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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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녹스를 기억하시나요. 2003년 유행했던 ‘가짜 석유’입니다. 친환경 연료라고 광고했는데, 알고 보니 유류세를 내지 않는 첨가제였습니다. 유사 석유의 불법 유통은 여전합니다. 이런 가짜 석유를 집중적으로 잡아내는 곳이 한국석유관리원입니다.

석유관리원은 올 들어 더 바빠졌습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와 손잡고 유가보조금 부정수급 단속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죠. 유가보조금은 사업용 화물차와 택시, 버스 등에 지급하는 국가 보조금인데, 한해 2조6000억원의 혈세가 투입됩니다. 보조금 중 연 3000억원 정도는 허위 결제, 카드깡, 외상 결제 등으로 줄줄이 새고 있다는 게 업계 추산이죠.
한국석유관리원 직원들이 최근 경기 화성시의 한 주유소에 들러 유가보조금 부정수급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재길 기자

한국석유관리원 직원들이 최근 경기 화성시의 한 주유소에 들러 유가보조금 부정수급 실태를 조사하고 있다. /조재길 기자

이달 초 석유관리원이 경기 화성시의 주유소들을 점검하는 현장에 동행했습니다. 화성시청 공무원도 함께 했지요. 화성시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주유소가 있고, 화물차 이동이 빈번해 부정수급 적발 건수가 가장 많은 곳입니다.

보조금을 빼돌리거나 가짜 석유를 유통하려는 세력과, 이를 막으려는 단속원 간 머리싸움이 치열했습니다. 의심 업소들이 ‘바지 사장’을 여러 명 내세우는 건 전형적인 수법입니다. 주유소가 화물차주들의 유가보조금카드를 100여 장 확보한 뒤 마음대로 꺼내쓰는 경우도 있다고 합니다.

석유관리원 직원들은 ‘의심 업소’를 미리 선정한 뒤 이 곳을 중점 점검합니다. 전국 주유소가 1만1700여 곳에 달할 정도 많기 때문이죠. 석유관리원은 모든 주유소에서 전산망을 통해 석유수급 정보를 받고 있는데, 이 자료만 잘 들여다봐도 ‘이상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고 합니다.

예컨대 각 주유소의 석유 판매량과 유가보조금 지급액 등을 비교하면 의심스러운 곳이 나온다는 겁니다. 올 상반기만 해도 의심 업소 229곳을 점검했는데 이 중 103곳에서 실제 부정수급 행위를 확인했습니다. 적발률이 45%에 달한다는 얘기입니다.

이날 석유관리원과 화성시청 직원이 방문했던 주유소 중 한 곳은 어찌된 영문인지 영업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확인한 결과 불과 1시간 전까지도 영업했던 흔적이 있더군요. 이 곳은 경유를 L당 1305원에 팔고 있었습니다. 불과 200m 떨어진 같은 브랜드의 ‘셀프 주유소’에선 경유 가격이 1359원이었지요. 직원을 두고 영업하는 '의심 업소' 기름값이 바로 옆 셀프 주유소보다 훨씬 저렴한 겁니다. 현장 단속원은 “이런 곳에선 보조금 횡령 뿐만 아니라 가짜 석유를 팔 가능성이 있어 주시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석유관리원의 현장 직원은 전국적으로 100명 정도 됩니다. 2인1조로 다니면서 주유소 전산망과 실제 결제액을 대조하고, 필요할 경우 폐쇄회로(CC)TV까지 확인합니다. 탱크로리가 덤프트럭 등에 직접 주유하는 불법 현장을 채증하기 위해 드론을 띄우기도 합니다.

단속반원들 사이에선 요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고 합니다. 주 52시간 근로제 때문이죠. 일주일에 3~4일씩 현장을 나가는 경우가 많고, 잠복 근무도 심심치 않게 해야 하는데 새 규제가 걸림돌입니다. 현장 직원은 “2인 1조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불법 현장을 쫓아다녀야 하는데 공공기관으로서 주 52시간제를 어길 수도 없다”며 “궁여지책으로 밤과 낮 잠복 근무조를 따로 편성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두 배의 인력이 필요한 건 둘째 치고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는 게 큰 문제라고 합니다.

정부는 엊그제 연구직 등 일부에 한해 특별연장근로 인가 사유를 확대하는 내용의 보완책을 내놨습니다.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일부 ‘예외’를 빼놓고선 워낙 폭넓게 강제하고 있기 때문이죠. 지금 규제로는 시대 변화에 따라 새 직업군이 생길 때도 똑같은 잣대를 들이댈 수밖에 없습니다. 반면 미국 영국 일본 등 비슷한 제도를 운용하는 국가들은 ‘단체 협약’ 등으로 근무 시간을 유연하게 결정할 수 있지요.

‘노동 우대’를 표방하고 있는 현 정부가 또 하나의 규제를 급하게 도입하면서 의도치 않았던 부작용이 적지 않게 생기고 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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