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개혁·규제혁신 외치더니…알맹이 빠져 시장반응은 '싸늘'
기획재정부는 매년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할 때마다 자료 곳곳에 ‘밑줄’을 쳐서 내놓는다. 이미 발표한 내용이 아닌, 새로운 정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19일 나온 2020년 경제정책방향 자료에는 평년보다 밑줄이 적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밑줄을 찾아보기 힘든 분야는 노동·규제 혁신이었다. ‘직무급제 도입을 원하는 민간기업에 컨설팅을 지원한다’는 게 유일했다.

세계에서 가장 경직적인 주 52시간 근로제 보완과 노동시장의 유연성 확대, 공공기관의 방만한 임금구조 쇄신 등과 같은 정책방향은 없었다. 당초 정부는 작년 상반기 공공기관의 호봉제를 대신할 직무급제 매뉴얼을 내놓겠다고 약속했다. 노동계가 반발하자 그 시기를 올해로 미뤘고,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총선이 있는 내년에도 공공기관의 ‘철밥통’은 여전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규제혁신 방안에서도 알맹이가 쏙 빠졌다는 게 산업계의 반응이다. 산업안전보건법, 화학물질등록평가법, 화학물질관리법 등으로 노동·환경 규제가 한층 강화되자 기업이 애로를 호소했지만 이에 대한 완화 대책은 하나도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규제 샌드박스 등 이미 발표한 정책들을 계속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규제 혁신 분야에 포함된 ‘한걸음 모델’도 혁신보다 기존 산업 보호에 방점이 찍혀 있다. 한걸음 모델은 공유차량 서비스인 ‘타다’ 같은 새로운 사업 모델과 기존 사업자의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사회적 타협 방식이다. 이해관계자들이 한 걸음씩 물러서 타협을 이룰 수 있게 한다는 취지다. 내용을 보면 결국 신산업 사업자가 의무적으로 기존 사업자에게 돈을 나눠주도록 한다는 게 핵심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날 청와대 확대경제장관회의에서 민간 참석자들 사이에서 ‘쓴소리’가 즉각 나왔다.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토론세션에서 “기득권의 보호장벽이 너무 높아 신산업 진입이 어려운 게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박석길 JP모간 본부장은 “저성장 국면이 고착화되지 않도록 성장동력 확충, 경제체질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최근 몇 달 새 반복해서 “규제·노동 혁신 방안을 내년도 경제정책방향에 담겠다”고 강조해왔다. 그만큼 엄중한 경제 상황을 돌파할 파격적인 정책이 나오리라는 기대도 컸다. 하지만 이날 발표된 내용은 이런 기대를 충족시키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는 게 시장의 냉정한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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