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육성을 위한 규제개혁도 ‘표심’에 발이 묶여 있다. 대표적인 것이 원격의료다.

더불어민주당은 제한적 원격의료 도입을 골자로 한 의료법 개정안을 20대 국회에선 제출하지 않기로 했다. 내년 4월 총선을 7개월여 앞두고 핵심 지지층인 시민단체 등의 반발을 무릅쓰며 법안을 처리하는 것이 무리라고 판단했다는 게 민주당의 설명이다.

여당의 이 같은 소극적 태도는 의사단체와 의료노조의 강력한 반발을 의식한 결과다. 전국보건의료노조 등은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의료 상품화와 다름없다”며 원격의료를 저지하기 위해 내년 총선에서 낙선운동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대한의사협회도 원격의료 시행의 근거가 되는 의료법 개정에 반대하며 집단휴진을 단행할 정도로 거세게 반대하고 있다. 의료계는 “원격의료의 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았다”며 도입에 반대해왔지만 효과성을 검증할 시범사업조차 가로막으면서 ‘밥그릇 챙기기’가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국제무역연구원 신성장연구실은 지난 6월 ‘신산업 규제 개선에 관한 우리나라와 주요국 비교’ 보고서를 통해 “원격의료, 스마트모빌리티 등 4차 산업혁명 시대 혁신을 주도해야 할 신산업 부문이 국내에서는 규제로 인해 성장을 제약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규제개혁이 더딘 이유에 대해선 “산업 내부의 시장 참여자들이 기득권화돼 있어 이들의 뜻을 거스르는 규제 완화가 어렵다”며 “정치권은 선거를 의식해 이들의 주장을 거부하거나 중재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정보통신기술(ICT)을 활용해 원격으로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원격의료는 도서벽지 등 의료사각지대를 메울 해법으로 꼽힌다. 스마트의료시장의 핵심 분야지만 1988년 첫 원격의료 시범사업 이후 30년째 시범사업만 되풀이 하고 있다.

정갑영 연세대 경제학부 명예특임교수는 “원격의료, 스마트모빌리티, 빅데이터산업 등 미래 먹거리들이 국내에서는 각종 규제에 짓눌려 있다”며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와 국회가 ‘표심’을 우선시하면 규제개혁의 속도가 더욱 더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