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프라이빗뱅커(PB) 직종을 없앨 것이다.”AI가 예고하는 자산관리업계의 미래다. 7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개막한 CES는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온 AI의 현주소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AI를 활용한 자산관리다.CES 현장에서 만난 미국 로보어드바이저 업체 웰스프런트 관계자는 “구글의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압도하면서 바둑계에 충격을 줬듯이 빅데이터와 딥러닝 기술로 무장한 AI가 자산관리업계에 비슷한 파장을 몰고 올 날이 머지않았다”고 말했다.AI는 자산관리업계에도 위협과 기대가 뒤섞인 야누스의 모습으로 다가오고 있다. AI는 개인의 투자 행태와 과거 투자 기록을 바탕으로 맞춤형 자산배분 전략과 투자 상품을 추천한다. 챗봇(채팅+로봇)을 통해 금융 소비자와 자연스럽게 투자 관련 얘기를 주고받는다. 모든 금융 소비자는 곧 24시간 연중무휴로 이용할 수 있는 로봇 자산관리인(어드바이저)을 갖게 된다는 뜻이다. 기존 은행 및 증권사 PB는 서서히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서민들에게 투자자문 서비스 문턱을 낮춰주는 것도 AI의 매력이다. AI는 단순 자산관리 자문역에 머물지 않는다. 투자 관련 대화 도중 즉석에서 맞춤형 금융 상품을 설계해 제공하는 것도 가능해진다. 미국 핀테크 컨설팅 업체 피넥스트라의 데이비드 메리더스 부사장은 “미국에서만 150개가 넘는 웰스테크(wealthtech) 업체가 AI를 기반으로 한 혁신적인 자산관리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다”고 했다. “새로운 개념의 금융 상품과 서비스가 대거 등장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들 웰스테크 업체는 로보어드바이저를 비롯해 투자 플랫폼과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디지털 중개인 등 다양한 분야에 AI 기술을 적용하고 있다.운용보수 등 서비스 수수료의 감소는 금융투자업계가 맞닥뜨릴 도전이다. AI가 상품 설계와 판매에 들어가는 인력을 대폭 줄이는 만큼 수수료 인하로 이어질 건 불 보듯 뻔하다.AI의 등장으로 펀드매니저의 운용 능력도 도전받고 있다. AI를 기반으로 하는 국내 로보어드바이저 펀드 수익률은 지난해 펀드매니저를 압도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AI 알고리즘과 빅데이터를 바탕으로 자산을 관리해주는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는 지난해 11.66%에 달하는 수익률을 올렸다. 이에 비해 펀드매니저가 운용하는 국내 액티브 주식형 펀드는 같은 기간 5.76% 수익률에 그쳤다. 지난해는 미·중 무역분쟁과 한·일 갈등 등으로 증시 변동성이 컸다. 이런 시장 상황에서도 로봇은 펀드를 안정적으로 운용했다는 평가다.로보어드바이저의 운용자산 규모는 급증할 전망이다. 2023년 로보어드바이저 운용자산은 세계 2552조원, 한국 25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또 다른 로보어드바이저 업체인 웰심플 관계자는 “AI 시대에 자산관리업은 기존보다 훨씬 높은 수준의 고객 서비스를 요구받을 것”이라고 강조했다.라스베이거스=유병연 마켓인사이트부장 yooby@hankyung.com
한국 간판 기업인 현대자동차와 삼성전자가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미래 신산업을 주도할 청사진을 내놨다. 인공지능(AI)과 로봇 등을 앞세워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고, 미래 신시장의 주도권을 쥐겠다는 전략이다.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CES 2020 개막 전날인 6일(현지시간)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연 언론발표회 직후 기자들과 만나 “도심항공 모빌리티(UAM)를 2028년 상용화하겠다”고 말했다.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개인용 비행체(PAV)를 8년 뒤 양산하겠다는 구상이다.현대차는 UAM과 목적기반 모빌리티(PBV), 모빌리티 환승거점(허브) 등으로 이뤄진 미래 비전도 공개했다. 개인용 비행체를 통해 도심 하늘길을 열고, 땅 위에선 개인별 맞춤형 이동수단을 활용한다는 내용이다. 현대차는 세계 최대 차량공유업체인 미국 우버와 공동 개발한 PAV의 디자인 콘셉트 모델인 S-A1을 실물 크기로 전시한다. 전기로 움직이는 S-A1은 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자율주행 비행체다. 