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직장인 A씨는 퇴직연금 계좌를 확인하다가 깜짝 놀랐다. 퇴직연금의 30%를 투자하고 있는 국고채 펀드(NH-Amundi 국채10년 인덱스) 수익률이 몇 달 만에 마이너스로 돌아섰기 때문이다. 불과 3개월 전만 해도 누적수익률이 2%였는데 최근 -0.46%로 떨어졌다.

대표적 시장금리 지표인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지난 8월부터 오름세를 타면서 채권형펀드 투자자들이 울상을 짓고 있다. 한국은행이 지난 7월과 10월 두 차례 기준금리를 내렸지만 최근 들어 시장금리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어서다. 금리가 뛰는 원인 가운데 하나로는 외국인 투자자들의 국고채 매도가 꼽힌다. 내년도 확장재정을 예고한 정부 방침에 따라 앞으로 국채 발행이 늘어날 것으로 보고 국고채 가격 하락(국고채 금리 상승)을 예상한 외국인이 미리 채권을 팔고 있다는 평가다. 일각에서는 정부 재정확대가 시장금리 상승을 불러와 민간의 소비와 투자를 위축시키는 ‘구축효과’가 벌써부터 나타난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韓銀 기준금리 내렸는데도…시장금리 급등 왜?
외국인, 국채선물 ‘폭풍 매도’

28일 서울채권시장에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날보다 0.088%포인트 오른 연 1.523%에 마감했다.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올 들어 내리막길을 걸었고 지난 8월 19일에는 사상 최저인 연 1.093%까지 떨어졌다. 하지만 이후 오름세를 보이며 연 1.5%대를 회복했다. 회사채와 금융채 금리도 뛰고 있다. 이날 AA-등급 회사채 평균 금리는 연 1.998%로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린 지난 16일(연 1.827%)에 비해 0.171%포인트 올랐다. 시중은행이 주택담보대출을 결정할 때 기준금리로 삼는 금융채 5년물 금리도 25일 연 1.741%로 이달 16일(연 1.594%)과 비교해 0.147%포인트 상승했다. 한은이 올해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인 연 1.25%로 내렸다는 점을 고려하면 시장금리의 이례적 오름세다.

이처럼 시장금리가 뛰는 것은 외국인의 매도 공세 영향이다. 올 들어 국채를 순매수해온 외국인들이 8월 이후 순매도로 전환했다. 8월부터 이달 25일까지 3년 만기 국채 선물 10조21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8월과 9월에 각각 2조7152억원어치, 3조6045억원어치를 팔아치웠다. 이달(1~25일)에는 3조6824억원어치를 순매도했다. 국내 국채시장에서 ‘큰손’으로 통하는 미국계 자산운용사 프랭클린템플턴도 매도 행렬에 가세했다. 템플턴이 보유한 한국 원화 표시 채권 규모는 2분기 말 15억3000만달러(약 1조7890억원)에서 3분기 말 13억3000만달러(약 1조5550억원)로 줄었다.

“국채 순매도, 확장재정 효과”

외국인이 채권시장에서 발을 빼는 것은 채권 금리가 상승(채권값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른 것으로 파악된다. 이미선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내년과 내년 이후까지 이어질 한국 정부의 확장재정 정책과 이에 따른 채권 공급 증가에 주목한 외국인이 장기금리 상승에 베팅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예산안을 올해보다 9.3%(43조9000억원) 늘린 513조5000억원 규모로 편성했다. 재정 실탄 마련을 위한 적자 국채 발행과 국채 금리 상승 가능성을 내다보고 외국인들이 미리 국채를 처분했다는 것이다. 외국인이 내년 예산안이 발표된 지난 8월 이후 국채를 매도하기 시작했다는 점도 이 같은 분석을 뒷받침한다.

확장재정 전망에 따라 시장금리가 오르자 구축효과가 본격화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힘을 얻고 있다. 구축효과는 정부가 예산을 조달하기 위해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동시에 시장금리를 밀어 올리면서 나타난다.

한은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 기대감이 약화된 것도 채권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 한은 금융통화위원회가 16일 기준금리를 연 1.25%로 내렸지만 이일형 금통위원과 임지원 금통위원이 인하에 반대하는 ‘소수 의견’을 냈다. 예상보다 소수의견이 많이 나오면서 금통위원들의 성향이 생각보다 ‘매파적’(통화긴축 선호)이라는 평가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다.

내년 예대율 규제를 앞두고 시중 은행들이 ‘커버드본드(우량자산 담보 채권)’를 2조~3조원어치 추가 발행할 것이라는 전망도 시장금리 상승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채권 공급물량이 내년에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가 채권금리를 밀어 올렸다는 평가다.

■ 구축효과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재정 지출을 늘릴 때 기업 투자와 가계 소비 위축을 불러오는 것을 말한다.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확충하기 위해 국채 발행을 늘리면 금리가 상승해 민간 투자·소비 활동이 억제된다.

김익환/이호기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