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부 산하 환경산업기술원은 지난달 30일 기후변화홍보포털에 띄웠던 전문가 기고를 급히 삭제하는 소동을 빚었다. 같은 달 27일 ‘원자력 안전 및 진흥의 날’을 맞아 에너지경제연구원에 의뢰했던 ‘기후변화 대응 수단으로서의 원자력’이 뜻하지 않게 논란을 불렀기 때문이다. 이대연 에경원 부연구위원이 작성한 이 칼럼은 원자력의 장·단점을 서술한 뒤 “온실가스를 감축하기 위해선 원전 활용이 불가피하다. 세계적인 추세도 그렇다”고 썼다.

유엔환경프로그램(UNEP), 국제에너지기구(IEA), 유럽연합(EU) 등이 최근 발간한 보고서와도 일치하는 내용이다. 이 연구위원은 “한국이 2015년 파리 기후변화협약 체결 당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전망치(BAU) 대비 37% 감소한 5억3600만t으로 감축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를 지키려면 원전을 적절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 기고가 게재된 뒤 일각에서 “정부의 정책 방향과 맞지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고 한다. 탈(脫)원전 기조와 맞지 않다는 것이다. 환경기술원 측은 “기후변화와 원자력 간 관계에 대해 외부 전문가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들으려는 취지로 기획했는데 논란이 커질 줄 몰랐다”고 설명했다. 기후변화포털이 칼럼을 통째로 들어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비슷한 일은 또 있었다. 에경원이 격주간으로 발간해온 ‘세계원전시장 인사이트’는 작년 11월 29일자를 끝으로 나오지 않고 있다. 12월 13일자가 인쇄까지 끝났으나 일부 전문가 기고가 정부 견해와 달라 배포되지 않고 있다. 원전 운영기관인 한국수력원자력이 후원하는 이 잡지 표지엔 ‘주요 내용은 집필자 개인 의견으로, 에경원 공식 견해가 아니다”고 돼 있으나 이걸로는 부족했던 모양이다.

문제의 칼럼은 정용훈 KAIST 원자력·양자공학과 교수가 쓴 ‘탈원전 비용과 수정 방향’이란 정책 제언이다. 원전 비중 축소에 따른 발전비용 상승 등 경제성을 집중 분석한 게 골자다. 예컨대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재개하고 기존 원전 수명을 20년씩 연장하면 5조7000억kWh의 전기를 추가 생산해 한국전력이 약 510조원의 추가 이익을 거둘 수 있으리란 계산을 담았다. 이 원자력 잡지가 외부 기고 때문에 발간되지 못한 것 역시 과거엔 없던 일이다. 정 교수는 “국민들이 알면 안되는 내용이라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고 했다.

탈원전은 여전히 찬반 양론이 엇갈리는 이슈다. 사회적 합의가 끝나지 않았다는 의미다. 정부 정책 방향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해서 전문가들이 쓴 기고문 마저 마음대로 삭제하고 발행을 보류한다면 독재정권 때의 ‘사전 검열’과 무엇이 다른 지 궁금하다.


조재길 경제부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