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부담이 우리(공기업)한테 돌아오겠네요.”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달 25일 농업 부문에서 개발도상국 특혜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하며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조속히 확충될 수 있도록 기업 출연을 활성화하겠다”고 하자 한 공기업 임원이 보인 반응이다. 이 기금은 17일 현재 594억원이 모였는데, 이 중 91.0%인 539억9000만원을 공기업이 냈다. 대기업은 7.5%인 44억6000만원, 중견기업은 0.3%인 2억원을 각각 출연했다. 중소기업이 낸 돈은 0원이다.

기금 걷고, 사업 떠넘기고…'공기업 주머니'만 터는 정부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은 2015년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국회 비준 때 여야 합의로 조성됐다. FTA로 피해가 예상되는 농가를 지원하기 위해 2017년부터 매년 1000억원을 모아 10년간 총 1조원을 조성할 계획이었다. 올해 말까지 3000억원을 조성해야 하지만 목표액의 19.8%밖에 모이지 않았다.

이 기금을 만든 기본 취지는 FTA로 수혜를 보는 기업이 이익의 일부를 농민들과 나눠 갖자는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수출을 많이 하는 민간기업이 주로 기금을 내야 정상이다.

민간기업의 기금 출연이 활성화되지 않은 것은 2017년 터진 ‘최순실 사태’의 여파다. 최서원(개명전 최순실) 씨가 운영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받는 미르재단에 대기업들이 출연한 게 문제가 돼 총수들이 옥살이까지 하자 민간기업들은 기부와 관련한 내부 규정을 강화했다.

민간기업이 돈을 내지 않자 부담은 고스란히 공기업 몫이 됐다. 정부가 개도국 특혜를 주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한 뒤 이날까지 22억7000만원의 농어촌상생협력기금이 추가로 걷혔다. 이 중 89.0%인 20억2000만원을 공기업이 냈다. 대기업과 중견기업 모금액은 거의 늘지 않았다. 한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탈(脫)원전 영향 등으로 실적이 계속 나빠지는데 정부 정책에 호응하기 위해 내야 하는 돈은 갈수록 늘고 있다”고 했다.

이달 6일부터 내년 1월 15일까지 시행하는 ‘으뜸효율 가전 환급 제도’도 “정부가 공기업 돈으로 생색을 낸다”고 비판받는 대표적 정책이다. 고효율 가전제품을 사면 구입가의 10%를 환급해주는 이 사업의 재원 300억원 중 122억원은 한국전력이 내야 한다. 나머지 178억원 역시 정부 예산이 아니라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으로 메운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