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선보인 ‘모나미 153 볼펜’은 잉크를 펜촉에 찍어쓰던 당시 필기구의 혁명으로 평가받았다. 모나미는 59년 동안 ‘문구 외길’을 고집하면서 프랑스어 ‘내 친구’란 사명처럼 국민 필기구 회사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컴퓨터 보급 등 디지털기기 대중화로 2000년대 들어 필기구업계는 성장정체기를 맞았다.

모나미가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제품 프리미엄 전략을 앞세운 체험마케팅 등 공격경영에 나섰다. 최근 고급 제품들이 일본 수출규제로 인한 대체재로 인기를 끌면서 ‘어닝 서프라이즈’의 호기를 맞았다는 분석도 나온다.
'59년 문구외길' 모나미의 변신, 고급·고기능화로 승부…"일본산 비켜"
속도내는 고급화 전략

모나미는 153 볼펜 출시 50주년을 맞은 2014년부터 고급화 전략으로 사업 방향을 틀었다. 153 볼펜의 전통적인 디자인을 그대로 살리면서 고급 메탈 몸체와 금속 리필심을 적용한 ‘모나미 153 리미티드 1.0 블랙’을 1만 자루 한정판으로 내놓은 것. 기존 153 볼펜이 200~300원이던 데 비해 리미티드 제품 가격은 2만원에 달한다. 100 배 정도 비쌌지만 제품은 출시 즉시 품절됐다.

모나미는 고급화 전략의 가능성을 확인한 뒤 새로운 모델을 끊임없이 선보이면서 필기구의 구매트렌드를 변화시키고 있다.

153 볼펜의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고급스러움을 담은 153 프리미엄라인을 잇따라 출시했다. 2014년 5월 ‘153 아이디’, 같은 해 11월엔 ‘153 리스펙트’를 내놨다. 2015년 7월 ‘153 네오’, 2016년 3월 ‘153 블랙 앤 화이트’, 2017년 2월 ‘153 골드’, 지난해 9월 ‘153 블라썸’, 올 4월 ‘153 네이처’ 등은 소비자의 소장욕을 자극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렇게 내놓은 고급 필기구 매출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연평균 46%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 들어서도 3분기까지 고급 필기구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4% 증가했다는 게 모나미 측의 설명이다.

체험 마케팅도 도입했다. 2015년 경기 용인시 수지구에 있는 본사 1층에 ‘모나미 컨셉스토어’를 열어 나만의 잉크를 직접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서울 인사동까지 소비자가 체험할 수 있는 스토어는 여섯 곳으로 늘었다.

박상준 모나미 마케팅팀 과장은 “‘국민 볼펜’으로 사랑받아온 모나미가 아날로그 감성을 담아냄으로써 필기구 시장에서 하나의 트렌드를 만들어가겠다는 회사의 전략”이라고 말했다.

일본 대체 필기구로 급부상

일본의 수출규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7월부터 모나미 볼펜은 토종 필기구로 주목받고 있다. 그동안 필기구 시장은 고급 일본 브랜드가 절대 우위를 차지해 왔다.

소비자들이 일제 불매운동에 가세하면서 모나미가 대체재로 떠오른 것이다. 중·고등학교나 대학가 문구점에서 모나미의 ‘FX 제타’와 ‘FX 153’이 불티나게 팔렸다. 일본의 제트스트림이 1800원인데 비해 FX 제타가 1000원, FX 153이 1500원으로 가격 대비 필기감이 좋다는 호평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모나미에 따르면 모나미몰 기준으로 지난 2분기와 3분기에 FX 제타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532.3% 급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모나미몰의 문구부문 매출도 지난 7월 전년 동월 대비 247.4% 늘어난 데 이어 8월엔 1025.4%까지 치솟았다.

기술력이 뒷받침됐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010년 출시된 저점도 잉크 ‘FX 제타’는 개발 기간만 3년이 걸렸다. 볼펜똥이라고 불리는 찌꺼기를 최대한 줄이면서 부드러운 필기감과 선명한 색상을 구현해낸 것이 강점으로 꼽힌다. 지난달 9월 교보문고 핫트랙스에서 진행된 블라인드 시필 테스트에서 선호도 35.1%로 일본 제품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서기열 기자 phil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