조종사를 포함해 5명이 탈 수 있다. 정 수석부회장은 “UAM 등을 통해 끊김 없는 이동의 자유를 제공하겠다”며 “현대차의 새로운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은 인류를 위한 진보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은 CES 2020 기조연설자로 나섰다. 반려동물처럼 사람과 교감하는 반려로봇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김 사장은 삼성의 지능형 컴패니언(동반자) 로봇인 볼리를 처음 공개하며 “향후 10년은 경험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전자는 미국 대형 병원그룹인 카이저퍼머넌트와 제휴해 원격재활 시장에도 참여한다는 계획을 내놨다. 만성 심장병 환자의 심장 상태를 확인해 이상 징후가 있으면 의료진을 연결해 주는 서비스다.미래 모빌리티 시동 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3대 키워드는 '혁신·협업·인간중심'“오늘 발표는 시작에 불과합니다. 앞으로 현대자동차그룹은 더 많은 혁신적인 장치와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입니다.”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글로벌 시장을 향해 승부수를 던졌다. 그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에서 도심항공 모빌리티(UAM)-목적기반 모빌리티(PBV)-모빌리티 환승거점(허브)을 중심으로 하는 미래 비전을 제시했다. 모빌리티는 사람을 태워 나르는 이동수단과 관련 서비스를 포괄하는 개념으로 쓰인다. 1946년 현대차가 설립된 이후 74년간의 업(業)이던 완성차 제조에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다.현대차의 파격적 구상정 수석부회장은 CES 공식 개막 전날인 6일(현지시간) 현대차 언론발표회에서 회사의 미래 비전을 설명했다. 회사의 변화와 혁신에 대한 그의 발언은 자신감으로 가득찼다. 그는 “우리는 (완성차 제조업체에서) 스마트 모빌리티 솔루션 제공업체로 변모했다”며 “우리가 인류를 위한 진보의 유산을 이어가는 것을 주목해달라”고 했다.이날 현대차가 발표한 미래 비전의 중심에는 개인용 비행체(PAV)가 있다. PAV 콘셉트 ‘S-A1’은 전기를 동력원으로 사용한다. 조종사를 포함해 다섯 명이 탑승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현대차는 자율비행 PAV도 개발하겠다는 계획이다. 2028년 상용화가 목표다.현대차가 하늘길 개척에 나선 것은 지상 이동으로는 갈수록 악화되는 교통체증을 벗어날 수 없다고 판단해서다.현대차가 그리는 미래 모빌리티의 다른 한 축은 PBV다. PBV는 자율주행차와 비슷하지만, 내부를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4~6m 길이의 박스 형태 차체 내부는 식당, 카페, 호텔, 병원 등으로 만들 수 있다. 단순히 자율주행차가 아니라 이동하는 생활공간이다. PAV와 PBV는 허브라는 환승거점에서 만난다. 상층에는 PAV 이착륙장이, 1층에는 PBV 여러 대를 연결할 수 있는 ‘도킹 스테이션’이 있다. 단순히 정류소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여러 종류의 PBV가 한데 모임으로써 새로운 복합 공간이 될 수 있다. 각종 의료용 PBV가 허브에 모이면 하나의 종합병원이, 카페용 및 전시용 PBV가 모이면 복합문화공간이 된다.우버와 손잡고 비행체 개발자동차업계에서는 ‘파격 중의 파격’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자동차 제조사가 CES라는 대형 전시회에서 자동차가 아니라 비행체를 전면에 내세운 건 쉽지 않은 선택이라는 분석이다. 지영조 현대차 전략기술본부장(사장)은 이날 발표를 시작하면서 “현대차는 자동차 회사로 알려졌지만, 오늘은 전통적인 차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며 “대신 미래 모빌리티 서비스가 열 새로운 세상을 얘기하겠다”고 말했다.정 수석부회장은 또 이번 발표를 통해 다른 기업과의 협업을 늘리고 인간 중심 기술 개발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현대차는 이번 PAV 콘셉트를 글로벌 차량공유업체인 우버와 함께 개발했다. 정 수석부회장은 “우리는 UAM을 위해 우버와 같은 세계적인 회사와 일하는 것에 매우 고무됐다”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싱가포르 차량공유업체 그랩, 미국 드론 개발업체 톱플라이트, 아일랜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업체 앱티브 등과 손잡았다.현대차는 이날 발표한 미래 비전을 ‘인간 중심의 역동적 미래도시 구현을 위한 모빌리티’라고 정의했다.■ PAV (personal air vehicle)수직 이착륙이 가능한 개인용 비행체. 도심 내 이동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여줄 미래 교통수단으로 주목받고 있다.■ UAM (urban air mobility) 개인용 비행체(PAV) 개발부터 제조, 판매, 인프라 구축, 서비스, 유지·보수 등 도심 항공 이동수단과 관련한 사업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라스베이거스=정인설/도병욱 기자 surisuri@hankyung.com
