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스틱 가공업계 산증인'
한경에 편지 보내온 이국노 사이몬 회장

"기업인은 통상전쟁에 목숨 왔다갔다
경제인 자부심 컸는데 지금은 힘들어"
"한·일 경제전쟁, 승리보다 전쟁 막는 게 정부의 역할"…어느 70대 중소기업인의 호소

“경제는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닙니다. 한·일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지는데도 외교는 사라지고 ‘이겨야 한다’는 정치 구호만 난무합니다. 이러다보니 ‘한국을 떠나야 하나’ 하는 기업들의 고민은 점점 깊어지고 있습니다.” 지난달 기자에게 한 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자신을 ‘중소기업인’이자 ‘플라스틱인’이라고 소개한 이국노 사이몬 회장(72)은 40년 넘게 국내 플라스틱 가공업계를 지켜온 인물이다. 이 회장은 “신문 지면에서 한·일 통상 분쟁 기사를 볼 때마다 기업인으로서 답답함을 느껴 편지를 쓰게 됐다”고 했다. 그는 “한·일 경제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게 아니라 이를 감지하고 막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어야 했다”며 “중소기업들은 통상 분쟁에 목숨이 왔다갔다 한다”고 호소했다.

“기업들의 ‘脫한국’ 고민 새겨들어야”

지난달 30일 찾은 (주)지주 서울사무소의 이 회장 사무실에는 동탑산업훈장,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표창 등 각종 상장이 빼곡했다. 해외시장을 개척해 수출 확대에 기여하고 플라스틱업계 발전에 공헌했다고 받은 상들이다. 이 회장은 “평생 제조업에 몸담아 한국 경제에 일조했다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왔다”며 “하지만 요새는 한국 기업으로 살아남기가 너무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한양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이 회장은 1973년 서울 마장동 33㎡(10평)짜리 임차공장에서 사이몬의 모태인 지주를 설립하고 플라스틱 파이프 사업을 시작했다. 당시 3만원을 들여 설립한 회사는 현재 연 매출 600억~700억원 수준으로 커졌다. 지주는 매년 매출의 15%를 연구개발(R&D)에 지속적으로 투자해왔다. ‘기술에서 밀리면 기업도 나라도 망한다’는 생각에서다.

2013년에는 아시아 최초로 보수용 폴리에틸렌 접철관(수도관 안에 폴리에틸렌 소재 관을 집어넣은 뒤 펼쳐 상수관 내부를 새것으로 바꾸는 방식)을 개발했다.

지주 서울사무소 7층 제품 전시실 한쪽에는 거북선 모형이 있다. 이 회장은 “거북선은 기술이 나라를 지킬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사례”라며 “임직원들이 기술보국(技術報國)의 정신을 되새겼으면 하는 마음에 마련했다”고 말했다. 그는 “서비스산업은 소비자의 선호가 빠르게 변해 주기가 짧지만 제조업은 길다”며 “산업의 기초체력은 제조업”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최근에는 ‘제조업의 위기’를 수시로 체감한다는 게 이 회장의 호소다. 이 회장은 “사업하는 사람들에게 최악의 상황은 불확실성”이라며 “2년 연속 두 자릿수 인상률을 보인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 한·일 갈등 초동대처 실패 등으로 인해 정부에 신뢰를 잃고 ‘탈(脫)한국’을 말하는 주위 기업인들이 부쩍 늘었다”고 전했다. 사이몬은 충북 음성에 약 6만6000㎡ 규모로 공장을 증설 중이다. 100여 명을 새로 고용할 수 있는 규모다. 이 회장은 “지난해 국내 공장을 증설하기로 결정했을 때 주변에서 ‘해외로 나가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만류했었다”며 “이제는 그런 우려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극일, 반일 목소리에만 휘둘려선 안 돼

이 회장은 한·일 갈등 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정부의 외교정책에 아쉬움을 느낀다고 했다. 이 회장은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일본을 상대로 백전백승을 거뒀다고 자신하지만 과거사 문제가 경제전쟁으로 확산하지 않도록 막는 게 정부의 역할이자 존재 의의”라며 “지난해 대법원 판결 이후 해법을 찾지 못해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한 걸 부끄러워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주는 일본 오사카에도 지사를 두고 있다. 이 회장은 “일본 업체들과의 거래가 지연되거나 절차가 깐깐해졌다는 것을 체감한다”며 “매출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그는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이던 1995년 쓰레기 종량제 시스템 국내 도입의 기틀을 닦은 인물이기도 하다. 당시 환경부는 스위스 등의 사례를 참조해 쓰레기 종량제 전면 도입을 검토했지만 국내에는 규격화된 비닐봉투를 대량 생산할 수 있는 설비를 갖춘 곳이 전무했다. 이 회장은 일본 업체를 찾아가 낡은 제대기(비닐봉투를 제조하고 접는 기계) 등을 들여와 관련 설비를 국산화하는 데 일조했다.

당시 일본은 일부 지자체에서 쓰레기 종량제를 시행하고 있었다. 이후 일본 정부 관계자들이 거꾸로 한국의 전국 도입 사례를 배우러 오기도 했다. 이 회장은 “일본과는 분리할 수 없는 경제 파트너 관계”라며 “일각에서는 ‘극일(克日)’ ‘반일(反日)’ 목소리를 높이지만 글로벌 밸류체인이 얽혀 있기 때문에 결국 한국 기업도 피해를 입게 된다”고 우려했다.

■ 이국노 사이몬 회장

▷1947년 충북 진천 출생
▷1965년 청주기계공고 졸업
▷1973년 한양대 재료공학과 졸업
▷1973년 지주 설립
▷1986년 사이몬 설립
▷한국플라스틱공업협동조합 이사장, 한국플라스틱재활용협회 회장
▷2013년~ 지주, 사이몬, 유화수지, ONO 회장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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