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한경 밀레니엄포럼은 총 아홉 차례 열렸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한 정부 주요 부처 수장들이 연사로 나서 오피니언 리더들과 소통하고 다양한 정책 아이디어를 공유했다. 고용 부진, 저물가, 일본의 수출규제 등 경제 현안을 놓고 참석자 간 격한 토론이 이어지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지난 1월 24일 열린 올해 첫 번째 한경 밀레니엄포럼의 연사는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었다. 고용 관련 지표들이 추락하던 시점이어서 이를 둘러싼 논쟁이 컸다. 이 장관은 일자리 감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로 생산가능 인구 감소 등을 꼽았다. 하지만 다수의 참석자들은 정부의 고용·노동정책 탓이라고 비판했다. 이 장관은 “정부도 일자리 상황을 매우 엄중하게 보고 있다”며 “정부의 고용정책 1순위는 기업이 스스로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2월에는 홍남기 부총리가 나섰다. 홍 부총리는 “한국 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성장 둔화”라며 “경제활력 제고에 가장 큰 역점을 두겠다”고 했다. 이를 위해 “자동차 조선 디스플레이 석유화학 등 주력 산업 분야의 활력 대책을 시리즈로 발표하겠다”고 예고했다.3월에는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반도체와 미래차, 로봇, 바이오 분야 산업 대책을 상반기에 내놓겠다”고 했다. “산업 생태계 혁신에 나서겠다”는 뜻도 강조했다.5월 2일에는 문성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위원장이 연사를 맡아 “호봉제 폐지를 근본적으로 고민해볼 때가 됐다”며 임금체계 개편을 제안했다. 윤종원 당시 청와대 경제수석은 5월 28일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의 불법파업 등과 관련해 “노조에도 공정성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며 “법과 원칙에 따라 노조의 불법행위에 엄정 대응하겠다”고 밝혔다.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가 시작된 7월에는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이 연사로 나서 “일본이 기술 우위를 무기로 글로벌 공급망을 뒤흔들고 있다”며 “세계 경제에 대한 위협”이라고 비판했다. 또 “우리 부품·소재산업의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겠다”고 했다.8월 27일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에게 4차 산업혁명의 ‘DNA(데이터·네트워크·인공지능)’를 심겠다”고 말했다. 박 장관은 내년부터 중소기업에 주 52시간 근로제가 적용되는 것과 관련해 “벤처기업과 연구개발(R&D) 부문 등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지적했다.이어 10월 15일 포럼에선 박양우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연사를 맡았다. 그는 “콘텐츠산업만큼은 민간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해줘야 한다”며 “게임 영화 등 콘텐츠산업 현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규제 철폐와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해나가겠다”고 말했다.11월 24일 포럼의 연사는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조 위원장은 “다른 부처들이 추진하는 정책과 법령에 경쟁 저해 요소가 있는지 사전에 분석한 뒤 (경쟁제한 요소를 없애라는)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겠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이를 증명하듯 10여 일 뒤인 12월 5일 “여객자동차 운송사업법 개정안(타다 금지법)이 소비자의 편익을 낮출 우려가 크다”며 법 개정에 대한 반대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
서울 문래동에 있는 정수목형의 김의찬 사장은 최근 가죽불박기를 개발했다. 레이저포인트로 정확한 위치를 잡은 뒤 뜨겁게 달궈진 프레스로 가죽에 글자나 무늬를 넣는 장치다. 이 기계 제작에는 대광주물 아심테크 우정용접 화인레이저 SK에어로 공방인트 등 14개사가 참여했다.김 사장은 40년 경력의 목형 장인이다. 목형은 나무로 모형을 만드는 작업이다. 주로 외부 기업의 주문에 의해 작업하던 그가 요즘 완제품 제작에 나서고 있다.금속가공 등 2000여 개 중소기업이 밀집한 문래동 신림동의 중소기업인들이 임가공을 벗어나 ‘완제품’을 내놓고 있다. 경기에 따라 일감이 들쭉날쭉한 임가공 대신 ‘나만의 제품’ ‘나만의 브랜드’로 승부를 걸기 위해서다.신도림동에 있는 오리온식품기계의 엄천섭 사장은 요즘 신형 슝카를 개발하고 있다. 내년 3월 출시가 목표다. 슝카는 식당에서 손님이 모니터를 통해 음식을 주문하면 ‘쓩~’하고 나타나는 자동배송장치다. 