→42%) 등 부자증세를 지속적으로 추진한 여파다. 이로 인해 연봉 3억원 고소득자의 부담은 2011년 30.7%(지방세 포함 소득세 8185만원, 건강보험료 846만원, 고용보험료 166만원)에서 지난해 33.4%(소득세 8823만원, 건보료 965만원, 고용보험료 239만원)로 확대됐다.
종부세·상속세 등 부유층 세금 계속 올라

정부가 지난해 세법 개정을 통해 고소득층 세부담을 매년 1000억원씩 늘리기로 한 만큼 고소득자 세부담 쏠림 현상은 한층 심해질 전망이다.

부유층을 타깃으로 한 증세는 소득세뿐만 아니다. 종합부동산세 최고세율은 2018년 2.0%에서 올해 4.0%로 오른다. 평균 68%인 시세 반영 비율은 최대 80%로 뛰고, 현재 80%인 공정시장가액비율도 2022년 100%로 조정된다. “2주택 이상의 보유세는 세 배까지 오를 것”이란 얘기가 나오는 배경이다.

주주들에게 돌아갈 배당 몫 일부를 국가가 거둬가는 법인세도 2018년 22%에서 25%로 상향 조정됐다. 주요국은 ‘부의 국외 탈출’을 막기 위해 앞다퉈 상속세를 폐지하거나 공제 한도를 높이고 있지만, 한국 정부는 오히려 상속세 신고세액 공제율을 10%에서 3%로 낮추는 등 ‘역주행’하고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과 교수(전 세무학회장)는 “세원을 넓히려는 노력 없이 조세저항이 적다는 이유로 ‘한줌’의 부자들만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증세하는 건 ‘세금 불공평’을 야기할 수 있다”며 “과도한 세금은 열심히 일할 의욕을 꺾고 자본 유출을 부를 것”이라고 말했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치권과 정부가 소수의 부유층에 과도하게 세금을 물려 저소득층 복지재원으로 활용하는 건 문제”라며 “세금을 내는 사람과 혜택받는 사람이 지나치게 괴리되면 모럴해저드에 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오상헌/서민준 기자 ohyea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