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기사는 상관 없음/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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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제 대학 졸업자가 대학 졸업장이 굳이 필요없어도 되는 일자리에 취직하는 '하향취업' 현상이 심해지고 있다. 대졸 취업자수 대비 하향취업자수를 보여주는 하향취업률이 올해 처음으로 30%대를 돌파했다. 취업이 안되는 극심한 '취업난'에 과거 고졸자들이 일하던 자리에도 대졸자들이 몰리고 있다는 얘기다.

오삼일 한국은행 조사국 과장과 강달현 조사역이 23일 작성한 BOK이슈노트 '하향취업의 현황과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9월 기준 4년제 대졸자가 고졸 이하의 학력을 요구한 일자리에 취직한 '하향취업률'은 30.5%였다. 2000년대 22%였던 하향취업률이 꾸준히 증가해 올해 처음으로 30%선을 넘었다고 전했다.

연구진은 하향취업이란 취업자의 학력이 일자리가 요구하는 학력보다 높은 경우를 뜻한다고 정의했다. 요구 학력에 걸맞은 일자리를 구하면 적정취업이라 칭했다. 직업분류상으론 대졸자가 관리자, 전문가 및 사무종사자로 취업하면 적정취업으로 분류하고, 그 외 나머지 직업을 가지면 하향취업으로 정했다.

하향취업자의 절반 이상이 서비스 및 판매 종사자로 일하고 있었다. 대졸자가 하향취업 시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지를 살펴본 결과 57%가 서비스 및 판매 종사자를 택했다. 장치 및 조립 종사자가 되는 경우도 14%나 됐다.

성별로는 남성(29.3%)의 하향취업률이 여성(18.9%)보다 높았다. 보고서에 따르면 어성 중에서는 양질의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면 아예 취업을 포기하는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으로 해석했다.

연령별로는 청년층과 장년층이 높았다. 청년층의 하향취업률은 29.5%였고, 장년층은 35%나 됐다. 장년층이 높은 이유는 은퇴 이후 새로운 일자리에 취직하기 위해 눈을 크게 낮추는 고령층이 많아져서다.

대학 전공별로는 인문계나 이공계 할 것 없이 모두 높았다. 구체적으로 '자연(30.6%)', '예체능(27.7%), '인문사회(27.7%)', '공학(27%)' 등의 순으로 하향취업률이 높게 나타났다. 전공에 맞는 적정 일자리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사범(10.0%)', '의약(6.6%)' 전공자의 하향취업률은 낮은 축에 속했다.

한 번 하향 취업하면 그 자리에서 나오기 힘든 '늪' 현상도 지속됐다. 하향취업에서 적정취업으로 전환하는 비율은 4.6%에 불과했다. 하향취업한 이들은 1년 후에는 85.6%, 3년 후에도 76.1%나 기존보다 좋은 일자리를 찾지 못했다. 실업자가 되거나 비경제활동인구로 빠지는 경우도 9.8%나 됐다.

하향취업자들의 임금은 적정취업자의 것에 비해 38%만큼이나 낮았다. 2004~2018년 사이 하향취업자 임금은 177만 원으로 적정취업자의 임금(284만 원)보다 크게 낮았다.

이에 연구진은 "고학력 일자리 수요가 대졸자 공급을 따라가지 못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적인 수급 불균형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2000∼2018년 중 대졸자는 연평균 4.3% 증가한 반면 적정 일자리는 2.8% 증가하는 데 그쳤다"고 설명했다.

오삼일 과장은 "이러한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청년층이 노동시장에 진입할 때 보다 신중한 태도를 취하도록 만들고 있다"며 "하향취업 증가는 대졸자 등 인적자본 활용의 비효율성, 생산성 둔화 등을 초래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쓸 데 없이 대학에 가지 않도록 필요 이상의 고학력화 현상을 완화하고, 노동시장 제도 개선을 통해 직업간 월환할 노동이동을 유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배성수 한경닷컴 기자 baeba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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