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출발 2020 - 신년 인터뷰

노벨경제학상 수상자 폴 로머 교수
폴 로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값이 뛸 때 정부는 개입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3월 대한상공회의소 특별강연 모습.  한경DB

폴 로머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집값이 뛸 때 정부는 개입하고 싶을 수 있겠지만 수요에 맞춰 공급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은 지난해 3월 대한상공회의소 특별강연 모습. 한경DB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로머 미국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지난달 18일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미·중 양국은 기술패권, 국가 안보 등 여러 문제뿐 아니라 근본적 경제 접근법이 다르다”며 “양국 갈등을 해결하는 데 10년 넘게 걸릴 수 있다”고 밝혔다.

로머 교수는 각국의 완화적 통화정책 속에 막대한 부채가 쌓이는 데 대해 “금융 시스템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금리가 급등하면 국가의 이자 부담이 커질 뿐 아니라 많은 채권을 보유한 은행 등 금융회사의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 지급 불능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한국 경제와 관련해 “한국인 사이에 정부가 경제를 이끄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고 우려했다. 또 부동산값 급등은 철저히 공급을 늘리는 데 집중해야 대처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미·중 양국이 1단계 합의에 도달했습니다. 세계 경제가 살아날까요.

“양국 합의가 뭔가 상황을 바꿀 것으로 보지 않습니다. 양국 갈등이 해결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1, 2년이 아니라 아마 10년 넘게 걸릴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양국 갈등이 기술패권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복잡한 건 기술뿐 아니라 국가 안보, 지식재산권 등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겁니다. 특히 해결하기 힘든 건 양국 간 경제적 접근법에 대한 근본적인 차이입니다. 미국의 무역 시스템은 모든 국가가 자유방임주의(laissez-faire)를 추구한다고 가정합니다. 하지만 현실은 여러 나라가 다른 전략을 갖고 있습니다. 무역의 룰을 다시 검토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건 시간이 걸릴 것입니다.”

"北이 한국의 투자 기회? 그들을 신뢰 못 한다면 기회는 매우 제한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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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경제가 부채 때문에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중국의 국가 부채는 관리 가능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그들은 이미 부채 축소에 나섰습니다. 시간은 걸리겠죠. 하지만 아시아 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처럼 경제가 붕괴되는 식으로 진행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각국의 부채 문제에도 일부에서는 돈을 마구 찍어내자는 현대통화이론(MMT)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만약 이자율이 현 수준으로 유지된다면 부채 관리에 문제가 없을 겁니다. 위험은 금리가 높아지면 나타날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될 겁니다. 어느 순간 정부는 이자를 내는 데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각국은 만기가 긴 채권을 발행하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금리가 높아질 때 손해를 보는 건 은행 등 채권 보유자가 되겠죠. 부작용 중 하나는 은행 등이 채권값 폭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겪는 경우입니다. 금융 시스템의 지급결제 능력이 위험에 처할 수 있습니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통화 정책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많은 부채는 통화 정책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이렇게 많은 부채가 시사하는 건 저금리 환경에서 경제를 완전고용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통화정책 외에 다른 도구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감세와 함께 경기 부양에 많은 돈을 쓰고 있어요. 여기에 Fed까지 완화적입니다. 앞으로 불황이 오면 어떤 도구를 써서 회복할지 계획이 없습니다.”

▷작년 3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한국 경제는 어떻게 봅니까.

“한국인 사이에 큰 불안감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간 한국 경제의 성공에서 정부가 큰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제가 느끼는 건 정부가 경제를 이끄는 능력에 대한 믿음이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한국이 성공한 이유 중 하나는 북한의 위협이라고 봅니다. 그런 긴장감은 국가가 옳은 일을 할 수 있게 했고, 한국인은 일치돼 일했습니다. 하지만 최근 그런 단합이 후퇴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시장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선동이 뒤에 있다고 여깁니다. 모두가 알아야 할 건 정부가 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명확히 구분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시장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지만, 정부도 모든 것을 할 수 있지 않습니다. 시장은 혁신과 성과를 만들어내는 곳입니다. 그리고 정부는 이런 시장의 행위가 사람들에게 유익한 방향으로 이뤄지도록 해야 합니다. 해결책은 이 둘의 적절한 혼합입니다.”

