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이 지난 7월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이 지난 7월 자카르타 대통령궁에서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만나 악수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현대자동차가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 인근 델타마스공단에 연산 20만 대 규모의 완성차공장을 짓기로 했다. 동남아시아 지역 첫 생산기지다. 공장 건설에는 약 1조원이 투입된다. 내년 착공에 들어가는 이 공장은 빠르게 성장하는 인도네시아 현지 시장을 공략하고, 동남아와 호주 수출시장을 뚫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맡게 된다. 중국에서 고전하고 있는 현대차그룹에 새 돌파구가 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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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이달 말 인도네시아 정부와 이 같은 내용을 담은 투자협약을 맺을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달 25일부터 사흘간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한하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직접 투자협약에 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는 이달 말 투자협약을 맺은 뒤 구체적인 공장 규모와 착공 시기, 투자금액 등을 공개할 방침이다.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께 인도네시아 공장 착공에 들어갈 예정이다. 약 1조원을 들여 2022년까지 연산 20만 대 규모의 완성차공장을 짓는다는 목표다. 시장 상황에 따라 추가 투자를 통해 연산 30만 대 수준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생산 차종은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다목적 차량(MPV), 세단 등이다. 하이브리드카(휘발유·전기 혼용차)와 전기차 등을 추가 생산하는 방안도 추진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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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7월 인도네시아를 찾았다. 조코 위도도(조코위) 인도네시아 대통령과 만나 현지 시장 진출 여부를 타진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정 수석부회장은 “인도네시아는 매우 도전적인 시장”이라며 “시장 진출을 위한 해답을 찾기 쉽지 않은 곳”이라고 말했다. 도요타 등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90% 이상 선점한 시장을 뚫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조코위 대통령은 “필요한 지원을 다하겠다. 나도 직접 챙기겠다”고 거들었다. 이때만 해도 현대차그룹은 “아직 확정된 게 없다”고 조심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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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핵심 거점으로 육성

현대차는 장고 끝에 최근 ‘결단’을 내렸다. 중국과 인도 시장에서의 판매 부진을 딛고 새롭게 개척할 ‘신(新)시장’으로 인도네시아를 낙점했다. 인구(2억7000만 명)가 많아 자동차 시장 성장 가능성이 큰 데다 태국, 말레이시아 등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와 호주 등을 목표로 한 수출 거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달리 ‘정치적 리스크’가 작다는 점도 투자 배경으로 꼽힌다. 현대차는 이달 말 인도네시아 정부와 투자협약을 맺기로 했다. 업계 관계자는 “인도네시아의 경우 부지를 공짜로 주는 게 아니라 현대차가 직접 매입해야 한다”며 “부지 매입 대금과 인센티브 조건 등을 놓고 막판 조율 중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인도네시아에 들어설 새 공장 부지는 수도 자카르타에서 동쪽으로 50㎞가량 떨어진 델타마스공단에 있다. 일본 자동차회사 스즈키와 미쓰비시 공장 등이 들어서 있는 곳이다. 현대차가 2017년 인도네시아 AG그룹과 합작 계약을 맺고 설립한 상용차 조립공장과도 가깝다.

현지에 설립할 완성차공장 규모는 연산 20만 대다. 향후 연산 30만 대까지 늘릴 방침이다. 이를 위해 약 1조원을 투입한다. 생산 차종은 동남아 현지에서 통할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다목적차량(MPV), 세단 등이다. 하이브리드카(휘발유·전기 혼용차)와 전기차 등을 추가 생산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현대차는 동남아 최대 자동차 시장인 인도네시아의 성장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시장 규모가 매년 쪼그라드는 추세 속에서도 성장을 거듭하고 있어서다. 인도네시아에선 지난해 115만1291대의 차량(상용차 포함)이 팔렸다. 전년보다 6.8% 증가했다. 올해 판매량은 120만 대를 넘어설 것으로 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의 자동차 시장도 꾸준히 커지고 있다. 인도네시아 생산기지는 현지뿐만 아니라 태국 등 다른 동남아 국가와 호주 등 신시장을 개척하기 위한 전진기지 역할도 할 것으로 전망된다.

‘넘어야 할 산’도 있다. 도요타 등 일본 브랜드다. 도요타, 혼다 등 일본 완성차업체는 인도네시아 자동차 시장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영역을 확장하려는 현대차와의 정면 대결이 불가피하다. 현대차는 다른 해외 시장과 차별화된 마케팅 전략을 앞세울 방침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현지 젊은 고객층을 중심으로 한국 차의 경쟁력을 알리는 데 주력할 것”이라며 “1% 미만인 현지 시장 점유율을 20~25%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아프리카·중동 진출도 검토

현대차는 인도네시아와 함께 베트남 시장 공략도 확대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현대차는 지난 1월 베트남 탄콩그룹과 합작법인 설립을 위한 업무협약(MOU)을 맺었다. 탄콩그룹은 2009년부터 베트남 현지의 현대차 판매를 대행하고 있는 기업이다. 현대차는 지난해 베트남 시장에서 5만5924대를 팔았다. 전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규모다. 현지 시장 점유율은 작년 말 기준 19.4%로 일본 도요타(24%)에 이어 2위다.

현대차는 반제품조립(CKD) 방식으로 소형차 i10을 생산하고 있다. 내년 하반기 베트남 2공장을 설립해 연간 생산 규모를 최대 10만 대로 확대할 계획이다.

현대차가 중국과 인도에 이어 인도네시아에 완성차공장을 짓고 베트남 생산량도 늘리기로 하면서 ‘아시아 생산벨트’가 구축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중국과 인도에 치우쳤던 생산·판매 전략을 동남아로 확장해 정체된 글로벌 판매량을 끌어올릴 기회로 삼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현대차는 아시아 생산벨트 구축을 마무리하면 아프리카와 중동으로 눈을 돌릴 방침이다. 중장기적으로 아프리카 중부 나이지리아 등지에 공장을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장창민/도병욱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