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차 소형 SUV 셀토스. 사진=기아자동차
기아차 소형 SUV 셀토스. 사진=기아자동차
기아자동차가 하반기 선보인 신차들이 흥행 질주를 이어가고 있다. 문제는 뜨거운 시장 반응에도 기아차는 내심 곤란한 표정을 짓고 있다는데 있다.

현대차 팰리세이드가 크게 겪은 출고 지연 사태 때문이다. 기아차가 선보인 준대형 세단 K7 프리미어, 소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셀토스, 대형 SUV 모하비 더 마스터의 인기가 뜨겁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세 차종 합산 누적 계약대수는 7만대를 넘어서고 있다.

지난 1일 기준 누적 계약대수는 셀토스가 2만7000여대, 모하비 더 마스터도 1만3000여대를 넘어섰다. K7 프리미어도 3만5000여대에 달한다. 출시 시점에서 이뤄진 사전계약 이후로도 꾸준히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것이다.

◇ 기아차, 없어서 못 판다?

판매량이 덩달아 늘고 있지만, 치솟는 계약대수에 비하면 다소 초라하다. 지난 8월과 9월 셀토스는 6109대씩, 모하비는 9월 1754대가 팔렸다. K7 프리미어도 8월 6961대, 9월 6176대 판매를 기록했다.
기아차 대형 SUV 모하비 더 마스터. 사진=기아자동차
기아차 대형 SUV 모하비 더 마스터. 사진=기아자동차
판매량이 제한적인 것은 생산량이 주문을 감당하지 못하는 탓으로 해석할 수 있다. K7프리미어의 생산설비(캐파)는 월 5900대 규모다. 셀토스는 초기 월 3000대였던 것을 6000대로 늘렸고, 모하비는 월 2000대 수준이다. 세 차량 모두 생산설비가 100% 가동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난달 권혁호 기아차 부사장도 이러한 어려움을 호소한 바 있다. 그는 모하비 더 마스터 출시 행사에서 깜짝 발언을 쏟아냈다. 계획된 발언이 아니었기에 마이크도 꺼진 채 육성으로 "K7 8월 판매가 줄었다고 인기가 떨어진 것은 아니다"라며 "판매가 안되어 판매량이 줄어든 게 아니다. K7 월 생산능력은 5900대가 전부"라고 강조했다.

K7 판매량은 감소세에 있다. 7월 8173대에서 8월 6961대로, 9월에도 6176대를 기록했다. 하지만 공장은 100% 가동되고 있으며 대기 고객도 증가하는 추세다. 모하비 더 마스터는 지금 주문하더라도 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같은 라인에서 중형 SUV 쏘렌토도 생산되기에 증산이 여의치 않다.

셀토스도 생산이 한계에 달했는데 수요는 급증할 상황이다. 기존의 누적 계약 2만7000여대에서 지난달까지 판매한 1만6000여대를 제외하면 남은 계약물량 소화에 2개월이 걸린다. 내수 시장의 3배 이상 규모인 미국 시장 진출도 연내 시작될 예정이다. 셀토스 출고 대기 기간이 증가할 것이라고 쉽게 예상할 수 있다.



◇ 잘 팔려도 문제 '팰리세이드 교훈'

출고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 소비자의 이탈도 본격화된다. 주문부터 출고까지 1년을 기다려야 했던 현대차 대형 SUV 팰리세이드는 사전계약 취소 물량만 2만대를 넘겼던 바 있다. 증산 과정도 쉽지 않았다. 노조의 반대 때문이다.

초기 팰리세이드는 울산 4공장에서 월 8600대 규모로 생산됐다. 생산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자 현대차는 울산 2공장에서도 생산을 추진했지만, 특근수당 감소를 우려한 4공장 노조가 반대하고 나섰다. 현대·기아차는 노사 동수로 구성된 노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차량 생산 배정 인원과 공장별 물량을 결정한다. 사측에서 생산 물량을 조절하고 싶어도 임의로 할 수 없다.

팰리세이드를 울산 2공장에서도 생산하기 위해 노조를 설득하는 작업과 4공장 노조를 설득하는 작업이 필요했다. 결국 울산 5개 공장 물량을 평준화하자는 노조 집행부의 제안에 4공장 노조가 동의하며 증산이 이뤄졌지만, 이 과정에만 6개월이 소요됐다.

증산이 늦어지며 취소 물량은 늘어났고, 팰리세이드의 경쟁 차량도 늘어났다. 이전까지 대형 SUV를 원하는 소비자들은 앞다퉈 팰리세이드를 계약했지만, 현재는 적지 않은 수가 모하비 더 마스터, 한국GM 트래버스 등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현대차 입장에서는 큰 기회를 놓친 셈이다.
K7 프리미어. 사진=기아자동차
K7 프리미어. 사진=기아자동차
◇ 생산증설-해외생산 또 새 고민거리

K7 프리미어, 셀토스, 모하비 더 마스터 역시 경쟁 차량들의 출시가 예정돼 있다. 우선 현대차 그랜저 부분변경(페이스리프트) 모델이 내달 출시된다. 그랜저가 K7 프리미어에 수요를 흡수당하며 판매량 감소를 겪었던 만큼, 그랜저 부분변경 모델 출시는 K7 프리미어 수요를 잠식하며 경쟁이 벌어질 전망이다.

소형·준중형 SUV 신차도 예정됐다. 르노삼성은 크로스오버유틸리티차량(CUV) 신차 XM3를 비롯해 2세대 QM3, 신형 클리오, 전기차 조에 등 셀토스와 경쟁할 차량들을 대거 선보인다. 한국GM은 준중형 SUV 신차 트레일블레이저를 출시할 예정이다. 셀토스가 준중형 SUV 수요까지 잠식했던 만큼 경쟁력 있는 신차들의 출시는 악재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모하비 더 마스터 역시 제네시스 SUV GV80, 한국GM의 초대형 SUV 타호 등과 경쟁이 예정되어 있다. 내년 팰리세이드 3.0 디젤 모델 출시와 함께 최고급 트림이 추가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아차 일각에서도 모하비 등의 증산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모하비는 화성 공장에서 생산되지만, 광주공장 역시 모하비 기반 군용 전술차량을 생산하기에 혼류 생산도 가능하다. 다만 노사공동위원회를 통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셀토스의 경우 인도 공장 생산량을 늘려 국내 시장에 공급하는 방안을 고려할 수 있다. 다만 이 역시도 현실성은 떨어진다. 현대·기아차는 해외 생산 차량을 국내 들여올 때 노조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노조의 반대가 불보듯 뻔하기 때문.

업계 관계자는 "수요에 따라 생산량을 유연하게 조절하지 못하는 한계가 기아차 흥행의 발목을 잡았다"며 "출고 지연이 길어지는 가운데 경쟁력 있는 신차들이 출시되면 현재와 같은 판매량을 유지할 수 있을지 확실치 않다"고 평가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