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20만 소매상·2만 도매상 '앱' 하나로 연결

클릭 몇 번으로 의류 주문
B2B 패션플랫폼 강자로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사진=연합뉴스

동대문 의류도매상가 /사진=연합뉴스

동대문 의류상가는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패션 시장이다. 6·25전쟁 직후 피란민들이 판잣집에 모여 살며 버려진 미군 옷을 염색해 판 게 시작이었다. 1962년 평화시장 상가, 1980~1990년대 광장 제일 아트프라자 밀리오레 등이 들어서 대형 시장이 됐다. 현재 의류 도매점만 2만여 개, 소매점은 3만 개가 넘는다.

IT(정보기술)와 의류 유통에 관심이 많던 김준호 딜리셔스 대표는 이곳을 눈여겨봤다. 전국에 있는 30만 개가 넘는 옷가게 주인들이 동대문으로 몰리지만 거래 방식은 수십 년 동안 바뀌지 않은 게 이상했다. 그는 새로운 방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동대문 의류 도매상과 전국 소매상, 쇼핑몰 운영자들을 연결해주는 서비스를 내놨다. ‘신상마켓’이다. 올해 연간 거래액 3500억원을 내다보고 있다.

구매에서 배송까지 풀서비스

동대문서 진화하는 '사입삼촌'…옷시장 50년 거래관행 바꾼 신상마켓

동대문 시장의 거래 시스템은 50년간 변하지 않았다. 안면을 튼 상인들끼리 계약서 없이 신용으로 거래했다. 지방 소매상들은 ‘입소문’을 듣고, 꼭두새벽에 동대문 상가를 돌며 물건을 산 뒤 고속버스에 지친 몸을 실어야 했다. 1970~1980년대 방식은 지금도 남아 있다.

이 재래식 유통에서 빼놓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사입삼촌’이다. 사입삼촌은 동대문 의류 도매상과 전국 소매업체들을 이어준다. 동대문 시장에 직접 가기 힘든 옷가게 주인이 사입삼촌에게 도매상점과 옷 종류, 수량을 알려주면 대신 사다준다. 사입삼촌을 쓰지 않으면 직접 도매 매장과 연락해 대금을 지급하고 택배도 따로 받아야 한다.

신상마켓은 이 역할을 모바일 플랫폼에서 구현하고 있다. 신상마켓 앱(응용프로그램)이나 PC 사이트에 접속해 도매 매장의 상품을 둘러본 뒤, 원하는 제품 및 수량을 ‘장바구니’에 담는다. 한꺼번에 결제하고 대행 수수료를 내면 신상마켓에서 배송까지 해준다. 도매상들의 입점과 소매상들의 회원가입은 모두 무료다. 대신 대행 수수료를 받는다. 신상마켓은 서울 성수동에 물류센터도 마련했다. 860㎡(약 260평) 규모다.

신상마켓 올 거래액 3500억원

동대문서 진화하는 '사입삼촌'…옷시장 50년 거래관행 바꾼 신상마켓

신상마켓은 옷가게 주인들에게 더 많은 선택을 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도매점이 2만 개 있다고 하지만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옷을 고르는 데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평소 알고 지내던 몇몇 업체들과 거래하는 게 일반적이었다. ‘옷가게를 하는 사람들이 더 편하게 좋은 옷을 팔 수 있게 하자’는 것을 모토로 내건 신상마켓 설립 멤버들은 온라인으로 이들을 끌어들였다. 한 명 한 명 만나며 도매상을 설득했다. 2014년 신상마켓에 입점한 도매상은 500곳 정도였다. 지금은 1만7000곳으로 늘었다. 동대문 전체 도매 매장의 80%가량이 들어와 있다.

도매상이 들어오자 소매업체들도 따라왔다. 새벽에 동대문 시장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클릭만으로 하루 1만5000개 이상 나오는 신상을 살펴보고 구매할 수 있게 됐다. 밤낮을 바꿔가며 시장을 돌지 않아도 되는 편리함에 소매 사업자 회원은 20만여 명으로 늘었다. 신상마켓 관계자는 “국내 옷 소매상 가운데 70% 정도가 회원”이라고 말했다. 도매상들도 거래처를 넓히기 위해 발품을 팔지 않게 됐다.

신상마켓은 현재 온라인 쇼핑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하고 있다. 검색 서비스 세분화가 대표적이다. 여성복 남성복 잡화 등 카테고리별로 원하는 제품 특성을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색깔도 블랙부터 민트까지 10여 종 이상 골라서 찾을 수 있다. 신상마켓 관계자는 “원피스 한 벌을 사더라도 도매 매장이 들어가 있는 건물, 색상, 제조국과 가격 범위를 나눠 재검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홍콩·일본 진출 준비

김준호 딜리셔스 대표

김준호 딜리셔스 대표

국내 의류 도·소매업체를 연결해주는 플랫폼 가운데 점유율 1위인 신상마켓은 하루아침에 태어나지 않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김 대표는 대학 4학년 때부터 온라인 여성 의류 쇼핑몰을 운영했다. 이후 IT 개발자로서의 능력을 활용해 여러 사업을 했다. 외식업체 쿠폰북 발행 등 다양한 앱도 개발해 봤다. 일곱 번의 사업은 모두 실패였다. 신상마켓은 여덟 번째 도전이었다. 온라인 여성 의류 쇼핑몰을 운영했던 아내(당시 여자친구)가 ‘패션 시장에 기회가 있다’고 주장한 것이 신상마켓으로 이어졌다.

신상마켓은 국내 의류 도·소매업체 중개 시장이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점점 더 활성화되면서 국내 소규모 의류 사업자들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최근 블로그를 비롯해 인스타그램에서 동대문 옷을 떼다 판매하는 ‘마이크로 판매상’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성장 가능성을 보고 외부 인재들도 하나둘 합류하고 있다. 컨설팅 회사인 베인앤드컴퍼니에서 정창한 전략총괄이사를 스카우트했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기업 티몬에서 물류를 담당하던 이를 물류센터장으로, 카카오에서 일하던 사람도 개발자로 영입했다. 개발팀 소속 인력만 28명이나 된다. 전체 직원의 20%가 넘는다. 신상마켓은 홍콩과 일본 시장 진출도 준비 중이다.

■사입

중간 상인이나 소매상이 도매상으로부터 물건을 사들이는 것. '구입'한다는 의미의 일본어 '시이레(仕入れ)'에서 비롯됐다. '사입 삼촌'은 수수료를 받고 물건 사입을 대신 해주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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