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대량 실업 위기에 처한 두산중공업 근로자들은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일자리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정부의 탈원전 정책으로 대량 실업 위기에 처한 두산중공업 근로자들은 지난 7월 정부세종청사 산업통상자원부 앞에서 일자리 대책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연합뉴스

정부가 어제 배포한 탈원전 정책 관련 보도설명자료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습니다. “원전 감축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황”이라고 강조했기 때문이죠.

산업통상자원부는 같은 자료에서 “한전 적자는 에너지전환 정책으로 인한 것이 아니다”고 설명한 뒤 “국제유가 상승 및 원전 이용률 변동 등에 따른 것”이라고 명시했습니다. 원전 이용률 하락이 한전 적자에 영향을 미친 원인 중 하나이지만 에너지전환 정책의 결과는 아니라는 겁니다. 현 정부가 대폭 강화해온 원전의 안전점검 기준들이 탈원전 정책과 관련이 없다는 얘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원전 전문가들은 정부의 ‘원전 감축을 아직 시작도 안 했다’는 설명에 대해 대부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수 년 전 약 7000억원의 안전 보강 비용까지 투입한 월성 1호기를 작년 조기폐쇄했기 때문이죠. 가동한 지 36년 만이었습니다. 미국에선 안전 보강 및 설계 변경을 통해 원전을 최소 60~80년 동안 운영하는 게 일반적이지요.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월성 1호기를 조기폐쇄했고 신한울 3·4호기 건설까지 중도에 중단시킨 상황에서 원전 감축을 시작하지 않았다는 주장은 팩트 자체가 틀린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현 정부는 또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천지·대진 등 신규 원전 4기 백지화 등을 단행했지요. 완공 전 단계였던 신고리 5·6호기까지 해체하려다 여론 반대에 부딪혀 뜻을 접기도 했습니다. 익명을 요구한 다른 교수는 “정부가 사실 관계까지 틀린 정보를 전달할 정도로 ‘원전 노이로제’에 걸린 것 아니냐”고 했습니다.

산업부는 “진의가 잘못 전달됐다”는 입장입니다. 산업부 관계자는 “원전 감축을 아직 시작하지 않았다는 건 원전의 ‘설비용량’이 줄지 않았다는 의미”라고 말했습니다. 월성 1호기 조기폐쇄에도 불구하고 신고리 4호기가 지난 8월 가동하기 시작한 만큼 설비용량은 더 증가했다는 겁니다. 다만 그는 “일부 표현은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고 인정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임기가 반환점을 돈 가운데, 정부와 전력업계 사이에서도 균열 조짐이 보입니다. 김종갑 한국전력공사 사장과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의 발언 수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죠. 김 사장은 지난 7일 기자간담회에서 “현 정부의 과도한 정책비용 때문에 한전 적자가 심화하고 있다”며 “원전을 더 돌리면 이익을 더 낼 수 있다”고 정부를 겨냥했습니다. 지금과 같은 재무구조 악화가 계속되면 결국 국민 부담(전기요금)을 높일 수밖에 없다는 ‘경고’도 보냈지요.

정 사장 역시 6일 경주에서 열린 동아시아 원자력포럼에서 “원전과 신재생에너지가 공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는 “에너지전환 시대엔 원자력이 안정적인 기저전원이 돼야 한다”며 원전의 중요성을 강조했지요. 정 사장은 국내 유일의 원전 건설·운영업체 최고경영자(CEO)이지만 그동안 ‘원전’ 대신 신재생에너지 확대에 공을 들여왔다는 점에서 미묘한 변화가 엿보입니다.

김 사장(행정고시 17회)과 정 사장(26회)은 전직 관료로, 과거 산업부에서 근무했습니다. 성윤모 산업부 장관(32회)보다 한참 선배이지요. 문 정부 후반기엔 탈원전 정책에 대한 이해 관계자들 간 간극이 커지면서 갈등이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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