손님이 전자메뉴판으로 음식을 주문하면 조리사가 음식을 조리해 손님 테이블로 보내는 기계다. 목표 지점에서 5㎜ 오차 범위 내에 도착한다. 이런 장점 때문에 미국 호주 등지로 수출되고 있다. 하지만 기존의 슝카는 특정 레일 위를 달려야 했다. 이번에 개발 중인 신형 쓩카는 레일 없이 일반 평판 위를 달리는 제품이다. 엄 사장은 “무인자동운반장치와 개념이 비슷하다”며 “여기엔 기계 전기 전자 센서 소프트웨어 사물인터넷 등의 기술이 접목된다”고 말했다.신도림동의 소시오텍(대표 어용선)은 중형 커피로스팅기계를 개발했다. 어 대표는 “하루 8시간을 기준으로 약 200㎏의 생두를 볶을 수 있는 기계”라며 “안정적이고 균일한 로스팅을 위해 내부 온도의 급격한 변화를 막을 수 있게 설계했다”고 설명했다.문래동에 있는 에스에스스포츠(대표 김경원)는 간편하게 길이를 조절할 수 있는 등산용 스틱을 개발해 직접 매장도 열었다. ‘원스틱’이라는 브랜드의 이 스틱은 길이를 조절할 때 마디를 돌리지 않고 원통에 파인 홈에 베어링이 걸리게 설계됐다.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흰 가운을 벗고 제품을 개발해 직접 창업에 뛰어드는 의사가 늘어나고 있다. 주로 화장품이나 바이오 분야에 몰리던 의사 창업은 시력개선기기부터 침대 매트리스, 베개 등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전문가가 개발한 제품이 시장에서 주목받으며 성공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정부의 벤처창업 육성책으로 자금조달이 쉬워져 의사 창업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시력개선기기 개발한 내과의내과의인 박성용 에덴룩스 대표가 개발한 ‘오투스’는 눈 수정체 훈련기기다.박 대표는 “근육이완제 주사를 맞은 뒤 부작용으로 ‘수정체 조절근 조절 마비’ 진단을 받고 시력이 급격히 나빠졌다”며 “스스로 눈 근육을 훈련하는 법을 공부해 적용한 뒤 시력을 회복했다”고 말했다. 당시의 경험을 기반으로 만든 게 오투스다. 지난 4월 출시해 누적 2억5000만원어치를 팔았다.오투스의 시력개선 원리는 수정체 조절근 훈련에 있다. 박 대표는 “사람들이 스마트폰, 컴퓨터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면서 근거리 작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수정체 조절근이 수축된 채로 경직돼 있다”며 “근력이 떨어지면 시력도 안 좋아진다”고 설명했다. 이어 “광학기술을 활용해 조절근의 수축, 이완 작용을 반복적으로 훈련시키는 원리”라고 말했다. 하루 5분 기기를 쓰고 밖을 바라보면 된다. 자체 임상 결과 기기 사용 후 3개월이면 수정체 조절력이 평균 0.5디옵터 향상돼 돋보기 도수를 낮출 수 있다. 0.5디옵터가 향상됐다는 의미는 30㎝ 이상 떨어져서야 보이던 문자가 25㎝에서도 보인다는 의미다. 박 대표는 “내년 50억원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의사들이 최근 제조업 분야 창업에 뛰어드는 것은 의료진의 사회적 위상이 약화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또 정부의 창업 지원 등 창업 여건이 크게 개선된 것도 영향을 미쳤다.한 의사 출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대표는 “환자를 치료하다보면 ‘관련 업계에 왜 이런 제품은 없을까’ 하는 의문이 들 때가 많다”며 “최근 몇 년 새 창업자금을 구하기 쉬워지다보니 아이디어가 떠올랐을 때 실행에 옮기는 의사가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메이드 바이 닥터’ 딱지는 이미 화장품업계에선 성공 공식이 됐다”며 “전문가가 만들었다는 신뢰감이 소비자들에게 긍정적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정형외과 의사가 만든 매트리스·베개수면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의사들이 관련 시장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양종혁 정형외과 전문의가 개발한 베개 ‘밀라’는 거북목으로 고생하는 이들을 위한 제품이다. 머리에서 목으로 이어지는 ‘C 커브’를 자연스럽게 유지할 수 있게 디자인했다. 누웠을 때 경추 곡선을 유지할 수 있는 각도를 정확하게 맞추기 위해 시제품을 만들 때마다 직접 누워 엑스레이로 경추를 촬영했다.오석관 신경외과 전문의가 설계한 드로브로스의 씨가드 베개와 토퍼도 비슷한 제품이다. 베개는 귀 눌림을 최소화하는 동시에 혈액 순환을 방해하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게 회사 측의 설명이다.로버트 애디슨 미국 노스웨스턴대 정형외과·재활의학과 교수와 협업해 만든 제품으로 유명한 매트리스 브랜드 ‘씰리’도 인기를 끌고 있다. 스프링을 총 3단계로 배치해 신체 움직임을 흡수하고 지지력을 제공한다. 요체(허리등뼈) 부위를 보다 효과적으로 받치기 위해 중간 부분은 충전재의 밀도를 높인 게 특징이다.‘미스미즈 이너 리프레싱’은 산부인과 전문의인 정소용 미스미즈바이오 대표가 개발했다. 여성들이 아직 산부인과 진료를 기피해 질 건강이 손상돼 자궁경부암 등 심각한 질병으로 이어지는 사례를 보고 만들었다. 자극 없는 약산성 성분에 질 건강을 유지해주는 균인 락토바실루스가 함유돼 있다. 에탄올, 파라벤류, 페녹시에탄올 등 일곱 가지 유해 화학성분은 제외했다.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