▷한국의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서도 많은 질문을 받았을 것입니다.

“저는 정책 도구가 원래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제대로 시행되는 게 중요하다고 여깁니다. 예를 들어 폴 로머가 더 큰 집을 갖도록 하는 게 정부 목표라고 가정합시다. 정부가 그런 법을 통과시키는 건 아무 효과가 없습니다. 큰 집을 더 많이 짓거나 큰 집이 재개발되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가 뭔가 목표로 한다면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도록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많은 국가는 좀 더 공평한 소득 분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그건 합리적인 목표입니다. 하지만 어떻게 소득을 공평하게 분배시킬 수 있을까요. 제 집의 경우처럼 그저 법을 통과시키는 것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한국에서 우버가 금지되고 택시와 비슷한 차량호출서비스에 대해선 강한 규제가 예고됐습니다.

“사회가 우버를 허용하는 게 노동자들에게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주는 건지, 아니면 우버만 좋은 일인지 물어봐야 합니다. 우버는 노동자를 이용하는 시스템일 수도 있습니다. 우버 일을 하는 이들은 더 좋은 기술을 배울 기회를 놓칠 수 있습니다. 우버를 시장에 맡겨두면 좋을까요? 그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우버를 규제하는 게 더 나을 수 있습니다.”

▷구글, 페이스북 같은 거대 기술기업을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미국 사회는 견제와 균형, 신뢰의 토대 위에서 성장해 왔습니다.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용납할 수 없다는 원칙이 있습니다. 구글과 같은 회사들은 이제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위치까지 왔습니다. 미국 경제에 위험하고 우리의 생활 방식을 위협한다고 생각합니다.”

▷도시가 기술 혁신과 확산을 이끄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가파른 집값 상승 등 부정적 측면도 있습니다.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는 건 공급보다 수요가 빠르게 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명백한 해결책은 공급을 늘리는 것입니다. 뉴욕이나 서울 등에서 그런 일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에선 휴스턴 같은 도시가 값싼 주택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직장과 집을 구할 수 있는 기회를 찾게 해주는 건 매우 중요합니다. 서울에서 그렇게 할 수 없다면 한국은 ‘한국의 휴스턴’을 개발해야 합니다.”

▷최근 한국 정부는 15억원 이상 주택에 대출을 금지하는 부동산 정책을 발표했습니다.

“사람들이 부동산값 상승을 예상하는 곳에선 때때로 거품이 발생합니다. 정부가 이와 같은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보면 그런 조치로 개입하고 싶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건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집중해야 한다는 겁니다. 단순한 사실은 도시인들의 소득이 증가하면 도시 면적에 대한 수요가 늘어난다는 점입니다. 그런 수요에 맞춰 더 많은 공간을 공급하지 않으면 가격 상승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투자자 짐 로저스 말처럼 북한이 한국의 가장 큰 투자 기회가 될까요.

“그건 한국과 북한이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남북한 간 국경을 넘어 어느 정도의 신뢰가 가능할까요. 한국인은 북한 사람을 얼마나 신뢰합니까? 그들의 정직과 성실에 얼마나 의존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게 신뢰할 수 없다면, 기회는 매우 제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 폴 로머는 누구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미국의 거시경제학자다. 기술과 혁신이 경제 성장으로 이어진다는 내용의 ‘내생적 성장 이론(endogenous growth theory)’은 지난 30년간 세계 경제학계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친 논문 중 하나로 꼽힌다. 1997년 40대 초반 나이로 타임지가 선정한 ‘미국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25인’에 뽑혔다. 1955년생으로 시카고대에서 수학 학사,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시카고대와 UC버클리, 스탠퍼드대 교수를 거쳐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로 일하고 있다. 2016~2018년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겸 수석부총재를 지냈다.

△1955년생 △시카고대 수학 학사 △시카고대 경제학 석·박사 △시카고대, 로체스터대, UC버클리, 스탠퍼드대 교수 △교육기술회사 아필리아 설립 △세계은행 수석이코노미스트 △201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 △현 뉴욕대 스턴경영대학원 교수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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