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까다로운 조건 붙어
규제 혁신 노력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올 때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시행된 ‘규제 샌드박스’ 정책을 내세우며 “충분한 노력을 하고 있다”고 반박해왔다. 규제 샌드박스는 새로운 제품·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제도다. 지난해 12월 발표한 ‘2020년 경제정책방향’에서도 정부는 규제혁신 방안의 핵심으로 ‘규제 샌드박스 지속 추진’을 꼽았다.

정부의 이런 기대와 달리 산업계 반응은 싸늘하다. 규제 샌드박스 대상 사업 중 대다수가 까다로운 제약 요건을 붙인 조건부 승인이어서다. 산업계 관계자는 “스마트 헬스케어, 공유경제 등 이해관계자가 많은 분야일수록 조건이 더 까다롭다”며 “특정 공간과 분야에서 마음껏 시도해보라는 게 샌드박스의 취지인데 시행과정에서 이런저런 조건이 붙다 보니 오히려 새로운 족쇄가 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유전자 진단업체 마크로젠이 대표적 사례다. 이 회사는 유전자 검사 항목을 혈당 탈모 등 12개에서 고혈압 위암 등 25개로 확대해달라고 요청했다. 샌드박스 승인은 받았지만 까다롭기로 유명한 공용기관생명윤리위원회(IRB) 심의를 거쳐야 한다는 조건이 달렸다. 마크로젠은 지금까지 네 차례 심의를 신청했지만 한 건도 통과하지 못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이해관계가 첨예한 규제를 풀겠다’는 정부 방침이 되레 규제 혁신을 가로막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회적 대타협의 결론이 기존 사업자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쪽으로 나기 때문이다.

조준모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선진국은 혁신을 통해 성장과 일자리란 두 마리 토끼를 잡고 있는데 한국은 규제 장벽과 이해집단 간 갈등 때문에 ‘골든 타임’을 놓치고 있다”며 “경제주체들이 창의성을 펼쳐 경제가 성장하려면 규제 혁파가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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