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의 결단…"비용 들더라도 신뢰가 우선"
“요즘 고객에게 더 집중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합니다. 서비스나 제품 등 모든 측면에서 고객에게 집중하기 위해 더 노력할 여지가 없는지 자문합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지난 5월 미국 칼라일그룹의 투자자 콘퍼런스에 참석해 이규성 칼라일그룹 공동대표와 면담하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날 ‘고객’이라는 단어를 여러 차례 썼다.

그로부터 약 5개월 뒤인 11일. 현대·기아자동차는 세타2 GDi 엔진이 탑재된 국내 차량 52만 대를 대상으로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한·미 양국에서 약 9000억원(현대차 6000억원, 기아차 3000억원)의 비용이 소요될 전망이다. 현대·기아차 관계자는 “비용 부담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고객 신뢰를 지키기 위해 평생 보증을 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현대차의 결단…"비용 들더라도 신뢰가 우선"
국내외 469만 대 ‘평생 보증’

현대차와 기아차는 세타2 GDi 및 세타2 터보 GDi 엔진을 장착한 2010~2019년형 차량을 보유하고 있는 한국 및 미국 고객에게 평생 보증 프로그램을 제공하기로 했다. 현대·기아차는 이날 집단소송을 제기한 미국 고객들과 화해안에 합의했는데, 국내 고객에게도 같은 수준의 보상을 하기로 결정했다.

대상 차량은 현대차 쏘나타(YF, LF), 그랜저(HG, IG), 싼타페(DM, TM), 벨로스터N(JSN)과 기아차 K5(TF, JF), K7(VG, YG), 쏘렌토(UM), 스포티지(SL) 등 52만 대다. 미국에서는 417만 대가 대상이다.

현대·기아차는 대상 차량 전체에 엔진 예방 안전 신기술인 ‘엔진 진동감지 시스템(KSDS)’을 무료로 적용할 계획이다. 이들 차량이 폐차될 때까지 엔진 결함이 발생하면 무상으로 수리해주는 평생 보증 프로그램도 시행한다.

엔진 결함을 수리하느라 이미 비용을 낸 고객들에게 보상도 한다. 기존 보증기간이 끝난 상태에서 엔진을 유상 수리한 고객에게 수리 및 견인 비용을 보상하기로 했다. 엔진 결함에 따른 차량 화재로 손실을 입은 고객에게는 보험개발원에서 발표하는 차량 보험 잔존가 기준으로 보상할 방침이다.

세타 엔진 4년 논란 잠재울까

세타 엔진은 현대차가 2002년 독자 개발했다. 미국 다임러크라이슬러와 일본 미쓰비시 등에 수출하면서 한국을 자동차 엔진 수출국 반열에 올려놨다는 평가를 받았다. 후속 제품인 세타2 엔진은 2009년 나왔다. 세타2 엔진이 논란이 된 건 2015년이다. 이 엔진을 장착한 차량이 주행 중 멈추는 사고가 잇따르면서 엔진 결함 논란이 일었다. 현대차는 그해 차량 47만 대를 리콜했다.

2년 뒤인 2017년엔 미국과 한국에서 동시에 리콜했다. 한국에서는 약 17만 대, 미국에서는 약 130만 대가 대상이 됐다. 한국과 미국의 리콜 시기가 각각 다르다보니 국내 소비자를 홀대하는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왔다. 현대·기아차는 “두 나라 공장에서 별도로 엔진을 생산하기 때문에 결함 원인이 달랐다”며 “원인이 다르다보니 리콜 결정 시기에 차이가 난 것”이라고 해명했다.

자동차업계에서는 세타 엔진 결함 문제가 현대·기아차 실적 회복의 최대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분석이 많았다. 논란이 지속될수록 차량 품질에 대한 우려가 커질 수 있는 데다 집단소송 결과에 따라 대규모 비용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은영 삼성증권 연구원은 “추가 비용 발생은 부담이지만 장기적으로는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품질 우려를 잠재울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