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말까지 내놓기로 했던 제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을 수립하지 못하고 결국 해를 넘기게 됐다. 2년 단위로 짜야 할 법정계획 일정을 정부 스스로 어겼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와 한국전력은 연내 만료되는 전기자동차 충전할인 등 특례할인을 일괄 종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15년짜리 '전력수급계획' 해 넘긴다…특례할인은 폐지 가닥
“올해 계획을 내년에 짤 판”

9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2019년부터 2033년까지 15년간 전력계획으로, 원자력 석탄 재생에너지 등의 발전 비중을 정하는 게 골자다. 전기사업법 시행령에 따라 2년 단위로 짜는 게 원칙이다. 이 장기계획 확정이 해를 넘기는 건 이례적이다. 전년도 전력수급 계획을 이듬해 내놓는 상황이 빚어지게 돼서다.

9차 계획 수립이 늦어진 건 올해 도입된 전략환경영향평가 제도 때문이란 게 산업통상자원부의 설명이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상위 계획을 수립할 때 환경보전 계획과 부합하는지 확인하는 절차다. 산업부 관계자는 “전력계획 수립에 앞서 공청회와 국회 보고 등을 해야 하기 때문에 연내 내놓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정부가 원전 및 재생에너지 비중을 조정하는 데 애를 먹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원전을 더 줄이고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전기요금의 급격한 인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탈원전 정책을 처음 공식화한 2017년 제8차 전력계획에서 현재 24기인 원전을 2030년 18기로 감축하고 재생에너지 비중은 6%에서 20%로 확대하기로 했다.

산업부는 9차 계획에 석탄발전의 세율 인상, 전력수요 감축, 전기요금 인상 등을 포함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전력계획 수립이 늦어지면서 발전회사들의 경영 불확실성이 커지게 됐다. 한 발전사 관계자는 “발전원별 설비 비중 등이 확정돼야 우리도 세부 계획을 짤 수 있기 때문에 정부 발표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특례할인은 일괄 종료 ‘가닥’

정부는 종료 시한이 다가오는 전기요금 특례할인을 연장하지 않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한국전력 한국동서발전 등 전력·발전회사의 재무구조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어서다. 2016년 12조원 넘는 이익을 냈던 한전은 지난해 6년 만의 적자(-2080억원)로 돌아선 데 이어 올해도 큰 폭의 손실이 불가피하다. 한전은 이번주 ‘특례할인 일괄 종료’를 골자로 한 전기요금 조정안을 마련해 정부와 협의한 뒤 오는 30일 이사회에서 최종 확정할 계획이다.

이달 종료되는 특례할인은 전기차 충전(전력량 요금의 50% 할인)과 전통시장(월 5.9% 할인), 주택용 절전(월 10~15% 할인) 등 세 가지다. 할인액은 올 1~6월 기준 전기차 152억원, 전통시장 12억원, 주택용 절전 163억원 등이다. 별도 종료 시한이 없는 초·중·고 냉난방 할인(6~50%)도 할인 폭을 줄이거나 없애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다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여당 반대가 변수다.

일각에선 탈원전 정책으로 에너지 공기업들의 적자가 누적되자 엉뚱하게 전략산업 분야나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을 없애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을 내놓고 있다. 이덕환 서강대 화학과 명예교수는 “특례할인 종료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공기업 부실을 힘없는 서민에게 떠넘기는 잘못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