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경기 파주 올랜드아울렛 본사 매장. 가전 코너 한가운데에는 최신형 세탁기가 전시돼 있었다. 17㎏짜리 삼성 드럼세탁기 그랑데 블랙캐비어. 포털에 검색해본 가격은 120만~150만원 선이었다. 아울렛에선 99만원에 판매 중이었다. 옆에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2019 광주 세계수영선수권대회 7일 사용 제품.’ 15개 한정 수량만 판매하고 있었다. 전국에 18개 매장이 있는 올랜드아울렛. 서울 황학동에서 중고 TV 중개상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리퍼비시(refurbish: 새로 꾸미다) 시장’을 창출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소비자가 단순 변심으로 반품한 제품이나 이월상품, 스크래치가 난 제품(리퍼브 제품)을 주로 판다. 정품과 중고 사이 정도의 제품을 거래하는 시장이다.
리퍼브 세탁기와 에어컨 등이 전시된 올랜드아울렛 파주 매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리퍼브 세탁기와 에어컨 등이 전시된 올랜드아울렛 파주 매장. /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정품과 중고 사이 제품 거래

지난해 매출 765억원을 올린 올랜드아울렛을 창업한 서동원 회장이 사업에 뛰어든 것은 1986년. 서울의 대표적 중고시장인 황학동에서 일하던 서 회장은 정작 상인들이 자신들의 제품은 제대로 거래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TV가 고장나면 전파사에 맡기고 장기간 기다리거나 고장난 채로 방치하는 사람도 많았다. 수리하러 갈 시간이 없던 상인들을 위해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고장난 TV를 수거해 일정한 금액을 받고 잘 나오는 중고 TV로 바꿔주는 사업이었다. 반응이 좋았다. 일감이 많아지자 직원 5명을 고용했다. 시장을 구석구석 돌았다.

이후 서 회장은 꾸준히 중고 제품 사업을 키웠지만 2000년대 초 한계를 느끼기 시작했다. 서 회장은 “다양한 제품이 나와 신제품 가격이 떨어지자 중고의 매력이 점차 사라졌다”고 말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대우전자(현 위니아대우)의 사내판매용 제품을 팔게 됐다. 팔지 못하고 남은 가전제품을 직원 복지 차원에서 사내에서 싸게 팔았다. 여기서도 재고로 남은 제품을 서 회장이 처리했다. 그는 새로운 시장을 봤다. ‘새것 같은 새것 아닌 제품’을 판매하는 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제품은 넘쳐나지만 제조사와 유통사가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집중 공략했다.

2005년 홈플러스 입점에 성공한 것은 성장의 기회가 됐다. 이때 ‘올랜드’라는 브랜드를 만들었다. 홈플러스에 들어가자 대기업들이 질 높은 리퍼브 제품 판매를 의뢰하기 시작했다. 올랜드아울렛의 올해 매출은 800억원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올랜드아울렛 
서동원 회장
올랜드아울렛 서동원 회장
불황으로 저렴한 물건 실속구매 급증

올랜드아울렛은 오프라인을 고집한다. 4개의 직매장과 14개의 가맹점을 운영 중이다. 파주 본사에만 1만6500㎡의 물류창고가 있다. “작은 흠이 있는 만큼 소비자가 직접 와서 보고 물건을 고를 수 있어야 한다. 정품도 단순변심이 생기는데 리퍼브 제품을 팔면 더 많은 변심을 유발한다”는 게 서 회장의 지론이다. 올랜드아울렛은 현재 한샘 가구, 삼성 LG 가전 등 50여 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한다. 제품 공급 경로는 다양하다. 운동경기대회 등을 치르면서 잠깐 쓴 가구, 신축아파트 모델하우스 전시용 세탁기 등도 넘어온다.

백화점, 마트 등이 1부 리그라면 올랜드아울렛은 2부 리그다. 1부에서 2부로 넘어오면서 ‘몸값’은 낮아진다. 제품을 정가 대비 60%까지 할인받을 수 있어 온라인 최저가보다 높은 가격경쟁력을 갖췄다. 올랜드아울렛은 지난해 3월 평창동계올림픽 때는 스니커즈를 판매하기도 했다. 롯데가 평창 스니커즈 2만 켤레를 올랜드에 넘겼다. 전량 매입해 정가 6만원이던 스니커즈를 3만원에, 그것도 한 켤레 사면 하나 더 주는 1+1 행사를 했다. 대부분이 팔려나갔다.

쿠팡·티몬·롯데도 리퍼브 시장 진출

올랜드아울렛 매출은 지난 10여 년간 꾸준히 늘었다. 지난해 매출은 765억원. 그러나 경쟁자들이 생겨나고 있다. 현재 가장 큰 경쟁자는 AJ렌탈의 ‘전시몰’이다. 단기 렌털했던 제품을 판매한다. e커머스(전자상거래) 업체들과 유통 대기업들도 리퍼브 시장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쿠팡은 포장이 뜯긴 상품을 재포장해 정가 대비 5~10%가량 싸게 판다. 티몬은 지난 24일 리퍼브 상품 470종을 특가 판매하는 ‘리퍼데이’를 열었다.

롯데도 손대기 시작했다. 롯데프리미엄아울렛 광명점은 1일부터 연말까지 125㎡(약 38평) 규모의 ‘리싱크 매장’을 연다. 120만원짜리 LG전자 65인치 4K UHD TV를 89만원에 판다.

올랜드아울렛은 유통 대기업과 e커머스의 추격을 제품의 질로 따돌릴 계획이다. 서 회장은 “삼성전자, LG전자 출신 기술자를 한 명씩 확보해 제품의 품질을 높이고 있다”며 “신상품에 가까운 ‘하이 리퍼브’를 취급하는 브랜드 ‘올쏘’를 10월 중 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 리퍼브

소비자가 구입 후 마음 바꿔 반품한 제품이나 이월 상품, 흠집 난 제품 판매

박종필 기자 j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