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미 디자이너

'하이패션' 죽어도 포기 못해
매출보다 브랜드 가치가 먼저죠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미술 공부를 한 적은 없다. 우영미 디자이너가 성균관대 의상학과를 간 것은 패션을 그저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부모님 영향이었다. 먹을 것은 없어도 집안은 예술적으로 꾸미고, 그릇은 어디서 멋스러운 것을 사오는 그런 분들이었다.

옷을 실험적으로 만들어보는 것은 일상이었고, 대학 내내 공부도 열심히 했다. 뜻밖의 기회가 찾아온 것은 1983년이었다. 세계 의상학과 학생들이 모이는 ‘오사카 국제패션어워드’에 한국 대표로 나가보라는 권유를 받았다. 망설이지 않았다. 대회에 한복에서 착안한 무채색 계열의 옷을 선보였다. 뜻밖의 결과가 나왔다. 1등이 프랑스, 2등이 미국, 3등이 한국의 우영미 학생이었다. 24세이던 우영미 디자이너는 이 대회를 계기로 글로벌 진출의 꿈을 꾸기 시작했다.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에 진출한 디자이너가 됐다. 지금도 파리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경기 과천에 있는 레스토랑 마이알레에서 우 디자이너를 만났다.

남성복에 대한 애정

그는 ‘우영미’ ‘솔리드옴므’ 등 남성복 브랜드 두 개를 운영하고 있다. 명함에는 최고경영자(CEO)와 디자이너가 새겨져 있다. 우 디자이너는 패션 1세대 가운데 성공한 인물로 손꼽힌다. 한국 브랜드 최초로 프랑스 파리 마레지구에 매장을 열었고(2006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의상조합(La Chambre Syndicale de la Mode Masculine) 정회원 자격을 취득(2011년)했다. BoF(Business of Fashion)가 선정한 ‘2014년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패션 인물 500인’ 중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이름을 올렸고 3년 연속 선정됐다.

레스토랑 한쪽의 각종 화초를 키우는 온실에 자리를 잡자 우 디자이너가 좋아한다는 부라타치즈 샐러드가 나왔다. 수란처럼 몽글몽글한 부라타치즈를 잘라 신선한 채소와 함께 먹으며 우 디자이너에게 오래전 얘기를 물었다. 대학 졸업 후 입사한 대기업 반도패션(현 LF)을 왜 그만뒀는지 궁금했다. 그는 “남성복을 디자인하고 싶었는데 회사는 중년 여성을 위한 옷을 만들라고 했다”며 “여성스러운 옷감은 거의 방석으로 만들어 쓰다 그만뒀다”고 답했다. 대학 다닐 때 남학생들의 특징 없는 천편일률적인 패션을 보고 저 친구들에게 제대로 된 옷을 입히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이 시작이었다.

1988년 그는 자신의 브랜드 솔리드옴므를 선보였다. “지금도 영미 누나라고 부르는 소비자가 많아요.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20대들이 입고 싶은 옷을 만들 수 있는 비결은 제가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남성상에 옷을 입히기 때문일 거예요.” 디자인을 할 때 누군가를 떠올리며 그에게 맞는 옷을 디자인한다는 얘기였다. 그는 “디자이너는 나이를 먹어도 상상속의 누군가는 나이를 먹지 않기 때문에 브랜드도 젊음을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하이패션’ 이미지 목숨 걸고 지켜

빵 냄새가 고소하게 풍겨왔다. 화덕에서 갓 나온 피자 마이알레와 곶감, 호두, 무화과, 고르곤졸라치즈 등을 토핑한 콰트로 포르마지오 피자가 나왔다. 우 디자이너는 “나폴리 전통식 화덕에서 구웠기 때문에 빵이 특히 맛있다”며 콰트로 포르마지오 피자를 두 조각 연달아 먹었다. 우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의 패션은 뭘까. 그는 “요즘은 스트리트 브랜드가 유행이지만 재킷 같은 것을 자기만의 스타일로 갖춰 입은 사람에게 눈이 간다”고 했다. ‘평범한 옷을 자기만의 감성으로 소화해서 입는 남성’이라는 얘기로 들렸다.

