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헬로네이처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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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통가에 '착한 소비' 바람이 불고 있다. 소비자들이 식품 뿐 아니라 의류와 화장품, 배송 등까지 친(親)환경·윤리적 소비 잣대를 들이대면서 기업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가고 있다는 분석이다.

7일 유통업계에 따르면 성수기를 맞은 패션계에선 동물 학대 이슈가 불거진 모피 대신 캐시미어 혹은 합성소재 플리스(fleece) 의류가 대세로 떠올랐다.

롯데백화점은 이날부터 오는 10일까지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롯데 캐시미어 페어'를 연다. '착한 소재·착한 가격'을 콘셉트로 37개 색상의 자체 캐시미어 상품을 판매한다. '섬유의 보석'이라고 불리는 소재 캐시미어는 산양의 털갈이를 통해 획득할 수 있어 친환경 소재로 꼽힌다.

올 겨울 자체 캐시미어 브랜드로 승부수를 던진 기업들도 줄을 잇고 있다. 홈쇼핑업계에서는 CJ ENM 오쇼핑부문이 캐시미어 브랜드 '고요'를 내놨다. 현대홈쇼핑은 몽골 캐시미어 전문기업인 '고비(GOBI)'의 제품을 단독으로 선보이고 있다. 신세계인터내셔날은 자체 남성 편집숍 '맨온더분'울 통해 고급 몽골리안 캐시미어로 만든 스웨터 컬렉션을 출시했다.

지난해부터 아우터 강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플리스 신상품도 아웃도어·제조·직매형 의류(SPA)를 통해 쏟아지고 있다. 플리스는 폴리에스테르 계열의 직물로 표면을 양털과 같이 복슬복슬하게 만들어 보온성이 뛰어난 소재다. 아웃도어 브랜드 노스페이스 경우 아예 플라스틱 페트병을 재활용해 만든 '에코 플리스 컬렉션'을 핵심 아이템으로 내세워 친환경 이미지를 강조하고 나섰다.

앞서 다수의 명품 브랜드는 '퍼 프리(fur-free: 동물 모피 사용 중단)'를 공식화하며 환경보호·동물복지 브랜드를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1980~1994년 출생자) 마음 잡기에 나섰다. 2017년 선언한 구찌를 비롯해 톰포드, 지미추, 버버리 등이 퍼 프리 브랜드에 속한다. 세계 4대 패션쇼인 런던 패션 위크는 지난해 9월 열린 패션쇼를 시작으로 모피로 만든 옷을 런웨이에서 퇴출한다는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비건·친환경 바람 확산…입고 먹고 바르고 배송까지 '착하게'
비건(vegan·채식주의자) 푸드는 아프리카 돼지열병과 함께 다시 한번 재조명되고 있다. 패식이 가축전염병 이슈에서 상대적으로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CJ ENM 오쇼핑부문은 자체브랜드(PB) 상품으로 비건 인증을 받은 식물성 단백질 셰이크를 내놨다. 온라인 푸드마켓 헬로네이처는 지난 7월 새벽배송 업계 최초로 채식주의자를 위한 장보기 코너인 '비건존'을 조성했다.

'고기'에 대한 시도도 이어지고 있다. 롯데푸드는 지난 4월 통밀로 만든 대체육 브랜드 '엔네이처 제로미트'를 선보였다. 미국 나스닥에 성공적으로 상장한 식물성 고기 제조업체 비욘드미트의 제품은 올 2월 국내 출시 후 8월까지 1만5000팩이 팔린 것으로 집계됐다. CJ제일제당은 2021년 대체육을 출시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졌다.

조미진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최근 아프리카 돼지열병이 확산되면서 식품 전반에 있어 안전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며 "육류는 우리 생활에 있어서 없어서는 안되는 식품이지만 사육하는 과정에서의 환경 오염, 도축하는 과정에서의 윤리성, 식품 안전성과 관련해 지속적으로 이슈가 제기돼 왔다"고 설명했다.

화장품 업계에서도 동물 실험과 동물성 원료를 지양하고 천연 원료를 지양하는 '비건 뷰티'가 확산하고 있다.

패션업체 LF는 이달 출시한 여성 화장품 브랜드 '아떼'의 정체성을 비건 화장품 뷰티로 설정했다. 프랑스 비건 인증기관 'EVE'로부터 관련 인증도 획득했다. 아모레퍼시픽의 화장품 브랜드 이니스프리의 경우 '슈퍼푸드 베지워터'의 미스트와 토닝 앰플 상품을 출시하며 EVE 인증을 받았다. 이 밖에 '디어달리아', '보나쥬르' 등 국내 브랜드가 비건 뷰티를 표방하고 있다.

김태현 IBK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비건이 단순히 개인의 건강과 다이어트를 위한 식습관 개선을 넘어 동물권익과 환경보호를 중시하는 라이프스타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포장에도 친(親)환경 바람이 거세다. 쓰레기에 대한 비판이 이어지면서 최근 새벽배송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주요 유통업체들이 재활용 가능한 포장재를 도입하고 있다.

지난달 새벽배송 '원조'격인 마켓컬리는 포장재를 재활용할 수 있는 종이 재질로 바꾸기로 했다. 냉동제품 포장에 사용하는 스티로폼 박스를 100% 재활용 가능한 종이로 제작된 친환경 종이 박스로 대체하는 게 핵심이다. 비닐 소재인 완충 포장재는 종이 완충 포장재로 교체한다. 비닐 파우치와 지퍼백도 종이 파우치로 대신한다. 마켓컬리는 이번 정책에 '올페이퍼챌린지(All Paper Challenge) 친환경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붙였다.

김슬아 마켓컬리 대표는 지난달 24일 기자간담회에서 "연간 750t의 비닐, 2130t의 스티로폼 감축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추산했다. 경쟁사 헬로네이처와 SSG닷컴은 박스 대신 재사용할 수 있는 가방을 내세운 상태다.

일회용품 사용이 많은 호텔업계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객실 내 비치된 일회용 욕실용품 퇴출에 앞장서기고 했다. 일회용으로 제공되던 샴푸, 린스, 샤워젤 등을 펌핑 타입 용기로 대체한다는 방침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은 북미지역 1000여 곳 호텔 내 어메니티를 대용량 용기로 바꿨고, 나머지 호텔들도 2020년 12월까지 동참할 계획이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이 발표한 계획에 따르면 5억개의 미니 플라스틱 용기를 줄일 수 있다. 메리어트 인터내셔널 측은 이에 대해 "연간 플라스틱 어메니티 사용량의 30퍼센트(170만 파운드)에 달하는 양"이라고 밝혔다.

오정민 한경닷컴 기자 bloomi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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