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초 전통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휴 데이비스 슈램스버그 와이너리 회장이 1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미국 최초 전통 방식으로 스파클링 와인을 생산하는 휴 데이비스 슈램스버그 와이너리 회장이 18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한국경제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리처드 닉슨에서 도널드 트럼프까지. 미국 역대 대통령들이 47년 간 세계 정상들을 만날 때마다 빠짐없이 내놓는 술이 있다. 1965년부터 생산된 미국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 ‘슈람스버그’다. ‘슈람스버그 블랑 드 블랑’은 1972년 닉슨 대통령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의 역사적인 베이징 회담에서 ‘평화를 위한 축배’의 주인공이었다. 이후 90회 넘게 세계 정상들의 축배주로 쓰였다.

프랑스 콧대 꺾은 美스파클링의 자존심

베이징 회담은 슈람스버그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 ‘평화의 술’이란 별칭 이외에 ‘나파밸리 스파클링의 재발견’이라는 타이틀이 따라붙었다. 미국 최초이자 최고의 스파클링 와인을 만드는 슈람스버그의 휴 데이비스 회장(54)을 지난달 말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그의 부모인 잭과 제이미 데이비스 부부는 버려져 있던 100년된 와이너리를 사들여 나파밸리의 몸값을 끌어올린 개척자다.

데이비스 회장은 “금주령과 대공황, 세계대전 이후 싸구려 와인이 판 치던 1960년대에 최고 품질과 세상에 없던 스파클링을 만들겠다는 게 부모님의 철학이었다”며 “오래된 유산을 이어가는 게 새로운 도전의 씨앗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삼형제의 막내로 포도밭에서 나고 자란 그는 와인 양조의 명문인 UC데이비스에서 박사 학위를 따는 등 20대 때부터 부모님의 길을 따랐다.

슈람스버그는 혁신의 산물이다. 1960년대 당시 나파밸리에서 술은 만드는 와이너리는 20개가 채 안됐다. 스파클링을 만드는 곳은 아예 없었다. 그는 “샴페인에 몰두했던 아버지는 1862년 독일 이민자 제이콥 슈람 부부가 만들었다 버려뒀던 나파밸리 북부 와이너리를 샀다”고 말했다.

그의 부모는 프랑스 샹파뉴 지역의 와인 주조 방식을 그대로 따랐다. 프랑스의 법 때문에 ‘샴페인’이라고 말할 수 없지만 주조 과정은 샴페인과 똑같다. 최고의 샤도네이 포도를 100% 수작업으로 수확, 선별해 와인을 만들고 15개월 이상 발효했다. 당대 최고의 와인메이커였던 앙드레 챌리채프와 그의 아들 드미트리 챌리채프, 로버트 몬다비로부터 컨설팅을 받았고 와인 관련 논문과 유럽의 서적 등을 통해 독학했다.
닉슨서 오바마까지…50년간 美대통령 만찬주로 쓰인 슈람스버그의 비밀
포도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공수…300종 양조

나파밸리에서 스파클링 와인을 만들지 못했던 건 기후 탓이 컸다. 산미가 중요한 스파클링 와인은 날씨가 너무 더운 나파밸리에서 만들기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다. 슈람스버그는 매년 땅(포도밭)을 찾는 데 모든 에너지를 쓴다. 데이비스 회장은 “나파밸리와 소노마, 마린, 앤더슨밸리 등 내륙보다 시원한 캘리포니아 북쪽 해안가 4개 지역 121개 이상 블록에서 포도를 수확한다”며 “매년 5~10%의 포도밭을 새로 개척한다”고 했다.

슈람스버그는 캘리포니아 전역에서 수확한 포도로 약 300종의 베이스 와인을 만들어 정교하게 블렌딩한다. 다른 스파클링 와인보다 2~3배 더 긴 2년의 숙성 기간을 거친다. 10년 이상 오크통에서 숙성해 복잡한 맛을 자랑하는 ‘제이슈람’등의 프리미엄 라인도 있다.
슈람스버그의 대표 와인은 백포도인 샤도네이 100%로 만든 ‘블랑드블랑’이다. 적포도인 피노누아 81%에 샤도네이 19%를 블렌딩한 ‘블랑드누아’와 피노누아 64%에 샤도네이 36%를 섞은 ‘브륏 로제’도 있다.

데이비스 회장은 “블랑드블랑이 경쾌하고 여성스러운 와인이라면 블랑드누아는 묵직한 바디감과 남성스러운 캐릭터가 있다”며 “육류와는 블랑드누아를, 생선과는 블랑드블랑을 추천한다”고 했다.

“오래된 방식 잇는 것도 큰 혁신”

베이징 회담 직후 나파밸리는 프랑스 유명 샴페인 하우스들의 격전지가 됐다. 모엣샹동이 슈람스버그에 인수 제안을 해오기도 했다. 투자를 거절하자 모엣샹동, 멈 등 프랑스 유명 샴페인 하우스는 이듬해부터 나파밸리에 포도밭을 직접 사들여 와인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가 생각하는 혁신이란 무엇일까. 데이비스 회장은 “혁신이란 오래된 방식을 이어가는 것, 그 위에 자신만의 새로운 방식을 결합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슈람스버그는 1800년대 지어진 나파밸리 최초의 와인 저장동굴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데이비스가가 와이너리를 사들였지만 100년 전의 창업자 이름을 그대로 와인 이름에 쓴 것도 ‘최초의 도전자들에 대한 경의’ 때문이었다.

휴 데이비스 회장은 ‘데이비스’라는 이름으로 첫 카베르네 소비뇽을 만들며 자신만의 도전을 시작했다. 이후 피노누아 등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그는 나파밸리의 2세, 3세 와인메이커들이 포도농장 운영 등이 힘들어 대물림을 포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안타깝다고 했다.
대형 명품 회사들이 와이너리를 잇따라 인수하면서 각각의 와이너리가 가진 전통과 개성이 사라질 위기라는 것. 세 명의 아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한다. “아버지의 어깨에 올라타라. 그러면 더 멀리 볼 수 있단다.”

김보라 기자/사진=김범준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