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연합뉴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 /사진=연합뉴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 두산그룹 계열사 직원이자 세월호 유가족에게 동지(冬至)를 맞아 팥죽을 받은 사연을 전했다.

박 회장은 22일 자신의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잠 못 이루는 밤에 조금 긴 글'이라는 제목의 글을 게시했다.

박 회장은 게시물을 통해 "주말에 행사가 있어 집을 나서는데 딩동!, 동지팥죽 두 그릇의 기프트 문자가 왔다"며 "이제는 5년이 넘었으니 이야기해도 되겠지 싶다"고 운을 뗐다.

이어 "지난 2014년 4월의 잔인한 그 날이 정신없이 지나고 다음 날 보고가 왔다"면서 "그룹 계열사 직원의 아이가 그 배에 탔다는 소식이었다"고 덧붙였다.

박 회장은 "설마 나는 해당이 없으리란 교만에 벌을 받은 듯 철렁했다"며 "마음만 무너져 내릴 뿐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채 며칠의 잔인한 시간이 흘렀다. 더는 가만히만 있을 수가 없어 무작정 진도에 내려갔다"고 했다.

아울러 "눈에 띄는 게 조심스러워서 작은 차를 하나 구해 타고 조용히 실종자 가족이 머무는 체육관 근처에 가서 전화를 했다"며 "꺼칠한 얼굴로 나온 아이 아빠가 내게 '괜찮으니 들어가자'고 했다. 내가 들어가도 되나 싶어 고개를 숙이고 조심스레 들어서는데 눈에 들어온 광경이 너무나도 처참했다"고 당시의 상황을 설명했다.

박 회장은 또 "체육관 바닥에 매트가 깔려있고 이불 더미가 간격을 두고 널려있었다"며 "가족들이 더러는 바닥에 앉고 누워 있다가 무슨 소식이 왔는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지르며 게시판쪽을 향해 달려가는 그 장면 자체가 참으로 처절했다. TV를 통해 봤어도 소리와 현실이 더해진 그 자리에서 받는 충격은 상상이상이었다"고 목격했던 현장에 대해 회상했다.

이와 함께 "충격 때문에 뭐라 했는지 기억이 안 나는 몇 마디 위로를 간신히 전하고는 그냥 다시 돌아섰다"며 "서울에 와서도 내가 본 장면들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고 뉴스에서 보는 장면들도 그때부터는 말로 표현 못 할 리얼리티가 되어 돌아오곤 했다. 어떤 이유에서건 상처받은 유가족을 향해 비난하거나 비아냥을 하는 것은 정말 인간의 도리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정신과 의사인 박혜신 박사에게 전화를 걸어 직원과 아이의 신상정보를 알려주고 도움을 청했다"며 "박 박사는 '걱정되시죠? 제가 내려가면 꼭 찾아서 도움을 드릴게요'라고 했다. 인연이 이렇게 고마울 수가 있나 싶었고 참으로 든든하기도 했다"고 감사함을 표했다.

박 회장은 "야구를 좋아했다는 아이는 그로부터도 꽤 긴 시간 동안 부모에게 돌아오지 못했다"며 "결국 기다리다 몇 주 후 다시 또 진도로 내려갔는데, 동네 식당에 마주 앉은 아이 아빠는 첫 충격에서는 많이 벗어난 모습이었지만 꺼칠하고 피로해 보였다. 한참이 더 지나 292번째로 아이는 두 달만에 부모에게 돌아왔다"고 전했다.

그는 "그 잔인했던 일은 그게 끝이 아니었다. 원인규명을 요구하는 호소는 물론이고 악바친 비난이나 왜 저럴까 싶은 대립의 모습들이 그로부터 끝없이 이어졌다"며 "가끔씩 그 아빠인 직원도 TV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다"고 했다.

박 회장은 "당시 소속 계열사 대표를 불러 '무슨 일이 있어도 아이 아빠가 가족으로서 해야 할 일 하도록 내버려 둬라'고 했더니 참으로 고맙게도 '네. 회장님. 안 그래도 이미 그러고 있습니다'고 한다. 그 말이 참으로 든든했다"며 "그 후 그 애 아빠와 가끔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박 회장은 "난 해준 게 별로 없었는데 동지라고 내게 팥죽을 보내주는 정이 고맙기 짝이 없다"며 "정작 나는 세월 가며 잊고 있었지 싶어 또다시 뒷북친 기분에 마음이 무겁고 인연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마음에 새길 수밖에 없다. 잘 이겨낸 가족과 도움을 주신 정혜신 박사 내외를 위해 기도드린다. '안 차장 고마워 팥죽 잘 먹을게'"라고 덧붙였다.

조준혁 한경닷컴 기자 pressch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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