우 디자이너가 굴라쉬를 주문하며 파리 진출로 대화의 주제가 넘어갔다. 그는 지인이 파리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줬다. 아르마니 매장 바로 옆, 좋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CJ오쇼핑의 지원을 받아 파리 패션쇼에 참가했어요. 그 쇼를 본 뒤 프랑스 패션잡지 유명 에디터가 왜 파리에 매장을 안 여는지 모르겠다고 한 말을 듣고 용기를 냈어요.” 비즈니스 측면에서 가능성이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예상대로 패션지구에서 매년 매출 3위 안에 드는 브랜드가 됐다. 그래서 매장 위치도 항상 좋은 곳으로 배정받는다. 굴라쉬가 나오기 전 프레시토마토 파스타가 테이블에 올랐다. 토마토미트소스 파스타 면이 돌돌 말려있고 그 위엔 커다란 수제 소시지 하나가 올라가 있었다. 우 디자이너는 소시지를 칼로 자르면서 “직접 만든 소시지라 풍미가 남다르다”고 했다.

홈쇼핑의 후원으로 파리에 진출했지만 홈쇼핑용 옷을 만들지 않는 이유를 묻자 우 디자이너는 “하이패션을 지향하기 때문에 브랜드 이미지만큼은 목숨 걸고 지켰다”고 답했다. 단기 매출에 급급했다면 짧은 시간 동안 큰돈을 벌 방법이 많았겠지만 그는 ‘우영미’라는 브랜드를 고급 남성복 이미지로 유지하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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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는 균형감각 있어야”

남성복만 30년 넘게 한 우 디자이너는 내년 1월 처음으로 여성복을 선보인다. 파리 패션위크 무대에 여성복 20벌, 남성복 40벌을 올릴 예정이다. 그는 “옷의 성별 구분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했다.

그가 인터뷰 때 걸치고 나온 재킷도 남성복이었다. “이미 우리 남성복을 입는 여성 팬이 많다”며 “여성의 체형엔 약간 안 맞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우영미스러운 감성을 반영해 여성 몸에도 잘 맞는 옷을 내놓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문한 굴라쉬가 나왔다. 그릇 위를 뒤덮은 빵을 칼로 자르자 김이 모락모락 나는 스튜가 담겨 있었다. 체코식 소고기 스튜인 굴라쉬엔 호주산 와규와 각종 채소가 먹기 좋은 크기로 들어 있었다. 빵 조각을 스튜에 찍어 한 입 맛을 본 우 디자이너는 “지금도 프랑스에 처음 매장을 열던 때를 기억한다”고 말했다. 어떤 20대 프랑스 남성이 메모를 남겼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이고 섬세한 감성을 이해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었다. 그 사람이 40대가 됐지만 여전히 우영미 브랜드의 고객이다.

수십 년 패션을 하며 보람있는 일을 묻자 그는 “후배 디자이너들이 고마워하는 건 일찌감치 프랑스 일본에 진출해 길을 터줬다는 점”이라며 웃었다. “한국에도 우영미라는 하이패션 브랜드가 있다는 걸 자랑스러워하는 후배가 많아요. 그거 하나는 잘한 거죠.”

우 디자이너는 딸 둘과 함께 일하고 있다. 첫째는 우영미 브랜드의 크리에이티브디렉터(CD), 둘째는 상품기획자(MD) 일을 맡고 있다. 우 디자이너에게 CEO로서 어려운 점이 없냐고 묻자 “사실 숫자와 관련된 건 잘 계산하지 않는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어 “CEO 우영미는 브랜드 밸런스(균형)를 보는 사람이에요. 회사가 너무 왼쪽으로 기울면 오른쪽으로 방향키를 틀어주지요. 일일이 숫자를 들여다보진 않아요.” 그래도 성장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되묻자 “100여 명의 직원에게 월급을 주고 다음 시즌에 새 옷을 만들고 패션쇼를 할 수 있을 정도의 돈만 있으면 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엔 여유가 묻어났다. 물론 외환위기 때는 힘들었다. “내 월급을 먼저 깎고 씀씀이를 줄여서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아트+패션 공간 만드는 게 꿈”

어느새 그릇이 비워지고 커피가 나왔다. 그의 창의성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머그컵을 감싸 쥐며 우 디자이너는 “끊임없이 긴장하며 주변에서 영감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삶이 수십 년째”라며 “항상 안테나를 세우고 사는 건 피곤한 일이지만 그렇게 뭐 하나 걸릴 때까지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후배 디자이너들에 대한 조언을 부탁하자 “요즘은 한국적이라는 게 없다”며 “내가 제일 잘하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한발 한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고 했다. 좋은 디자이너가 나와 많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옷을 찾게 되면 그 옷이 한국적 스타일이 된다는 얘기였다. 글로벌 시장 진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글로벌 브랜드라는 건 규모의 문제가 아니에요. 세계 청년들이 ‘어? 그 브랜드 나도 알아. 나도 입고 싶어’라고 생각하는 브랜드를 만들 수 있느냐죠.”

