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벽에 가로막힌 개혁
(2) 연금개혁 폭탄 돌리기

혈세로 메울 8대 사회보험
올 16兆→2023년 24兆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배석한 가운데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왼쪽)이 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김강립 복지부 차관이 배석한 가운데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2003년 노무현 정부는 큰 결단을 내렸다.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9.0%에서 15.9%로 올리고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연금 수급액)을 60%에서 50%로 내리는 연금개혁안을 추진한 것. ‘더 내고 덜 받는’ 방안이어서 국민 반발이 컸다. 그럼에도 정부는 연금의 지속 가능성을 위해선 개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4년간의 격론 끝에 보험료율 인상은 무산됐지만 소득대체율은 40%까지 내리는 데 성공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2017년. 빠른 고령화로 국민연금 재정 불안을 둘러싼 우려가 과거보다 더 커졌다. 문재인 정부는 “더는 근본적인 제도 개선을 미룰 수 없다”며 그해 12월 연금개혁에 들어갔다. 하지만 정부가 21개월간의 장고 끝에 내놓은 최종안은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세 가지 복수안이었다. 사실상 연금개혁을 포기했다는 평가가 나왔다. 지지율 하락을 감수하고 미래를 보고 개혁을 추진했던 노무현 정부와 달리 ‘일단 논란을 피하고 보자’는 식으로 미래 세대에 폭탄을 넘겼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연금 고갈 3년 앞당겨졌는데…정부는 '연금개혁' 아예 손놨다

연금 고갈 시기 점점 다가오는데…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국민연금 적립금이 2057년 고갈될 전망이라고 발표했다. 기존 전망치(2060년)보다 3년 당겨졌다. 아직 여유가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문제는 국민연금의 덩치가 비대해져 단기간에 치료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적립금이 고갈되는 2057년 연금 급여 지출액은 416조원에 이른다. 올해 국가 예산(470조원)과 맞먹는다. 그런데 그해 보험료 수입은 147조원에 그친다. 연초에 남아 있는 적립금을 다 쓰고도 124조원의 연금을 지급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한다. 재정 부족액은 매년 커져 2060년 328조원, 2070년엔 505조원에 이를 전망이다. 대규모 미지급 사태를 내지 않으려면 보험료를 10%포인트 올리든지 수백조원의 혈세를 들여 기금을 지원해야 한다. 연금개혁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가 여기 있다.

청와대 퇴짜에 개혁 의지 꺾여

문재인 정부도 초기엔 개혁 의지가 있었다. 지난해 8월 민관합동기구인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제도 개선 방향에 ‘재정 목표’를 제안했다. 70년 뒤까지 매년 적립금이 1년치 연금 지출액만큼은 남아 있도록 하자는 안이다. 가령 2087년 필요한 연금액이 500조원이라면 그해 적립금도 최소 500조원이 돼야 한다는 얘기다. 기금 고갈 사태를 원천 차단할 수 있다. 개선안엔 보험료율을 11.0~13.5%까지 올리자는 방안도 포함됐다.

하지만 청와대가 개선안에 퇴짜를 놓으면서 개혁은 표류하기 시작했다. 청와대는 ‘보험료 인상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었다. 정부가 다시 검토해 작년 12월 발표한 개선안은 현행 유지를 포함한 사지선다였다. ‘정부는 결정을 못하겠으니 국민이 네 가지 안 중 고르라’고 떠넘긴 셈이다. 재정 목표 수립도 없던 일로 했다. 네 개 안 가운데는 보험료율을 12~13%로 올리는 안도 있었지만 현 정부 내에선 2021년에야 1%포인트 인상하는 게 다였다. 김상균 제도발전위원장은 정부안을 두고 “폭탄 돌리기보다 나쁘다”고 비판했다.

정부 책임 국회에 떠넘겨

정부는 이후 공을 사회적 합의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넘겼다. 하지만 경사노위도 21개월간 논의 끝에 세 가지 복수안을 마련해 국회로 넘기는 데 그쳤다. △소득대체율 40%→45%(2028년 기준)+보험료율 9%→12% △현행 유지 △소득대체율 유지+ 보험료율 10% 등이다.

국회가 바통을 넘겨받았지만 개혁이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사회적 합의안이 없는 상태인 데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여야 모두 인기 없는 연금개혁에 손대고 싶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이제라도 단일 개혁안을 마련하라는 국회 요구에 박능후 복지부 장관은 지난 2일 국정감사에서 “정부가 단일안을 제시하기 힘들다. 정치권에서 논의하고 결론을 도출해달라”고 답했다. 국회에 책임을 떠넘긴 것이다.

정부가 그간 기업을 옥죄는 정책을 쏟아낸 것이 오늘의 사태에 한몫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재계 한 관계자는 “국민연금이 지속 가능하려면 보험료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점을 안다”면서도 “최저임금과 법인세 인상, 주 52시간제 시행 등으로 경영비용이 급격히 오른 상태여서 보험료 인상까지 감당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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