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술 이해 못했군요" 퇴짜…투자자 '골라 받는' 스타트업
지난 8월 세 번째 대규모 투자 유치인 시리즈C를 마무리한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 뱅크샐러드는 300억원으로 책정했던 모집액을 50% 늘려 잡았다. 벤처캐피털(VC)들이 너도나도 투자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뱅크샐러드 관계자는 “고민 끝에 150억원을 증액한 450억원을 받는 것으로 시리즈C를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돈이 흔해진 벤처업계

‘제2의 벤처붐’이란 말이 돌 만큼 벤처업계에 자금이 흔해졌다. 국내 VC 투자 규모가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스타트업을 육성하는 액셀러레이터도 급증하고 있다. 스타트업과 VC의 관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여전히 대다수 스타트업이 ‘을’의 입장이지만 뱅크샐러드처럼 앉아서 투자자를 고르는 ‘갑’ 스타트업도 빠르게 늘고 있다.
"우리 기술 이해 못했군요" 퇴짜…투자자 '골라 받는' 스타트업
8월 150억원 규모의 시리즈B 투자를 받은 3차원(3D) 홀로그래피 현미경 개발 스타트업 토모큐브도 VC들 사이에서 ‘로또’로 불렸다. 돈을 내겠다는 VC가 줄을 섰지만 회사 경영진이 추가 투자를 거부했다. 이 회사는 필요한 자금 규모, 이해관계 등을 고려해 기존 투자자를 중심으로 투자를 유치했다.

공유 킥보드 ‘씽씽’으로 유명한 모빌리티(이동수단)업체 피유엠피 역시 6월 60억원을 속전속결로 유치했다. 모빌리티업종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포트폴리오에 관련 기업을 집어넣으려는 VC가 급증했다는 설명이다.

대기업들도 액셀러레이터 설립해

전문가들은 스타트업에 유리한 시장 환경이 상당 기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벤처투자액은 1조8996억원으로 작년 상반기(1조6327억원)보다 16.3% 증가했다. 반기 기준 역대 최대치다. 업계에선 연말까지 4조원 이상의 자금이 스타트업으로 흘러들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스타트업에 투자하고 경영 컨설팅도 해주는 기관인 액셀러레이터도 빠르게 늘고 있다. 2017년 상반기 22곳에 불과하던 액셀러레이터는 지난해 상반기 100곳으로 늘었다. 지난 1년 사이에 새로 설립된 곳을 합하면 200곳이 넘는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신생 액셀러레이터 중에는 대기업이 세운 곳이 적지 않다. 롯데그룹의 롯데액셀러레이터, 호반건설의 플랜에이치벤처스, 평화홀딩스의 예원파트너스 등이 최근 문을 열었다. 한 액셀러레이터 관계자는 “스타트업들과 힘을 합해 미래 먹거리를 발굴하려는 기업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구글 등의 글로벌 기업이 CVC(기업이 설립한 벤처캐피털) 사업에 열을 올리는 것과 맥락이 같다”고 설명했다.

시장 상황이 모든 스타트업에 ‘핑크빛’인 것은 아니다. 혁신적인 신기술이 있거나 시장이 주목할 만한 아이템을 보유한 스타트업에만 ‘러브콜’이 집중되고 있어서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30곳이 넘는 VC의 문을 두드렸지만 시리즈A 목표 금액을 채우지 못했다”며 “시장의 아랫목은 따뜻할지 몰라도 윗목은 달라진 게 없다”고 토로했다.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