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이스타항공 매물로 나왔다…'이륙' 12년 만에 'NO 재팬' 유탄
저비용항공사(LCC) 이스타항공이 매물로 나왔다. ‘노(No) 재팬’ 운동과 환율 상승, 경기 악화 등이 겹쳐 실적이 크게 악화된 데다 전망도 좋지 않아 대주주가 매각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하는 신호탄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단독] 이스타항공 매물로 나왔다…'이륙' 12년 만에 'NO 재팬' 유탄
17일 항공 및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이스타항공은 새 주인을 찾기 위해 국내 대기업과 사모펀드(PEF) 등을 접촉 중이다. 이스타항공 최대주주인 이스타홀딩스가 보유한 지분 39.6%를 960억원에 매물로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스타항공과 최근 접촉한 한 대기업 관계자는 “한 달 전부터 이스타항공과 대리인이 대기업을 위주로 인수제안서를 보내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스타는 대기업과 사모펀드가 1000억원씩 2000억원의 유상증자에 참여해 지분 80%를 가져가는 조건도 매각 방안 중 하나로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2007년 설립된 이스타항공은 여객기 20대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 홍콩 대만 동남아시아 등 중단거리 노선 26개를 운항 중이다. 2016년까지 자본잠식 상태였다가 환율 하락과 해외여행 붐을 타고 2016~2018년 흑자를 냈지만, 올 들어 실적이 다시 악화됐다. 지난해 말 두 대를 도입한 보잉 737맥스 기종이 두 차례의 추락사고 여파로 운항이 금지된 데다 주요 수입원인 일본 여행객이 급감하면서 타격을 입었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비율은 486%에 달한다.

'실적 난기류'에 흔들리는 항공업계…'빅2'마저 무급휴직·매각 뒤숭숭

“가뜩이나 좁은 시장에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어 ‘시계제로’ 상태입니다.”

국내 저비용항공사(LCC)의 한 대표는 17일 “증자 등을 통해 새 비행기를 들여올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를 매각할 수밖에 없다”며 이같이 하소연했다. 국내 6개 LCC는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한정된 노선을 두고 ‘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여기에 경기 침체와 환율 상승, 일본 여행객 급감이라는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 사면초가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다. 실적 및 재무상태 악화를 더 이상 버티지 못한 이스타항공이 매물로 등장하면서 국내 항공업계의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버티기 힘들자 매각 시도”

이스타항공의 재무구조는 올 들어 크게 악화됐다. 2016년 자본잠식 상태였던 이 회사는 해외여행 붐과 환율 하락 덕분에 지난해까지 소규모 흑자를 이어갔다. 하지만 올 들어 환율 상승과 경기 침체, ‘노(NO) 재팬’ 운동까지 더해지며 적자로 전환한 것으로 알려졌다. 위기감이 커지자 최종구 이스타항공 사장은 지난 16일 “최근 대내외 항공 시장 여건 악화로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비상 경영을 선포하고 위기 극복 경영 체제로 전환한다”고 밝혔다.

이스타항공의 자본금은 지난해 말 기준 252억원이다. 8개 국적 항공사 가운데 아시아나항공 계열사인 에어서울(175억원)을 제외하면 가장 적다. LCC업계 1위인 제주항공(3816억원)과 비교하면 15분의 1 수준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타항공은 부산~싱가포르 운수권을 따내기 위해 중거리 여객기 보잉 737맥스 두 대를 지난해 말 도입하는 승부수를 뒀다.

하지만 지난해 10월과 올해 4월 두 차례 추락 사고를 낸 여파로 보잉 737맥스 기종의 운항이 전 세계에서 금지됐다. 이 기종을 싱가포르 노선에 투입할 예정이었던 이스타항공으로선 날벼락을 맞게 됐다. 운항도 하지 못한 채 리스비용으로 한 달에 수십억원을 부담하고 있다.

주 수익원이던 일본 노선의 수익성 악화도 큰 타격이 됐다. 한·일 경제 전쟁 이후 한국에서 일본으로 떠나는 여행객이 급감한 탓이다. 항공업계 관계자는 “부채비율이 높은 이스타항공은 대규모 증자를 통해 재무구조를 개선해야 한다”며 “최대주주가 투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회사를 팔아야 할 처지에 놓였다”고 말했다.

“항공업계 구조조정 신호탄”

이스타항공의 매각 시도가 국내 항공업계의 구조조정 신호탄이란 분석도 나온다. 현재 국적 항공사는 대형항공사(FSC)인 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과 6개의 LCC 등 8개가 있다. 지난 3월 신규로 항공운송 면허를 취득한 플라이강원, 에어프레미아, 에어로케이항공 등 3개의 LCC가 내년부터 본격 취항하면 LCC만 9개로 늘어난다. 업계에서는 “시장 규모에 비해 항공사가 너무 많아 과도한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하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한국보다 시장 규모가 크고 인구가 많은 중국과 일본의 LCC는 각각 6개, 8개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7월 시작된 일본의 경제 보복은 국내 항공업계에 큰 악재로 작용했다. 여행객이 줄어들자 LCC들이 잇따라 일본 노선을 감축하거나 폐지했다. 대신 중국 대만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노선을 늘렸다.

대형항공사 관계자는 “LCC들이 동남아시아 등 중거리 노선으로 넘어오면서 대형항공사들의 수익성도 악화하기 시작했다”며 “기내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LCC들과 가격 경쟁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지난해 1857억원의 손실을 낸 대한항공은 올해 손실 규모가 5500억원가량으로 급증할 것으로 증권사들은 내다보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14일 창사 이래 처음으로 객실승무원까지 대상으로 하는 단기 무급휴직 희망제를 도입했다.

“새 주인 찾기 어려울 수도”

항공업계에선 안팎의 먹구름이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디플레이션(물가 하락) 우려가 커진 가운데 환율도 불안해 해외여행객이 크게 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지난 3분기(7~9월)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5개 항공사(대한항공·제주항공·진에어·에어부산·티웨이항공)의 순손실 합계는 1000억원에 육박한 것으로 증권업계는 추정(컨센서스)했다.

일본과의 관계 개선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지난달 국내 LCC 6개사의 여객 수는 480만여 명으로 1년 전보다 5%가량 감소했다. LCC 여객이 줄어든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6월 이후 11년3개월 만에 처음이다. 일본으로 떠나는 항공여객 수가 이 기간 138만 명에서 99만 명으로 40% 가까이 급감한 데 따른 것이다.

시장에선 항공업계를 둘러싸고 있는 각종 악재를 감안할 때 이스타항공이 새 주인을 찾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당분간 업황이 크게 개선되기는 힘든 만큼 LCC 인수에 대한 메리트가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재후/정영효/강현우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