반려봇과 셰프봇에 맞춤형 트레이닝을 해주는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까지.김현석 삼성전자 소비자가전(CE) 부문 사장이 6일(현지시간) 세계 최대 전자쇼 ‘CES 2020’의 기조연설자로 나서 선보인 삼성의 신개념 로봇들이다. 김 사장과 함께 연사로 나선 삼성전자 임원들은 원격재활과 스마트 빌딩 서비스도 소개했다.삼성전자가 그린 미래 생활상이면서 냉장고, 세탁기 같은 전통 가전 사업에서 벗어나 새로운 융합형 기기로 영역을 넓히려는 미래 가전 청사진이기도 했다.“경험의 시대에 인간 중심 혁신”삼성전자가 이날 내놓은 신기술과 신제품을 관통하는 단어는 경험이다. 김 사장은 기조연설에서 “향후 10년은 경험의 시대(age of experience)가 될 것”이라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개인에게 최적화된 경험과 환경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김 사장은 “대부분의 사람은 제품을 구매할 때 제품의 소유 자체가 아니라 그 제품이 가져다 주는 편리함과 즐거움 같은 긍정적 경험을 기대한다”며 “이런 개인의 요구가 모여 기술 혁신을 이끌어갈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경험의 시대에는 다양한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공간을 변화시키고 도시를 재구성해야 한다”며 “삼성의 인간 중심 혁신이 이 같은 과제를 해결하는 데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김 사장이 인간 중심 혁신의 대표 제품으로 소개한 게 반려봇이었다. 사람 손바닥만 한 노란 공처럼 생긴 ‘볼리’라는 로봇이었다. 김 사장이 가는 곳마다 따라 가고 갑자기 서면 같이 멈췄다. 앉아서 손을 내밀면 다가와 손에 쏙 들어오고 방이 지저분해지면 옆에 있는 로봇청소기를 작동시켜 청소까지 해주는 모습을 보여줬다. 김 사장은 볼리를 지능형 컴패니언(동반자) 로봇이라고 했다.김 사장은 “개인 삶의 동반자 역할을 하는 볼리는 인간 중심 혁신을 추구하는 삼성전자의 로봇 연구 방향을 잘 나타내 주는 사례”라고 설명했다. 그는 “볼리에 모바일기기 안에서 인공지능(AI) 연산을 처리하는 ‘온 디바이스 AI’가 들어가 보안 로봇이나 피트니스 도우미 로봇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미국 원격재활 시장 진출김 사장에 이어 무대에 오른 세바스찬 승 삼성리서치 부사장은 원격재활 서비스를 소개했다. 승 부사장은 “개인 맞춤형 케어를 발전시키려면 AI 리더십과 파트너십이 중요하다”며 “미국 대형병원 그룹인 카이저 퍼머넌트와 제휴해 심장 질환 재활 프로그램 ‘하트 와이즈(heartwise)’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모바일기기를 활용해 만성 심장 질환 환자의 심장 상태를 상시 확인해 이상 징후가 일어나면 전문 의료진의 진료로 연결될 수 있도록 해 주는 서비스다.페데리코 카살레뇨 삼성전자 북미 디자인혁신센터장은 웨어러블 보행보조 로봇인 ‘젬스’를 선보였다. 사용자가 증강현실(AR) 글라스를 쓰고 가상의 개인 트레이너에게 맞춤형 피트니스를 받을 수 있다. 삼성전자는 사물인터넷(IoT) 기술로 사무실과 주차장을 가정집처럼 구현했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다가가면 현관문이 자동으로 열리고, 자동차 가까이 가면 조명이 켜지고 시동이 걸리는 형태다.삼성전자는 스마트 시티에 대한 비전을 소개했다. 에밀리 베커 삼성 넥스트 전무는 “2050년까지 인구의 70%가 도시에서 거주하게 될 것”이라며 AI, 5세대(5G) 이동통신, 에지 컴퓨팅 등을 기반으로 한 기술 혁신이 가져올 변화를 빌딩, 교통, 커뮤니티 등 세 가지 분야로 구분해 설명했다. 베커 전무는 삼성전자가 서울 반포동 래미안퍼스티지에 적용할 홈 IoT를 사례로 들었다. 음성 명령을 통해 엘리베이터를 호출하거나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전기, 수도, 가스 등의 에너지 사용량을 확인할 수 있다.가정용 식물재배기와 스마트 시티 개념도 처음 공개했다. 김 사장은 “삼성전자는 개인이 안전하게 첨단 기술을 누릴 수 있도록 데이터 보안과 프라이버시를 최우선 순위에 두고 ‘착한 기술’을 추구하겠다”며 기조연설을 마무리했다.라스베이거스=정인설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