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중앙은행 역사를 보면 ‘장수 총재’가 적지 않다. “중앙은행의 역할은 파티가 한창 무르익을 때 펀치볼(파티 음료)을 치우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긴 윌리엄 맥체스니 마틴 주니어 전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대표적이다.


그는 무려 19년간(1951년 4월~1970년 2월) 재임하며 Fed의 위상을 반석 위에 올려놨다. 특히 1965년 린든 존슨 대통령과의 일화가 유명하다. 당시 베트남전 여파로 물가가 뛰자 Fed는 금리를 인상하려 했다. 반면 존슨 대통령은 “금리 인상은 월스트리트의 이익을 위해 미국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행위”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마틴 의장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 존슨 대통령은 그런데도 마틴을 1967년 Fed 의장으로 재임명했다.

‘마에스트로(거장)’로 불린 앨런 그린스펀도 18년 넘게(1987년 8월~2006년 1월) Fed 의장을 지냈다. 그는 대통령 4명의 신임을 받아 1987년 블랙먼데이, 1994년 멕시코 페소화 급락,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0년 닷컴버블 붕괴를 헤쳐나가며 ‘세계의 경제 대통령’으로 군림했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 장기 저금리 정책이 부동산 거품(서브프라임 모기지 위기)을 키웠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그의 명성에도 흠집이 났다.

중국에선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장이 ‘장수 총재’로 꼽힌다. 2002년부터 지난해 3월까지 16년간 인민은행을 이끌며 ‘미스터 런민비(위안화)’로 불렸다. 중국 정부의 시장개입과 위안화 통제 기조 속에서 친시장 행보로 중국의 금융개혁을 앞당겼다는 평가를 받았다.

‘아베의 돌격대장’으로 불리는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도 6년째 재임 중이다. 그는 지난해 2월 일본은행 역사상 57년 만에 처음으로 연임(임기 5년)에 성공했다. 공격적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기준금리 도입 등으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경기부양책인 ‘아베노믹스’를 뒷받침한 덕분이다. 그는 일본 대장성 출신으로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거쳤다.

다만 중국이나 일본은 미국, 영국 등 서방과 달리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을 받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도 지난해 한은 역사상 사실상 첫 연임 총재로 이름을 올렸다. 한은 총재 연임은 1974년 김성환 전 총재 이후 44년 만이지만 1998년 이전엔 한은 총재가 통화정책 방향을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이 아니었던 점을 고려하면 사실상 첫 연임으로 평가된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