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임자 실력 탓하며 후임 거부
기여금 4.2兆 내고도 영향력↓
한국이 2016년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부총재직을 잃은 뒤 대신 받은 국장직 두 자리 중 한 개마저 날리게 됐다. 4조원이 넘는 기여금을 내고도 행정 실책으로 AIIB 내 한국 발언권과 영향력이 줄게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6일 정부에 따르면 지난달 AIIB는 유재훈 전 선임자문역(현 자본시장연구원 고문)이 계약 만료로 사임한 뒤 해당 보직을 없앴다. AIIB가 유 전 자문역의 업무 수행 능력에 불만을 가졌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그는 2016년 AIIB 회계감사국장으로 부임했다가 중간에 선임자문역으로 보직을 바꿨다. 정부 관계자는 “회계감사국장으로 일하려면 회계학 전문성이 필요한데 전공 분야가 아니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며 “AIIB 요청으로 선임자문역으로 이동했으나 이 보직도 유지할 필요가 없다고 AIIB가 판단했다”고 말했다.

AIIB는 후임자를 파견하겠다는 한국 정부 요청도 거절했다. AIIB 측은 “애당초 해당 자리에 적합한 전문가를 보내지 않았다”는 불만을 한국 정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행정고시 26회 출신인 유 전 자문역은 재무부 금융위원회 등을 거친 데다 국제기구 경험이 풍부하지만 회계 분야 경력은 거의 없다.

한국은 AIIB가 첫 출범하던 2016년 기여금으로 4조2000억원(회원국 중 5위)을 부담해 부총재직 5개 중 하나인 최고리스크관리책임자(CRO) 자리에 홍기택 전 산업은행 회장을 파견했다. 하지만 홍 부총재가 취임 2개월 만인 2016년 6월 조선업 구조조정 발언으로 논란에 휩싸인 뒤 돌연 잠적하면서 한국 몫의 CRO 자리가 다른 나라 몫으로 돌아갔다.

한국 정부 요청에 따라 AIIB는 2개월 뒤인 2016년 9월 부총재보다 하위 직급인 국장급 자리를 두 개 제시했다. 유 전 자문역이 AIIB의 재정 집행 계획을 수립하고 회계·재무 보고서를 작성하는 회계감사국장에, 이동익 전 한국투자공사(KIC) 부사장이 민간 자본과 공동 투자 업무를 담당하는 민간투자자문관으로 선임됐다. 이번 사태로 AIIB 내에서 우리 정부를 대표하는 고위직은 한 명만 남게 됐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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