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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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백화점 점포의 3분의 1이 9년 안에 문을 닫을 것으로 전망됐다. 1인 가구 증가로 호황을 누리고 있는 편의점 점포 수도 2028년까지 6.9% 줄어든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내수시장 위축과 지방 도시 소멸에 ‘모바일 구매 확산’이 더해지면서 유통시장의 판이 흔들릴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지갑 닫고 돈 쓸 사람 줄고…백화점 3분의 1 사라진다
23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롯데미래전략연구소는 최근 이런 내용을 담은 ‘유통 중장기 전략 보고서’를 작성했다. 연구소는 보고서를 통해 “2028년까지 전체 시·군·구(247개)의 절반이 넘는 129곳의 인구가 평균 10.2% 줄어든다”며 “인구 감소 지역에 들어선 일부 점포는 폐점을 준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연구소는 지난해 136조원 규모이던 국내 오프라인 유통점(백화점 대형마트 편의점 슈퍼마켓 가전양판점) 매출이 2021년 정점(142조원)을 찍은 뒤 하락할 것으로 내다봤다. 연구소는 이에 따라 지난해 100개이던 백화점 점포가 구조조정 과정을 거쳐 2028년 66개로 줄어드는 것을 비롯해 △마트 494개→328개 △슈퍼마켓 4780개→3993개 △편의점 3만8014개→3만5403개가 될 것으로 예측했다.

보고서는 “부산 대구 광주 등 인구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 백화점은 구조조정이 불가피할 것”이라며 “고령화에 맞춰 현재 ‘40대 여성’인 백화점 핵심 타깃도 ‘40~50대 여성’으로 끌어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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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30년 넘게 다니던 회사와 이별한 황진규 씨(60). 20년 전 ‘비혼’을 선언한 그는 은퇴를 앞두고 차를 팔았다. 그동안 모아둔 돈과 연금수령액을 감안할 때 매년 200만~300만원씩 나가는 차량 유지비(보험+세금+기름값)가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은퇴 후 황씨의 생활은 단출해졌다. 유튜브 명상 채널로 하루를 시작한다. 식사는 간편식으로 해결한다. 골프채는 창고에 넣었다. 대신 돈이 덜 드는 등산 스틱을 꺼냈다. 목돈이 들어가는 대형 가전제품과 가구는 고장 날 때까지 쓰기로 했다.

저출산·고령화와 이에 따른 인구 감소는 필연적으로 ‘축소 지향 사회’를 부른다. 일하는 사람은 줄어들고 부양 인구는 늘어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내수시장에서 성장할 분야는 의료와 실버산업뿐”이란 전망이 나오는 배경이다.

줄이고 줄이고…직격탄 맞는 TV·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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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노인 인구가 늘어날수록 꼭 필요한 곳에만 돈을 쓰는 ‘알뜰 소비’ 현상이 뚜렷해진다고 설명한다. 결국 내수시장이 쪼그라든다는 얘기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지난해 가구주의 연령이 60대 이상인 가구의 식료품 소비 비중(월평균 39만8646원·20.0%)은 모든 연령대에서 가장 높았다. 보건 관련 지출도 월평균 22만4291원으로 다른 연령대보다 네 배 이상 많았다. 별다른 소득이 없는 만큼 의식주, 의료 등 ‘필수 소비’ 외에는 웬만해선 지갑을 열지 않았다는 얘기다.

이런 트렌드는 앞으로 더 심화된다. 현재 768만 명인 65세 이상 고령자가 △2025년 1051만 명 △2030년 1298만 명 △2040년 1722만 명으로 늘어나고, 생산연령인구(15~64세)는 현재 3759만 명에서 △2025년 3583만 명 △2030년 3394만 명 △2040년 2864만 명으로 쪼그라들기 때문이다. 이지평 LG경제연구원 상근자문위원은 “소비인구 감소가 생산단가 상승을 부르고 이게 다시 소비를 위축시키는 악순환이 벌어질 수 있다”고 했다.

고령화의 충격파가 가장 먼저 닿은 분야는 자동차 TV 가구 등 목돈이 들어가는 내구재다. 자동차 내수 판매 대수는 2016년 160만 대를 기록한 뒤 2017년 156만 대, 2018년 155만 대로 연속 줄었다. 올해도 10월 누적 기준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 감소한 125만6708대로 집계됐다. TV 판매도 줄어드는 추세다. 가전업계는 2017년 200만 대에 달했던 국내 TV 판매량이 올해 180만 대 수준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문제는 ‘인구 자연감소’가 시작되는 내년부터다. 조영태 서울대 인구정책연구센터장은 “2020년은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이 사회 전반에 영향을 주기 시작하는 첫해가 될 것”이라며 “신혼부부 등 자동차 TV 가구를 살 만한 사람이 줄어드는 만큼 내구재 시장은 휘청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필규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저출산·고령화에 공유경제가 더해지면서 앞으로 10~15년 뒤에는 국내 차 판매량이 지금보다 20~30% 정도 감소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당장 쓰기보다는 은행에 묻어두자”

저출산·고령화의 영향은 금융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은행 정기예금에 ‘뭉칫돈’이 들어오는 게 대표적인 예다. 국내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지난 9월 말 753조412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680조9250억원)에 비해 10.6% 증가했다. 올해 기준금리 인하로 정기예금 금리가 연 1%대로 내려앉은 점을 감안하면 투자 목적은 아니란 게 업계의 설명이다. 번듯한 수입이 없는 고령자들이 당장 돈을 쓰기보다는 미래를 위해 은행에 묻어두려는 심리가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고령화는 금융회사들의 창구 풍경도 바꿀 전망이다. 예금 및 대출 상담이 줄어드는 대신 지금은 미미한 은퇴·상속·증여 관련 상품과 서비스가 늘어날 가능성이 높아서다. 김대익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인구가 줄어들면 예금과 대출시장도 쪼그라들 수밖에 없다”며 “은행들도 이런 점을 감안해 예대마진 수입 의존도를 낮추는 방안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회사들은 예금과 대출이 떠난 빈자리를 퇴직연금 신탁금융 등 이른바 ‘실버 금융상품’이 채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한금융그룹은 퇴직자가 빠르게 늘어나면서 지난해 190조원이었던 퇴직연금(적립금 기준)이 2023년 312조원이 될 것으로 전망했다. 실버 고객이 은행에 유언서 보관 및 유언 집행을 부탁하는 신탁금융 수요도 빠르게 늘어날 전망이다.

김보라/황정수/정지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