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D기 44년 만에 역사속으로

1975년 첫 상륙 '혁신적 기계'
국내 5대 은행 CD기 멸종
그 시절 우리가 현금 뽑던 CD기…"이제 은퇴합니다"

“현금이 없네. CD기에서 돈 좀 뽑아올게.”

현금을 인출하는 기계의 대명사로 꼽히던 은행 CD기가 올 들어 완전히 자취를 감췄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동네 구석구석에서 쉽게 볼 수 있었지만 이젠 과거의 유물이 됐다. 1975년 8월 국내에 처음 도입된 지 44년 만이다. 현금 인출 외에도 다양한 기능을 더한 현금자동입출금기(ATM)가 나오면서 입지가 좁아졌고, 모바일 뱅킹이 활성화되면서 그 존재감은 더욱 쪼그라들었다. 현금 대신 신용카드나 페이(간편결제) 사용이 많아진 것도 CD기가 ‘퇴장’하는 데 한몫했다.

그 많던 CD기 어디로 갔나

12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를 기점으로 신한·국민·KEB하나·우리·농협 등 국내 5대 은행이 운영하는 CD기는 모두 사라진 것으로 조사됐다. 신한은행이 유일하게 공항 등 일부 지역에 CD기 13대를 운영하고 있지만, 이 기기는 환전 전용이다. 통장이나 카드로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CD기는 없다. 금융감독원이 관련 집계를 시작한 2003년에는 시중은행이 운영하는 CD기가 1만15대에 달했다.

CD기는 현금 인출, 계좌 이체, 잔액조회만 할 수 있는 기계다. 현금 및 수표 입금, 공과금 납부 등 다양한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는 ATM에 비해 기능이 떨어진다. 가장 마지막까지 CD기를 운영하던 곳은 우리은행이다. 우리은행은 2017년 서울 개롱역과 서울대에 있던 CD기를 철수한 데 이어 지난해 10월 안산외국인센터에 놔뒀던 마지막 CD기를 없앴다. CD기가 있던 자리에는 ATM을 새로 설치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금 출금과 이체만 가능한 CD기는 쓸모가 없어졌다”고 말했다. 농협은행은 테스트용으로 본사에 두고 있던 CD기마저 지난 1월 처분했다.
그 시절 우리가 현금 뽑던 CD기…"이제 은퇴합니다"

ATM에 치이고 간편결제에 밀리고

한때 CD기는 은행 창구를 찾아가지 않고도 현금을 뽑아 쓸 수 있는 ‘혁신적인 기계’로 통했다. 국내에 등장한 것은 1975년 8월. 당시 국책은행이던 외환은행이 미국 NCR에서 CD기를 처음 들여왔다. 다른 은행도 너도나도 도입하면서 빠르게 확산됐다. 1978년엔 국내에서 CD기를 만드는 업체도 생겨났다.

CD기의 독주가 멈춘 것은 1984년 조흥은행이 ATM을 도입하면서다. 외관은 비슷하지만 CD기보다 훨씬 다양한 업무를 볼 수 있는 ATM으로 갈아타는 은행이 하나둘 늘었다. 국민은행이 가장 앞장서서 CD기를 ATM으로 교체했다. 국민은행은 2003년 말 1253대의 CD기를 보유했다. 차츰 그 숫자를 줄여가다 2010년 마지막 CD기를 철수했다. 2015년 9월에는 신한은행이, 2016년 6월에는 KEB하나은행이 CD기를 모두 없앴다.

현금 거래가 줄어든 것도 CD기가 몰락한 배경 중 하나다. 2000년 신용카드 사용금액이 소득공제 대상에 포함되면서 카드 사용이 가파르게 늘었다. 2015년엔 ‘삼성페이’ 등 간편결제 서비스가 나왔다. 현금을 꺼낼 일이 적어지면서 현금 인출 기능만 있는 CD기의 쓸모도 줄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ATM으로 단순 업무의 상당수를 해결할 수 있다”며 “CD기는 입금 기능이 없어서 직원이 수시로 현금을 넣어줘야 하는 등 불편이 많았다”고 말했다.

모바일뱅킹 시대, ATM도 줄어

ATM은 꾸준한 기능 개선을 통해 생명력을 이어왔다. 요즘은 통장 없이 홍채나 지문을 인식해 이용하는 ‘스마트 키오스크’ 시스템을 장착한 ATM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기계에 딸린 화면을 통해 직원과 실시간 화상 상담을 하는 기능도 갖췄다.

이런 ATM마저도 모바일 뱅킹이 활성화되면서 입지가 예전만 못하다. 5대 은행의 ATM은 2015년 7024대에서 지난해 6222대로 매년 줄었다. 은행들은 굳이 ATM을 많이 설치하지 않으려는 분위기다. ATM을 통한 수수료 수입이 줄어드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축의금까지 모바일 뱅킹으로 ‘쏴주는’ 시대가 되면서 ATM을 이용하는 고객도 많지 않다”며 “ATM도 수년 내 사라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정지은 기자 je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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