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금속공학과에 들어간 한 청년은 1학년 때부터 창업의 꿈을 키웠다. 막연한 꿈이 아니라 소재·부품회사를 콕 집었을 정도로 구체적이었다. 소재·부품으로 일본과 경쟁해 이기고 싶었다. 창업을 위해 착실하게 준비했다. 세라믹 소재로 박사 학위를 땄다. 경영과 생산 기법을 익히기 위해 중소기업에 취직해 10년간 경험을 쌓았다. 1994년 세라믹 부품기업 아모텍을 창업한 김병규 회장(64)의 얘기다. 26년이 지난 지금 아모텍은 칩바리스터 부품과 스마트폰 무선충전·요금 결제 안테나 부품 시장 세계 1위 기업으로 성장했다.
김병규 아모텍 회장은 “5G·AI 시대 필수 부품인 고용량 MLCC로 재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김병규 아모텍 회장은 “5G·AI 시대 필수 부품인 고용량 MLCC로 재도약하겠다”고 말했다. /허문찬 기자 sweat@hankyung.com
삼성·애플에 칩바리스터 공급

아모텍의 첫 성공작은 칩바리스터다. 정전기로부터 제품 내 핵심 반도체와 회로 등을 보호하는 장비다. 기회가 온 건 2000년, 삼성이 휴대폰 애니콜을 출시하면서다. 휴대폰 시장 태동기였다. 사람이 늘 손에 쥐고 사용하는 제품의 특성상 칩바리스터는 필수 부품이었다. 당시 이 시장의 압도적 1등은 일본 AVX교세라였다. 납품이 불가능할 것이란 모두의 예상을 깨고 아모텍은 AVX교세라를 제치고 빠르게 시장 주도권을 잡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칩바리스터 생산 초기엔 누설 전류 불량문제가 많았다”며 “AVX가 ‘삼성 설계 실수’라며 책임을 전가하는 사이 문제점을 빠르게 보완해 신뢰를 확보해 납품량을 크게 늘렸다”고 설명했다. 기술력과 빠른 소비자 대응 능력 덕분에 아모텍은 현재 삼성뿐 아니라 애플에도 칩바리스터를 공급하고 있다.

아모텍은 근접무선통신(NFC)·무선충전·모바일결제 안테나 시장에서도 글로벌 점유율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삼성페이는 아모텍의 안테나 부품으로 작동한다. 김 회장은 글로벌 1위 제품을 두 개나 내놓을 수 있었던 비결에 대해 “무턱대고 기술 개발에만 골몰하는 게 아니라 시장을 주도하는 글로벌 기업이 필요로 하는 신제품을 만들어주는 전략을 쓴다”고 답했다. 애플 테슬라 등 글로벌 기업의 수요와 자사 기술의 교집합을 찾아 영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같은 전략을 쓰려면 소재 기술뿐 아니라 소비자가 원하는 제품을 맞춤 생산할 수 있는 설계 기술과 생산 기술까지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모텍 "무선시대 주도할 기술로 3M 넘는 기업될 것"
“소·부·장 대기업 중심 생태계 키워야”

아모텍이 최근 개발한 신제품은 고용량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다. 들쭉날쭉하게 들어오는 전류를 조절해 반도체 등에 일정하게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김 회장은 “5세대(5G) 이동통신뿐 아니라 전기자동차, 각종 사물인터넷(IoT)·인공지능(AI) 시장에서 핵심적으로 쓰일 고용량 MLCC가 아모텍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이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매출을 올리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5G, AI가 주목받는 시대에 아모텍의 주력 부품인 안테나와 칩바리스터, MLCC의 수요가 더 늘어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김 회장의 꿈은 약 37조원의 매출을 올리는 미국 소재업체 3M을 넘어서는 것이다. 그는 “독보적인 소재 기술로 각종 부품부터 소비재까지 제조하는 3M과 아모텍은 사업구조가 비슷하다”며 “무선 시대를 주도할 기술로 3M을 능가하는 기업을 만드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소재·부품·장비 강국으로 발돋움할 해법에 대해선 정부 정책과 시각차를 나타냈다. 김 회장은 “중소기업을 중심으로 생태계를 키우기보다는 대기업 위주의 전략을 써야 일본과 경쟁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소·부·장 분야 중소기업에만 자금을 쏟아붓고 있다는 지적이었다. 그는 “삼성전자 등 대기업과 협업하면서 자연스레 경쟁력이 커진 장비 분야 중소·중견 기업들은 제외”라며 “핵심 소재·부품 산업은 대기업 쪽에 힘을 실어줘야 일본 등과 경쟁이 된다”고 강조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