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행 '행장 공백' 장기화 우려…노조 "총선까지 투쟁"

윤 행장, 세 차례 출근 시도
노조측 로비 막고 출근 저지
"투쟁대상은 靑" 직접협상 요구
윤종원 기업은행장(가운데)이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로 6일째 서울 을지로 본점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했다. 지난 7일 윤 행장이 출근에 나섰지만 노조원의 저지로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종원 기업은행장(가운데)이 노동조합의 강한 반발로 6일째 서울 을지로 본점 사무실로 출근하지 못했다. 지난 7일 윤 행장이 출근에 나섰지만 노조원의 저지로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8시 서울 을지로 기업은행 본사 로비에는 기업은행 노동조합원 100여 명이 진을 쳤다. 지난 3일 임명된 윤종원 신임 행장의 출근을 막기 위해서였다. 윤 행장은 이날 결국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계속해서 노조가 출근을 막자 당분간 외부에서 업무를 보기로 했기 때문이다.

윤 행장에 대한 기업은행 노조의 출근 저지 기간이 길어지면서 금융업계의 시선이 엇갈리고 있다. 노조가 ‘낙하산 행장’을 막기 위해 정당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는 반면 ‘행장 길들이기’를 통해 노조가 잇속을 챙기려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낙하산 논란이 불거진 최고경영자(CEO)를 둘러싼 갈등은 다른 정책금융기관에서도 볼 수 있다. 사장 공모를 진행 중인 예탁결제원부터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예탁결제원 노조는 금융당국 출신 인사가 사장 후보라는 소식에 ‘관치 인사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전문성 없다”

기업은행은 2011년 조준희 기업은행장부터 연속해서 3명의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했다. 기업은행 노조가 윤 행장 취임에 강력 반발하는 공식적인 이유다. 전문성 있는 내부 출신이 기업은행을 더 잘 이끌 수 있다는 논리다. 노조 측은 외부 출신 행장 임명을 강행한 청와대에 협상을 요구하고 있기도 하다. 진정 어린 사과와 적절한 해결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오는 4월 총선까지 투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예탁결제원 노조도 후임 사장 인선과 관련해 투쟁을 사실상 예고했다. 지난 3일 예탁결제원 후임 사장 서류접수 마감 결과 이명호 더불어민주당 수석전문위원 등 총 5명의 후보자가 지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가운데 금융위원회 출신인 이 수석전문위원이 유력한 사장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여기에 반발한 제해문 예탁결제원 노조위원장은 아예 사장 공모에 지원했다. 제 위원장은 ‘임직원 여러분께 드리는 글’에서 “사장직에 응모한 것은 ‘쇼’나 하고 ‘들러리’나 서려고 한 것이 아니다. 예탁원의 르네상스를 이끌겠다는 굳은 신념과 결심 끝에 지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수출입은행도 행장 취임 때마다 노조와 갈등이 있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역시 2017년 9월 수출입은행장 취임 당시 노조의 반발로 닷새 만에 취임식을 치렀다. 지난해 10월 취임한 방문규 행장은 공식적으론 노조와 갈등이 없었다. 하지만 최근 사외이사 선임 과정에서 노조추천이사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노조의 정치적 계산이라는 시선도

금융업계에선 갈등의 근본 원인이 정부의 낙하산 인사에 있다는 데는 대체적으로 이견이 없다. 경제관료들의 자리 챙기기와 정권의 논공행상식 인사가 문제라는 인식도 있다.

노조에 대한 시선도 곱지만은 않다. 장기간 투쟁을 이어가는 노조의 속내는 사실상 ‘행장 길들이기’를 통한 잇속 챙기기라는 지적이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명분이 있는 투쟁을 통해 임금 협상과 직원 처우, 인사 문제 등 노조의 현안 협상과 관련해 우위를 점하기 위한 차원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경영진으로서도 노조의 움직임을 무시하기 어렵다. 한 은행 임원은 “행장들은 인사 시즌이 돌아올 때마다 노조와 관계가 좋은 임직원 거취를 두고 깊은 고민에 빠진다”며 “노조가 원하는 대로 인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때 다른 노사협상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행장은 “출근 저지에 나선 노조에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큰 고민이었다”고 털어놨다. 기업은행장과 수출입은행장 등은 대통령이 임명권한을 갖고 있는 만큼 노조가 반발한다고 해서 큰 영향력을 미치기 힘들다. 노조의 출근 저지가 영원히 이어질 수 없는 만큼 체면을 구기지 않고 행장의 출근을 허용할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노조가 행장 취임을 받아들이는 대신 마지막에 내밀 요구사항이 뭔지 예측하기 힘들었다”고 말했다.

‘관치 논란’ 없애려면 “성과 보여줘야”

금융권에서는 윤 행장이 업무 수행 능력이 있음을 스스로 보여줘야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고 본다.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이면서 거시경제전문가로 알려진 반면 은행 관련 경력은 부족하다는 평가다. 주 52시간 근로제 도입과 최저임금 인상 등으로 경영난에 빠진 중소기업이 많은 만큼 이들에 대한 어떤 금융지원책을 들고 나올지도 관심을 끈다. 시중은행들이 넘보고 있는 기업은행의 주거래 우량기업들을 지키는 것도 숙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도 2017년 취임 당시 ‘낙하산 논란’에 휩싸였지만 이후 금호타이어 매각과 한국GM 관련 협상, 조선사 구조조정 등에서 능력을 입증하면서 논란을 불식시켰다”고 말했다.

정소람/송영찬 기자 ram@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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