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안전위원회가 월성 원전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또 다시 보류했다. 지난달 11일 의결 보류 후 한 달여 만에 재상정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엄재식 원안위 위원장은 22일 제111회 회의를 열어 월성1호기를 영구정지하는 내용의 운영변경허가안을 논의한 뒤 “월성1호기 영구정지를 놓고 여러 의견이 있었고 정리가 완벽하게 되지 않아 추후 재상정하겠다”고 말했다. 엄 위원장을 비롯한 상임위원 2명과 비상임위원 5명 등 총 7명이 논의한 결과다. 월성1호기 수명연장 무효소송의 변호사를 맡은 이력이 있는 김호철 비상임위원은 회피신청을 통해 이번 논의에 불참했다.

경북 경주시 양남면에 있는 월성1호기는 1983년 상업 가동을 시작한 국내 최초 가압중수로형 원전이다. 30년 설계수명이 완료되자 정부는 이를 2022년 11월까지 10년간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월성1호기를 조기 폐쇄하고 수명을 연장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난해 6월 한국수력원자력은 이사회를 통해 정부 결정을 따르기로 확정했다. 수명 연장을 위해 이미 투입된 안전보강 비용은 7235억원이다.

이날 회의에서는 약 2시간에 걸쳐 월성 1호기 영구정지 여부를 놓고 위원들 간 공방이 벌어졌다. 이병령 비상임위원(전 한국형원자로 개발책임자, 한국원자력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를 봐야 한다’고 의결을 보류했는데 그때와 상황이 달라진 것이 아무 것도 없다”며 “추후 감사원이 경제성 없다는 한수원 결정을 번복해버리면 어떻게 할 것이냐”고 지적했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 결정을 놓고 논란이 이어지자 국회는 지난 9월 30일 여야 합의로 월성1호기 경제성 과소평가 의혹에 대한 감사를 요구했다. 원안위는 지난달 11일 월성1호기 조기 폐쇄를 안건으로 올렸다가 감사원 감사 결과를 살펴봐야 한다는 일부 위원의 반대로 의결을 보류한 바 있다.

반면 진상현 비상임위원(경북대 행정학부 교수, 전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이사)는 “원안위는 안전성 측면에서 원전을 들여다 보는 곳”이라며 “경제성이나 정권 교체 가능성을 감안해 결정하면 오히려 저희가 감사 청구 대상이 될 수도 있다”고 반박했다.

원안위가 국회 감사 청구 직후 월성 1호기 영구정지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것을 두고 원안위의 중립성에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원안위는 올해 2월 한수원의 심사 요청 이후 8개월 가까이 해당 안건을 상정하지 않았다. 이 위원은 “원자력계에 40년간 몸담고 한국형원자로 개발책임자를 맡으면서 역설적으로 원자력안전을 위한 규제기관의 필요성을 절감했다”며 “유감스럽게도 긴장 관계를 유지해야 할 한수원과 원안위가 최근 유착관계를 형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원안위는 사전에 정재훈 한수원 사장의 이번 회의 참석을 요청했으나 해외 출장을 이유로 전휘수 기술총괄부사장이 대신 참석했다. 엄 위원장은 “책임자 의견을 듣기 위해 한수원 사장의 출석을 공식 요청했는데 불참해 원안위 위원장으로서 유감”이라고 말했다. 전 부사장은 “월성 1호기 영구정지 결정에 대한 한수원 측 입장엔 변함이 없다”면서도 “월성 1호기는 정부의 8차 전력수급 기본계획에서 빠지면서 불확실성이 커졌다고 판단했고, 한수원이 공기업이기 때문에 정부 정책을 따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원안위가 월성 1호기 의결을 보류하기로 결정하자 방청석에서는 “재상정하겠다는 이유가 뭐냐” “왜 의결을 보류하냐” “위원 사퇴하라” 등 고성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원안위 관계자는 “재상정 시기는 위원들 일정을 고려해 추후 결정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