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汎)현대가(家)가 육(현대자동차)·해(현대중공업)·공(아시아나항공)을 모두 품었다.”

HDC현대산업개발·미래에셋 컨소시엄이 지난 12일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위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것을 두고 경영계에선 이 같은 반응이 나왔다.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의 장남인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차그룹과 정 명예회장의 여섯째 아들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이 대주주인 현대중공업그룹은 각각 국내 1위 자동차·조선 회사다. 여기에 창업주의 조카인 정몽규 HDC현대산업개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를 통해 범현대가의 사업 영역을 하늘길로 넓혔다는 분석이다.
汎현대家 '육·해·공' 모두 품었다
우군 자처한 범현대가

13일 경영계에 따르면 범현대가엔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은 모임이 하나 있다. ‘몽(夢)’자 돌림 모임이다.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를 비롯해 인영·순영·세영·신영·상영 등 ‘영(永)’자 항렬인 현대가 1세대 아들들의 모임이다. 몽자 항렬은 모두 19명. 세 명은 세상을 떠났다. 현재 16명이 남아 있다. 이 중 현직 기업 총수로 활동하고 있는 정몽윤 현대해상화재보험 회장과 정몽원 한라그룹 회장, 정몽진 KCC그룹 회장 등 10여 명이 석 달에 한 번 정기적으로 모이고 있다.

좌장은 따로 없다. 모임이 있는 날 식사비를 내는 사람이 ‘호스트’를 맡는다. 몽자 항렬 모임은 단순한 친목 도모 행사에 그치지 않는다. 굵직한 기업을 이끄는 기업인이 모이는 자리다 보니 각종 경영 현황과 경제 관련 정보를 공유한다는 후문이다. 이번 아시아나항공 인수전 때도 그랬다. 정몽규 회장이 아시아나항공 인수와 관련한 고민을 털어놓자 사촌들은 적지 않은 조언을 쏟아냈다고 한다. 이들은 인수전 막판에 정몽규 회장에게 ‘아시아나항공의 여객 및 물류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이용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범현대가 기업인들이 서로 든든한 ‘우군’ 역할을 자처하면서 인수합병(M&A) 시장에서 힘을 발휘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대중공업은 지난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 본계약을 체결했다. KCC그룹은 지난 5월 미국의 실리콘 제조업체 모멘티브 퍼포먼스 머티리얼즈 인수를 마무리했다. 현대백화점그룹도 특허권 취득을 전제로 서울 동대문 두산타워 면세점을 인수하기로 하는 등 공격적인 M&A에 나서고 있다.

항공기·유류·관광 시너지 기대

HDC현대산업개발이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기로 하면서 범현대가 기업들과의 시너지 효과가 기대된다. 제조업을 넘어 모빌리티 서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추진 중인 현대자동차가 대표적이다. 현대차는 개인용 소형 항공기 등 ‘플라잉카’를 개발 중이다. 수백 명을 실어나르는 항공기 사업을 하는 아시아나항공과 개인용 항공기를 제작·서비스하는 현대차가 어떤 형태로든 제휴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정유사인 현대오일뱅크를 계열사로 둔 현대중공업은 HDC현대산업개발의 아시아나항공 인수에 따른 효과를 볼 것으로 전망된다. 항공유 공급 물량이 늘어날 것이란 관측 때문이다. 현대오일뱅크는 그동안 아시아나항공의 전체 항공유 가운데 25%가량을 공급해왔다. 지난해 기준 아시아나항공의 연간 유류비는 1조8000억원에 달했다. 앞으로 현대오일뱅크의 항공유 공급 비중이 커질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금강산 관광 등 대북사업을 하고 있는 현대아산과의 협력도 기대된다. 북한 관광길이 열리면 항공 수요가 커질 전망이어서다. 북한은 도로·철도망이 열악한 탓에 주요 관광지에 항공기를 띄울 가능성이 크다. 제조업체인 KCC, 한라 등과는 물류 분야 협력이 기대된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공시대상기업 집단(자산 5조원 이상)에 들어간 범현대가 기업만 현대차와 현대중공업, 현대백화점, HDC, KCC, 한라 등 6개”라며 “이들 기업이 출장 등 비즈니스 수요만 아시아나항공에 몰아줘도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보형/장창민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