마지막으로 개인적 꿈을 물었다. 우 디자이너는 “가구든 뭐든 손으로 만들고 싶다”고 했다. “손으로 뭔가를 만드는 시간은 너무 행복하잖아요. 나중에 우영미재단 같은 걸 설립해서 아트와 패션을 공유하는 공간을 열고 후배들과도 나누고 싶어요. 될지 안 될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 우영미는 누구인가

우영미 디자이너는 남성복 ‘우영미’ ‘솔리드옴므’를 만든 디자이너이자 쏠리드의 최고경영자(CEO)이다. 파리패션위크에서 2002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남성복 패션쇼를 여는 등 해외 활동이 활발한 대표적인 한국 디자이너다. BoF가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패션 인물 500인’에 2014년부터 3년 연속 뽑힐 정도로 영향력이 큰 디자이너다. 2030세대 남성들이 ‘가장 입고 싶어 하는 옷’으로 꼽는 남성복을 1988년부터 지금까지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여성 디자이너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남성상이 뚜렷해서”라고 그는 말한다. 지난해엔 서울패션위크 명예 디자이너로 선정되기도 했다.

■ 우영미 디자이너 약력

△ 1983 오사카 국제패션어워드 3위 입상
△ 1983 성균관대 의상학과 졸업
△ 1988 남성복 브랜드 솔리드옴므 출시
△ 2002 남성복 브랜드 우영미 론칭 및 파리컬렉션 진출
△ 2006 파리 마레지구에 첫 우영미 매장 개점
△ 2009 파리에 디자인 스튜디오 설립, 일본 진출
△ 2011 한국인 최초로 프랑스 파리의상 조합 정회원 자격 취득
△ 2014~2016 한국인 최초 BoF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패션인물 500인’ 선정
△ 2018 ‘2019 봄여름 서울패션위크’ 명예 디자이너 선정
[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의 상상은 늙지 않아…지금도 '영미 누나'로 불려요"

우영미 디자이너의 단골집 마이알레

숲속 정원 같은 식당…나폴리 전통방식으로 피자 구워내

[한경과 맛있는 만남] "디자이너의 상상은 늙지 않아…지금도 '영미 누나'로 불려요"

‘나의 오솔길’이라는 뜻의 마이알레는 우영미 디자이너의 언니인 우경미 디자인알레 대표, 동생인 우현미 소장이 운영하는 농장형 카페다. 식물원처럼 조경을 해놔 산책하기도 좋다. 우 대표와 우 소장은 W호텔, 파크하얏트호텔, 현대백화점 판교점 등의 조경을 담당할 정도로 솜씨가 빼어나다. 그 감각이 곳곳에 묻어 있는 마이알레에 들어서면 사이프러스나무 연필향나무 등 여러 종류의 나무가 빼곡하다. 레스토랑 문 옆에는 커다란 화덕이 자리잡고 있다. 1층과 야외석은 레스토랑 겸 카페로, 2층은 책 등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매장으로, 3층은 예술 문화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는 라운지로 운영된다.

대표 메뉴는 신선한 루콜라와 하몽, 모차렐라치즈 등을 올려 구운 피자 마이알레와 곶감, 호두, 무화과, 고르곤졸라치즈 등을 토핑한 콰트로 포르마지오 피자다. 이탈리아 나폴리 전통 방식의 화덕에서 구워내 도우가 쫄깃하고 피자 가장자리의 기포(에어버블)가 구수한 향을 더한다. 마이알레에서 직접 만든 수제 소시지(초리조)를 구워 올린 프레시토마토 파스타, 신선한 채소들과 15년 숙성시킨 발사믹 식초, 부라타치즈를 올린 부라타치즈 샐러드도 인기가 많다. 파프리카, 토마토를 우려낸 스튜에 호주산 와규와 각종 채소를 넣어 끓인 체코 스타일의 굴라쉬도 독특한 맛으로 입맛을 끌어올려준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영업하며 매주 월요일은 휴무다.

민지혜/안효주 기자 spo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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