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경제·금융 전문가들이 가장 위협적인 ‘금융시스템 리스크’ 요인으로 미·중 무역분쟁과 국내 경기둔화를 꼽았다. 빠르게 식어가는 중국 경기가 한국 금융시스템에 타격을 줄 가능성이 있다는 경고음도 커지고 있다. 금융시스템 리스크란 금융 기능이 마비되면서 실물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주는 상황을 뜻한다.
"최대 금융시스템 리스크는 美·中 무역분쟁"
“中 경기둔화” 우려 목소리 커져

한국은행이 9일 국내외 금융회사·연구소·협회·대학 등 79곳에 소속된 92명을 대상으로 한 ‘2019년 하반기 시스템 리스크 서베이 결과’를 발표했다. 이번 조사는 지난달 13~29일 설문조사 방식으로 이뤄졌다.

한은은 국내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평가하기 위해 반 년 주기로 조사를 벌이고 있다. 응답자에게 금융시스템 관련 19대 위험 요인을 제시하고 그 가운데 순위를 매겨 상위 5대 요인을 꼽도록 했다.

응답자들이 선정한 5대 위험 요인을 단순 집계한 결과에선 미·중 무역분쟁(복수 응답률 74%)이 가장 많이 꼽혔다. 국내 경기둔화(52%), 글로벌 경기둔화(40%), 가계부채(40%), 중국 금융·경제 불안(39%)이 그 뒤를 이었다. 응답자별 1순위 위험 요인만 따로 집계한 결과에서도 미·중 무역분쟁을 꼽은 비율(39%)이 가장 높았다. 이어 국내 경기둔화(21%), 글로벌 경기둔화(9%), 기업 실적 둔화(5%) 등의 순이었다.

지난 5월 발표한 상반기 조사와 비교하면 미·중 무역분쟁, 국내 경기둔화, 가계부채는 상위 5대 위험 요인에 그대로 포함됐다. 글로벌 경기둔화와 중국 금융·경제 불안이 이번에 새로 순위권에 진입했다. 내년 중국 경제성장률이 6%를 밑돌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앞으로 1년 안에 금융시스템 리스크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고 대답한 전문가 비율은 13%로 상반기 조사 때(4%)보다 늘어났다. 하지만 ‘리스크 발생 가능성이 낮다’고 응답한 비율도 52%에서 53%로 소폭 올라갔다.

“미·중 합의 불발 대응 준비”

미·중 무역분쟁을 둘러싼 우려의 목소리는 정부에서도 나왔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거시경제 금융회의를 통해 “미국이 중국산 제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면 금융·외환시장 변동성이 한층 커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미 행정부는 오는 15일 중국산 수입품 1560억달러 상당에 관세 15%를 부과하기로 밝힌 상황에서 중국과 무역협상을 하고 있다. 양국이 15일 전에 합의하지 않고 관세가 부과되면 글로벌 증시가 출렁이고 원·달러 환율이 급등(원화가치 하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김 차관은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컨틴전시 플랜(비상계획)에 따라 대응하겠다”며 “환율이 출렁이면 적시에 시장안정조치를 하겠다”고 말했다.

김 차관은 외국인들의 최근 국내 주식 매도세와 관련, “대외 불확실성이 커졌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의 신흥시장지수에서 한국 비중이 줄어든 영향이 겹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의 경제 펀더멘털(기초체력)은 탄탄하다”면서 “경상수지는 상당한 규모의 흑자를 유지하고 있으며 외환보유액은 최근 사상 최대치를 경신했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